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사도행전 7장 44-60절) 광야에서 우리 조상들에게 증거의 장막이 있었으니 이것은 모세에게 말씀하신 이가 명하사 그가 본 그 양식대로 만들게 하신 것이라 우리 조상들이 그것을 받아 하나님이 그들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인의 땅을 점령할 때에 여호수아와 함께 가지고 들어가서 다윗 때까지 이르니라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받아 야곱의 집을 위하여 하나님의 처소를 준비하게 하여 달라고 하더니 솔로몬이 그를 위하여 집을 지었느니라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시나니 선지자가 말한 바 주께서 이르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짓겠으며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냐 이 모든 것이 다 내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냐 함과 같으니라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도다 너희 조상들이 선지자들 중의 누구를 박해하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그들이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 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 너희는 천사가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하니라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그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그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제히 그에게 달려들어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산헤드린 법정에서의 스데반의 진술은 증거의 장막에 대한 논증으로 이어져 계속되었다. 그에 대한 두 번째 고소내용인 곧 성전을 모독하였다는 죄목과 관련하여 유대인들의 성전 숭배의 잘못을 지적하고 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후 광야에서 모세를 통하여 성막 곧 증거의 장막을 만들게 하셨다. 이 성막은 하나님 임재의 상징적인 장소이면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과의 만남의 장소였다. 성막에는 십계명이 새겨진 모세의 돌판 즉 증거판이 있고, 그 증거판을 넣은 궤인 증거궤가 성막의 지성소에 안치되어 있었기에 성막을 증거의 장막이라 불렀다. 이스라엘 백성들과 하나님이 만나는 곳이라 해서 회막이라 칭하여지기도 하였다. 

스데반의 논증은 성전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증거의 장막에 대한 언급으로 시작되었다. 이 증거의 장막은 모세 때에 만들어져 그 후 솔로몬이 성전을 짓기까지 480년 동안 이스라엘 종교의 중심이 되었다. 그런데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적 장소였던 증거의 장막과 함께 있으면서도 우상을 숭배하였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기억하지 못했기 때문에 우상 숭배에 빠져든 것이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과 함께 있음을 뚜렷이 알고 있었음에도 그들은 동시에 우상을 섬겼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스데반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은 사람이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않으신다고 말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성전에 대한 잘못된 신앙을 가지고 있는 것을 정면 공격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예루살렘 성전이라는 장소에 얽매여 있지 않은 분이며, 따라서 예루살렘 성전만이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유일한 장소라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라는 지적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에 있을 때에 그에게 나타나셨으며, 요셉이 애굽에 있을 때에 그와 함께 하셨고, 모세가 미디안 광야에 있을 때에 그곳에 나타나셨고, 당신이 임재하시는 상징 장소인 성막의 이동을 명하셨다. 후에 솔로몬이 고정된 성전을 지었을 때에도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라 하면서 어느 한 곳 만을 거룩한 땅으로 정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만유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는 분으로 손으로 지은 곳, 곧 사람이 지은 성전이나 신당 등에 갇혀 사시는 존재가 아니시며 특정한 공간에 제한받지 않는 분이시라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성전에 대해 자부심은 대단하였고, 누구보다 성전 안에 보관되어 있는 율법을 잘 지킨다는 자부심 또한 대단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이 땅에 오실 그리스도를 예언하는 선지자들을 죽였고, 결국 그 성전이 가리키는 참 성전되시는 그리스도를 죽여버렸다. 이 모든 까닭은 그들이 하나님을 예루살렘 성전에 가두어 두고 있었기에 성전에서 이루어지는 종교행위로 스스로 완전한 신앙을 유지하고 있다고 착각하였기 때문이었으며, 이로 그들의 눈이 진리에 대하여 가려지고 그들의 양심이 어두워졌기 때문이었다. 스데반은 이사야 선지자의 말을 인용하면서 무소부재하신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 성전에 갇혀 계시는 분이 아니심을 밝혔으며, 예루살렘 성전과 하나님을 동일시하는 유대교지도자들의 그릇된 생각을 정면으로 반박하였다.

성전의 자리는 아브라함이 처음 하나님께 단을 쌓은 곳이요, 야곱이 돌베개를 쌓고 서원 기도를 한 그 자리가 예루살렘 성전의 자리였다. 이스라엘에게는 그 곳만 성전이었다. 구약에서는 예루살렘이 성전이었다. 북이스라엘 당시에는 예루살렘에 내려가지 못하므로 북 이스라엘의 왕이 단과 브엘세바 라는 곳에 황금 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성전이라고 해서, 가짜 성전을 만들어놓고 그 곳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도록 했다. 그런데 그 건물은 그림자이다. 참 성전이신 예수님이 오신 것이다. 예수님이 오셨으므로 성전은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에 성전의 휘장이 찢어졌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하나님이 계신 지성소에 직접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예수님은 승천하신 후에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성령을 주셨다. 성령이 계시면 그 곳이 성전이다. 

고린도전서 3장 16절에서『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라고 했다. 고린도전서 6장 20절에서『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 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일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니라』라고 했다. 즉 성전은 어떤 건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계시는 곳이 성전인 것이다. 구약시대는 성소와 성전에 하나님의 이름이 계셨고, 신약시대에는 성령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에게 오시므로 그 사람이 교회요, 하나님의 성전이 되는 것이다. 교회 건물을 성전이라고 하는 자는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주장하는 바이다. 

보통 교회 사람들은 온 힘을 다하며 진심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어떤 장소에서 어떤 형식으로 예배를 드려야만 예배가 되는 것이 아니라, 요한복음 4장 23절에서 오직『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것이 예배이다.『신령과 진정』이라는 말에서 신령은 성령을 말하며, 진정은 진리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말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어서 하나님 약속의 말씀이 성령의 은혜로 깨달아질 때 바로 그 순간이 예배 속에 있는 것이다. 예배는 무엇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엎드리는 것이며, 그 속에 들어가는 것이다.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진 것이 증험도 있고, 성취함도 있는 것이 곧 하나님의 말씀이다. 예수님은 구약시대에 선지자를 통해서『이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신다』고 하셨고 실제로 오신 성취함이 있으므로『그것이 진리』라는 것이다. 왜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인가? 고린도후서 6장 16절에서『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라고 했다. 6장 17절에서는『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하셨느니라』에서『이와같이』는『하나님이 약속하신 말씀대로 성도가 하나님의 성전이 되었다』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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