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024의 게시물 표시

주의 율법에 쓴 바 첫 태에 처음 난 남자마다 주의 거룩한 자라 하리라

  주의 율법에 쓴 바 첫 태에 처음 난 남자마다 주의 거룩한 자라 하리라(구약성경 인용) 누가복음 2장 21-24절『할례 할 팔일이 되매 그 이름을 예수라 하니, 곧 수태하기 전에 천사의 일컬은 바러라, 모세의 법대로 정결의식의 날이 차매 아기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올라가니, 이는 주의 율법에 쓴 바 첫 태에 처음 난 남자마다 주의 거룩한 자라 하리라 한 대로 아기를 주께 드리고, 또 주의 율법에 말씀하신 대로 산비둘기 한 쌍이나 혹은 어린 집비둘기 둘로 제사하려 함이더라.』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나서 말을 했는데, 누가복음 1장 31절에서『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라고 했다. 그래서 마리아는 할례할 팔일에 이름을 예수라 했다. 할례의 의식은 할례의 의식은 두가지의 의미가 있다. 첫째는 육체의 죽음을 나타낸다. 하나님 앞에서 죽은 자라는 것이다.(십자가에서 죽은 예수를 상징) 둘째는 씨의 약속이 벤 흔적 속에 있다는 것이다. 즉 새창조를 약속한다(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상징). 할례는 남자의 생식기에 함으로서 씨의 약속을 나타낸다. 씨의 약속은 바로 그리스도이시다.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이 할례를 통해서 장차 오실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 할례는 형식적인 할례가 되고 말았다. 그래서 마음의 할례를 강조했다. 로마서 2장 29절에서『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할례는 죽는 의식이다. 옛사람이 죽고, 새사람이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마음의 할례가 바로 오늘날 세례(침례)의식이다. 세례는 십자가에서 죽고(물세례), 새생명으로 태어나는 부활(성령세례)을 의미한다. 로마서 6장 4-5절에서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부득이하여 번제를 드렸나이다

  부득이하여 번제를 드렸나이다(삼상 13:1-23) 1.사울이 왕이 될 때에 사십 세라 그가 이스라엘을 다스린 지 이 년에 히브리어(맛소라) 성경을 바탕으로 번역한 우리말 성경은 다양하게 나타난다. 개역개정은 왕이 될 때, 사십세라고 번역하고 다스린지 이년에 라고 되어있으며, 공동번역은 아예 삭제되었으며, 새번역은 삼십세라고 하고 그가 마흔 두해를 다스렸다고 한다. NASB, NIV는 삼십세로 표기하고 있다. “ Saul was thirty years old when he began to reign, and he reigned forty two years over Israel.” KJV는 1년으로 되어있다.“Saul reigned one year; and when he had reigned two years over Israel”번역마다 차이가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개역개정은 왕이 된지 2년이 지나 블레셋과 전쟁을 하게되는 모양이다.  히브리어 전형적인 문장 구조는 “몇세에 왕위에 오르고, 몇 년을 다스렸다” 라고 되어있다. 예를 들어 사무엘하 5장 4절에는 다윗이 나이가 삼십세에 왕위에 올라 사십년 동안 다스렸으며 라고 되어있다. 그러나 히브리어 성경은 몇세에 왕이 되었는지 표기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2년을 다스렸다 라고 표현되어 있다. 다른 성경(사도행전)을 보면 40년간 나라를 통치한 것으로 나와있는데, 2년은 무엇인가? 사무엘상 15장에서는 아말렉 전투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하나님은 사울이 2년의 통치기간이 지난 후에는 제사 문제를 통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는 장면이 나온다. 하나님은 사울을 실질적으로 왕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40년을 다스렸지만, 하나님이 인정하는 기간은 2년 밖에 안된다는 말씀이다. 히브리어 성경에서, 사울이 몇세에 왕이 되었다는 표현이 없는 것은 실질적으로 사울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2.이스라엘 사람 삼천 명을 택하여 그 중에서 이천 명은 자기와 함께 믹마스와 벧엘 산...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구약인용) 마가복음 12장 26-27절『죽은 자가 살아난다는 것을 말할진대 너희가 모세의 책 중 가시나무 떨기에 관한 글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말씀을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 너희가 크게 오해하였도다 하시니라』 이 글은 출애굽기 3장 15절의 말씀을 인용한 것으로『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칭호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이 그 소리를 들었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언약을 체결할 때, 땅과 자손을 약속하셨는데, 이 언약은 이삭과 야곱과도 계속 체결하신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언약을 체결하고 난 뒤에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때에 그 언약을 성취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보여주신다. 출애굽기 3장 6-10절에서, 여호와 하나님은 모세에게 애굽의 바로에게 가서 백성을 인도하여 가나안으로 들어가라는 것이다. 출애굽의 이야기는 애굽으로부터 나와서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여정을 그린 것으로, 이는 세상으로부터 나와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는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모세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세상은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한 천사의 영들이 흙속에 갇혀 사람이 된 것을 나타내며, 가나안은 그리스도 안에서 죽었던 영들이 부활하여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 자의 하나님은 세상에 육체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하나님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부활하여 영의 몸을 입고 살아가는 하늘의 생명을 가진 자들의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죽은 자는 육의 몸을 의미하고, 산 자는 영...

