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형제들까지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
요한복음 7장 1-3절『그 후에 예수께서 갈릴리에서 다니시고 유대에서 다니려 아니하심은 유대인들이 죽이려 함이러라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이 가까운지라 그 형제들이 예수께 이르되 당신이 행하는 일을 제자들도 보게 여기를 떠나 유대로 가소서.』초막절은 유대인들에게 큰 의미가 있는 명절이었다. 과거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후 광야에서 40년동안 장막 생활했던 것을 기념하는 날이었다. 이 명절에 행해졌던 중요한 행사 중 하나는 이 기간 동안 매일 제사장이 금으로 만든 물단지로 실로암 연못에서 물을 길어와 제단에 붓는 의식이었다. 이 의식은 광야생활 중에 물이 없을 때 반석에서 생수를 내게 하신 그 사건을 상기시켜 주었고, 이 의식을 치르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환호하였다. 그리고 초막절 마지막 날을 구원의 날로 지켰다.
이 날이 지난해의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마지막 사죄의 날이라 믿었고, 그래서 마지막 날 제단에 물을 부으며 사죄의 은총에 감사했다. 이처럼 유대인들은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할 생수를 내시고, 구원의 길을 내실 메시야를 간절히 고대하며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초막절의 진정한 주인공이시며, 그토록 그들이 고대하던 메시야인 예수님이 오셨음에도 그 메시야를 알아보지 못하였다. 뿐만 아니라, 오히려 정의와 공의를 말하는 예수님을 미워하고 죽이려 했던 것이다.
유대인의 큰 명절이 되면, 각지에 흩어져 살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으로 몰려들곤 했었는데, 유대인들이 지키는 3대 명절 중에 하나인 초막절이 가까워 오고 있었다. 이에 예수님의 형제들은 예수님께 유대로 갈 것을 요청하였다. 그런데 그들의 의도는 단순히 예수님께서 명절을 지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의 차원이 아니었다.
7장 4절『스스로 나타나기를 구하면서 묻혀서 일하는 사람이 없나니 이 일을 행하려 하거든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소서 하니 이는 그 형제들까지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예수님의 형제들은 예수님에 대해 냉담해하던 갈릴리 사람들의 반응을 보았고, 또한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와 같은 기적을 행하실 때에, 변화된 갈릴리 사람들의 반응을 보았다. 만일 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초막절 예루살렘에서 갈릴리에서와 같은 기적을 행하게 된다면, 상당한 명성과 함께 세력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예수님의 형제들은 생각했을 것이다. 물론 형제인 예수님이 명성과 세력을 얻게 되면, 자신들에게도 상당한 유익이 찾아올 것은 당연지사일거라 이미 머릿속에 계산이 되어 있었을 것이다. 오랜 시간을 함께 지내며, 예수님의 기적을 가까이에서 보고 들은 형제들이었지만, 이런 간청은 믿음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었다. 단지 형제들은 자신들에게 유익을 줄 정치적인 메시야가 필요했던 것이고, 예수님께서 자신들의 요청을 따라준다면, 예루살렘은 좋은 기회의 장소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불신앙적인 동기가 그들에게 있었다. 이에 예수님은『나는 이 명절에 아직 올라가지는 않겠다』고 말씀하시며, 갈릴리에 그냥 머물러 계셨다.
7장 6절『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때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거니와 너희 때는 늘 준비되어 있느니라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지 아니하되 나를 미워하나니 이는 내가 세상의 일들을 악하다고 증언함이라 너희는 명절에 올라가라 내 때가 아직 차지 못하였으니 나는 이 명절에 아직 올라가지 아니하노라』예수님이 생각하는 때와 형제들이 생각하는 때는 다른 것이다. 형제들은 예수님이 메시야라면 관중 들 앞에서 나타내 보이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내 때가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의 때는 십자가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세상은 마귀의 세상이다. 마귀는 유대인을 통해서 예수를 죽이려고 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바라보는 명절(초막절)은 하나님으로부터 죄를 사하심을 받는 때가 되지만, 예수님은 죄를 사해줄 수 있는 십자가의 때이다. 그런데 이 때가 아직 멀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7장 9-10절『이 말씀을 하시고 갈릴리에 머물러 계시니라 그 형제들이 명절에 올라간 후에 자기도 올라가시되 나타내지 않고 은밀히 가시니라』형제들에게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않는다고 말하고, 갈릴리에 머물다가 은밀히 올라갔다는 것이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형제들은 예수님이 메시야임을 만천하에 드러내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명절인 초막절이 자신의 십자가의 죽음임을 알기에 조용히 예루살렘에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다.
