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갈라디아서 5장 13-26절)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 

5장 13절『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자유는 율법주의의 멍애로부터 자유다. 율법주의로부터 자유함을 입었으니, 내 마음대로 살아도 된다는 그런 것이 아니라, 율법의 조문에 얽매이지 말고 율법 속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 하라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영을 살리는데 있다. 영을 살리는 아가페를 하라는 것이다. 아가페와 영을 살리는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떠난 자의 죽었던 영을 살리는 것에 있는 것이다. 육체 속의 죽었던 심령이 깨어나면 그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된다. 

5장 14절『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헤니) 말씀(로고)에서 이루어졌나니』 여기에서 말하는 율법은 율법주의가 아니라, 율법 속에 담긴 사랑(아가페)의 의미를 말하는 것이다. 네 자신과 같이 하라는 것은 율법 속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그로 인해서 죽었던 심령 가운데 영이 살아나 호 로고스를 영접한 것처럼, 너도 다른 이에게 그렇게 전하라는 것이다. 율법에는 613개의 조항이 있지만, 하나의 말씀 즉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에서 율법은 복음으로 완성된다는 것이다. 그것을 모르면 조항에 메달리는 율법주의가 되는 것이다. 

5장 15절『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갈라디아 교회에서 복음과 율법주의가 섞여 서로 논쟁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서로 논쟁을 하다보면 모두가 율법주의 신앙으로 변질될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5장 16절『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프뉴마티)을 따라 행하라(페리파테이테)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페리파테이테는 걸어가라는 의미다. 성령을 따라 ~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따라가는 것이다. 성령이 하는 행동을 보고 그것을 따라 행동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성령이 주는 마음으로 행하라는 의미다. 

5장 17절『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에피뒤메이 카타)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에피뒤메이 카타는 ~ 아래 두려고 갈망한다는 의미다. 즉 육체의 소욕(옛사람:자아)은 성령을 아래에 두려고 한다는 것이다. 성령도 육체의 소욕을 자기 아래에 두려고 갈망한다. 그런데, 육체의 소욕이 강해서 성령을 이기려 하는 것이다. 바울이 나는 곤고한 자로다 라고 고백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래서 날마다 죽노라가 필요한 것이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된 것을 다시 기억하고, 육체의 소욕을 십자가의 자리에 두어야만 하는 것이다. 십자가의 복음을 벗어나면, 결국 율법주의로 흐르게 된다. 율법주의는 육체의 소욕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다. 육체의 소욕에 대해서는 죽지 않고, 죄를 범하지 않기 위해 계명의 규정에만 얽매여 있기 때문이다. 

5장 18절『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자는 육체의 소욕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은 자다. 죽으면 성령의 능력으로 새피조물로 다시 태어나게 해 주신다. 하늘로부터 태어난 새로운 피조물은 율법주의와 상관없는 자들이 된다. 여기서 율법은 율법주의를 의미한다. 

5장 19-21절『육체(사르코스)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사르코스는 육신으로부터 발생된 자기의 의를 이루려는 영적 종교심을 의미한다.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은 모두 성령을 따른다고 하면서 율법주의에 빠지는 자들을 말한다.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은 율법주의 자들로 인해서 교회 안에서 서로 다툼이 생기는 것을 의미하고, 이단과 투기와 술취함과 방탕함 등은 바로 복음을 말했다가, 율법도 지켜야 한다는 식으로 이말 했다가 저말 하는 자들을 상징하는 것이다. 율법주의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라고 말을 한다. 

5장 22-23절『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피스티스)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성령의 열매를 우리말로는 아홉가지로 구분되지만, 헬라어 원문으로는 네 그룹으로 구분하고 있다. 첫째는 사랑과 희락과 기쁨인데, 성령을 따르는 자는 하나님으로 부터 사랑과 희락과 기쁨의 열매가 주어진다. 영이 살아나서 기쁨이 오고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 평강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두번째가 오래참음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것으로서 자기를 부인하는 삶을 통해서 성령의 열매로 나타난다. 세번째가 자비(친절)와 양선(남을 이롭게 하는)인데, 이는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고 영을 살리는 것이다. 즉 이웃들과의 관계에서 나오는 열매다. 넷째가 충성(신실한 믿음) 온유, 절제(자기억제)다. 이 세가지는 성도가 하나님께 드리는 열매다. 열매는 하나님께 대한 신실한 믿음과 자기를 낮추는 온유함, 자기억제로 나타난다. 따라서 이 열매들을 통해서 성령을 따르는 사람인가를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5장 24절『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세가지에 대해서 못을 박는다. 첫째, 육체다. 자기의 의를 이루려고 하는 종교심이다. 정욕은 육적인 정욕을 말하지만,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이다. 탐심은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마음이다. 이 모든 것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옛사람인 것이다. 로마서 6장 6절에서 우리의 옛사람이 못에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한다고 바울을 말한다. 

5장 25-26절『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스토이코멘)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스토이코멘은 ~우리가 걸어간다는 의미다. 성령과 함께 걸어간다는 것이다. 성령과 함께 걸어가려면, 그 분과 대화하고, 여쭈어보고, 답을 듣고 그대로 행하는 삶이 되는 것이다. 성경책에 기록되어 있는 말씀이 실제로 성도의 심령 속에서 일어나는 것이 되어야 거듭난 자가 되는 것이다. 신도가 거듭나기 전에는 성경의 말씀을 지식으로 보고 듣고 믿는 것이다. 그러나 심령 속에 계시는 말씀이신 호 로고스는 대화하시는 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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