성경에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성경에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구약성경 인용) 마가복음 12장 10-11절『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놀랍도다 함을 읽어보지도 못하였느냐 하시니라.』 이는 시편 118편 22-23절을 인용한 것으로『건축자가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는 여호와께서 행하신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한 바로다.』건축자들이란 율법을 이전부터 지켜온 유대 지도자들을 말하는데, 예수 그리스도 탄생 당시 동방박사들이 헤롯 왕궁을 향해 갔을 때 당대 종교 지도자라고 할 수 있는 대제사장들은 예수님을 헤롯이 죽이려고 하는 것을 알면서도 하나님의 뜻보다 사람의 뜻을 앞세워 베들레헴이라는 위치를 정확히 알면서도 감추지 않고, 그대로 직고했다. 즉, 세상 권세와 힘 앞에 그리스도를 배반하는 행위는 바로 그리스도를 버리는 행위와 같은 것이다. 건축자들이 버린 돌은 유대 지도자들에 의해 버려진 예수님을 상징한다. 모퉁이의 머릿돌은 부활의 첫열매이신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도 현재적 부활생명의 열매를 맺는다. 시편 118편에서, 다윗도 왕위에 오르기 전에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통한 배신과 버림을 받았지만 그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바라보며, 세상 사람들은 날 버리지만 나의 마음속에 주님을 향한 마음과 뜻을 품었기에 하나님께서 지키셨다.”라는 표현을 한 것이다. 이러한 표현은 세상의 박해와 시련이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악한 이들의 모략가운데, 함께하며, 한 자리를 얻기를 구하지만 하나님께서 정하신 자 즉, 하나님의 뜻을 결코 꺽지 못한다는 표현을 할 때 주로 이런 표현을 한다. 마가복음 12장 10-11절의 말씀은 예수님이 포도원 비유를 하시면서 결론적으로 이어서 하신 말씀이다.  포도원 이야기는 표면적으로는 악한 농부의 이야기이지만, 유대인들에 대한 이야기가 된다. 하나님이 유대인들에게 메시야를 보냈지만, 유대인들은 메시야를 죽인다는 것이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구약인용) 마가복음 7장 6-8절『이르시되,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너희가 하나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유전을 지키느니라』 이 말씀은 이사야 29장 13절의 인용으로서『주께서 이르시되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라고 말을 한다. 이사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종교적 믿음의 피상성에 대해 비난했다. 그들은 외우고 있는 전통들에 따라 예배를 드렸지만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에 대해서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따라서 그들은 입술로는 하나님을 존중한다고 했지만, 마음은 그 분에게로부터 멀었던 것이다. 오늘날 교회 다니는 사람들도 이사야 당시의 사람들과 똑같은 삶의 패턴에 빠질 수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신실하게 예배에 참석하고, 심지어 성경학교에도 출석하지만, 주 중에는 거의 성경을 펴지않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 공동체의 신도들은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관심은 없고, 세상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에 주로 관심을 갖는다. 따라서, 하나님 말씀보다는 세상의 법과 윤리와 도덕, 관행,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하는 합리적인 판단, 자신의 신념과 가치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행동하고, 그것에 기초하여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다. 이것은 인본주의를 바탕으로 성경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데로 발전하여 왔다. 이스라엘은 문자로 기록된 율법과 모세 이후에 장로들을 통해 구전으로 전해 내려온 전통이 있었다. "장로들의 전통"은 바리새인들이 율법에 대한 복종에 열중하여 전통적인 관습으로 발전시킨 것이다. 그것은 성경의 계명 주위에 속박이 되고 장벽이 되었다. 그 개념은 성경적 계명으로부터 신실한 유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