7장 11-13절『명절 중에 유대인들이 예수를 찾으면서 그가 어디 있느냐 하고 예수에 대하여 무리 중에서 수군거림이 많아 어떤 사람은 좋은 사람이라 하며 어떤 사람은 아니라 무리를 미혹한다 하나 그러나 유대인들을 두려워하므로 드러나게 그에 대하여 말하는 자가 없더라』당시에 유대 지도자들은 예수를 죽이려고 공모를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유대인들 중에는 예수님을 좋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7장 14-15절『이미 명절의 중간이 되어 예수께서 성전에 올라가사 가르치시니 유대인들이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 사람은 배우지 아니하였거늘 어떻게 글을 아느냐 하니』 초막절의 중간쯤 되자 예수님께서 예수님의 권위와 정체성에 대해 비아냥 거리고 불신하는 유대인들에게 역공하시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 이유는 요한복음 5장 18절에 기록되어 있다. 유대인들과의 갈등의 골이 깊어진 이유가 바로 안식일에 병든자를 고친 것과 동시에 하나님을 자신의 아버지로 동등하게 여겨 신성모독을 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예수님의 말과 사역에 놀람과 동시에 편견을 갖고 있던 유대인들이 비아냥적인 태도로 질문을 던진다.
7장 16-18절『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니라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 스스로 말하는 자는 자기 영광만 구하되 보내신 이의 영광을 구하는 자는 참되니 그 속에 불의가 없느니라.』예수님은 자신의 가르침을 통해 자신의 능함을 들어내려 하지 않았다. 자신을 보내신 하나님을 드러내셨다.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을 말하지만, 유대지도자들은 자기 생각을 섞어서 말하므로 스스로 말하는 자라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 지도자들 중에 하나님 말씀을 전한다고 말을 하면서 스스로 말하는 자들이 많을 것이다.
5장 이후 점진적으로 유대인들과 예수님 사이에 깊은 골이 깊어가고 있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든 자들을 고치셨고, 이로 인해 예수님은 율법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심지어 자신을 보내신 이가 하나님 이라며 자신을 소개 했다. 신성모독죄까지 가중된 것이다. 안식일도 지키지 않고, 신성모독까지 하는 예수님을 유대인들은 처벌해야 한다고 믿었다.
7장 19-21절『모세가 너희에게 율법을 주지 아니하였느냐 너희 중에 율법을 지키는 자가 없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죽이려 하느냐 무리가 대답하되 당신은 귀신이 들렸도다 누가 당신을 죽이려 하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한 가지 일(헨 에르곤)을 행하매 너희가 다 이로 말미암아 이상히 여기는도다』유대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죽이려는 의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귀신들린 자라는 등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침묵하고 오인하는 종교지도자들과 무리들 앞에서, 예수님의 태도는 창조 때로부터 같은 맥락으로 가르치시며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갈릴리 나사렛 출신이며 가난한 목수의 아들이라는 것을 인정하시면서 더 중요한 본질로 종교지도자들과 무리들을 이끌어주심을 보게 된다.
헨 에르곤은 한가지의 사역이다. 즉 성부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받아서 그대로 전하는 일이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계시인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이상하게 여기는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은 유대인들의 영적 무지를 꼬집는다.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만일 참되시며 바른 계시를 주시는 분으로 알았다면 자신을 모를 리 없다는 말씀을 하신다. 예수는 하나님의 계시이며, 예수를 통해서 하나님을 볼 수 있음에도 단지 육체적인 사실만 알았다면 영적인 무지를 책망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선민임을 자랑하는 유대인들이 실제로는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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