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025의 게시물 표시

문답 85-86

  제 85문 : 어떻게 천국의 문이 기독교 권징에 의하여 닫히고 열리는가? 답 : 그것은 그리스도의 명령에 의하여 이루어진다. 즉, 누구든지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칭한다 할지라도 비기독교적인 교리를 믿고 비기독교적인 생활을 하고 교우들의 계속적인 권면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잘못과 사악함을 끝까지 고집하여 그 사실이 교회의 직임자들에게 알려지고 마침내 그들의 훈계마저 거부한다면, 그 직임자들은 그러한 자에게 성례참여를 금지(수찬정지)시킴으로써 성도의 교제에 참여하지 못하게 해야한다. 하나님께서도 그를 그리스도의 왕국에서 쫓아내실 것이다. 만일 이러한 사람이 참다운 회개를 약속하고 그것을 실천해 보이면 그리스도와 그 교회의 일원으로 다시 받아들이게 된다. 천국의 문이 열리고 닫히는 것은 비기독교인을 대상으로 한다. 비기독교인이 회개하여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죽고 함께 부활하였음을 믿을 때, 그들은 세례를 받으므로 천국 백성 시민이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간 자는 천국 문이 열려서 이미 들어간 자가 된다. 천국 문이 열리는 것은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자에 해당되고, 천국 문이 닫히는 것은 비기독교인에게 해당되는 것으로 열렸다가 닫히는 것이 아니라, 원래 닫혀있는 것이다. 비기독교적인 생활을 하고 자신의 잘못과 사악함을 끝까지 고집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그의 왕국에서 쫒아낸다는 교리는 맞지 않는다. 이런 자는 원래부터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온 자가 아니라는 말이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자가 나중에 타락하여 비기독교적인 생활을 한다는 말에 대해서, 비기독교적인 생활을 하는 자는 원래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자가 아닐 것이다. 자기가 스스로 기독교인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자는 가끔 잘못된 삶을 살지라도 사탄을 통해서 가시를 찔러 정신차리게 할뿐, 하나님이 쫒아내지 않으신다. 한번 구원은 변경되지 않는다. 교리는 구원받은 자가 다시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는 것처럼 말하는데, 비진리의 말이다.      제 3...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로마서 1장 21-25절「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우리는 흔히 하나님을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한다. 그것은 언제나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게 한다. 만일 하나님께서 사랑의 하나님이 아니시라면 우리는 모두 그 하나님을 찾을 이유도 없고, 그 하나님 앞에 나올 이유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믿는 하나님의 또 다른 하나의 모습은 공의(진노)라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고백하는 사랑의 하나님은 또한 진노의 하나님이시기도 하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사랑보다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언급이 더 많다. 하나님의 진노는 죄를 용서하지 못하시는 하나님의 공의로움을 나타내주신다.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죄를 그냥 용서하실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진노를 먼저 이해하고 그 진노에 대한 신앙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해야 진정한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할 수 있다. 하나님의 진노를 모르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도 온전하게 이해할 수 없다. 로마서 6장에서 하나님은 죄의 값은 사망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하나님은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시키셨고,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셨다. 진노 중에 가장 큰 진노는 십자가의 진노다. 인간의 모든 죄를 보시고 진노하실 수밖에 없으신 하나님은 그 진노를 십자가 위에 달리신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 쏟으셨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죄를 용납하지 못하시는 진노의 하나님을 보여주심과 동시에 회개하는 인...

문답 83-84

  제 83문 : 천국의 열쇠란 무엇인가? 답 : 거룩한 복음의 설교와 회개를 위해 시행되는 기독교 권징이다. 즉 이 두 가지를 통하여 천국의 문은 복음 전파와 권징을 통하여 신자들에게는 열리고 불신자들에게는 닫히는 것이다. 마태복음 16장 19 절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천국의 열쇠는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문을 열고 닫는 자이며,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위임하셨으며, 예수 그리스도 역시 사도들에게 위임하신 것이다.  천국의 열쇠를 갖는 것은 예수님이 천국의 곳간을 맡은 자에게 주신다. 마태복음 13장 52절「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 예수님이 사도에게 이 천국의 열쇠를 맡기셨으며, 오늘날에도 성도의 심령 속에 성전이 세워지고, 호 로고스와 대화를 하는 자에게 예수님이 맡기는 것이다. 비성경적인 교리로 복음이라고 전하는 자들은 천국의 곳간을 맡은 자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사람들을 천국에 들여 보내기 위해 이 땅에서 복음의 열매를 얻게하려고 하였지만, 바리새인들은 자기들도 천국의 문에서 들어가지 않고, 남들도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율법주의에 빠져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고 잘못된 복음을 전하는 자들도 마찬가지로 자기들도 천국 문을 들어가지 않고, 신도들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모습이다. 회개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받아드리고, 자신도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함께 이루어진 것을 믿을 때, 복음의 열매가 맺히는 것이다.   제 84문 : 어떻게 천국의 문이 복음 전파에 의하여 열리고 닫히는가? 답 : 그것은 그리스도의 명령에 따라서 이루어진다. 즉, 모든 신자들이 참된 믿음으로 복음의 약속을 믿을 때 하...

하나님의 진노가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하나님의 진노가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로마서 1장 18-20절『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카테콘톤) 사람(안드로폰 톤)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파산 아세베이안)과 불의(아디키안)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아포칼륍데타이)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토 그노스톤 투 데우) 그들 속에 보임(파네론)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에파네로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토이스 포이에마신)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아디키안 안드로폰 (ἀδικίαν ἀνθρώπων) 은 그 사람들의 불의이다. 하나님의 진노는 그 사람들의 불의 때문이다. 그 사람은 로마교회의 신자들처럼 예수를 주로 영접하고 성령체험까지 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행하는 불의를 의미한다. 파산 아세베이안 카이 아디키안은 모든 불신앙과 불의다. 카테콘톤 (κατεχόντων) 의 기본형은 카테코이다. 카테(강세형 접두어)와 에코(갖고있다)의 합성어로서 (무엇을) 꽉 붙잡다, 고수하다 라는 의미다.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의 진리를 당연히 고수해야 하는데, 그러나 복음의 진리를 불의 안에서 고수할 때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아포칼륍데타이 (Ἀποκαλύπτεται) 는 계시되어지다 라는 의미다. 숨겨져 있던 하나님의 진노가 드러나고 있다는 의미다. 토 그노스톤 투 데우( τὸ γνωστὸν τοῦ θεοῦ) 는 하나님의 그 알려진 것이라는 의미다. 하나님이 자신을 그 사람들 안에 명백히 나타내 보이셨다는 것이다. 기노스톤( γνωστὸν) 는 체험적으로 관계를 통해서 알다(히브리어 야다와 같은 개념)는 의미다. 파네론 (φανερόν) 과 에파네로센 (ἐφανέρωσεν) 의 기본형은 파네로스인데, 빛을 비추어서 무엇인가를 밝히 보이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오늘날 기독교의 문제는 예수님이 내 안에 있다는 사실을 지식으로 알고 있지만, 실제 체험적으로 심령 속에 임재를...

문답 80-82

  제 80문 : 성만찬은 로마 카톨릭의 미사와 어떻게 다른가? 답 : 성만찬은 십자가에서 단번에 드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속죄를 통해서 우리 죄가 완전히 용서받았다는 선언이다. 또한 그것은 성령께서, 하늘 아버지 우편에 계시면서 우리의 경배를 받으시는 그리스도에게 우리를 연합케 하신다는 선언이다. 그러나 미사는 그리스도의 몸이 사제들에 의하여 날마다 산자들과 죽은 자들을 위하여 드려지지 않는다면 그의 십자가 고난을 통해서는 사죄를 얻지 못한다고 가르친다. 또한 그리스도의 몸이 떡과 포도주의 형태로 나타나셔서 그곳에서 그리스도가 경배를 받으신다고 가르친다. 그러므로 미사는 단번에 드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제사를 근본적으로 부인하는 것이며 저주받을 우상숭배인 것이다. “십자가에서 단번에 드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속죄를 통해서 우리 죄가 완전히 용서받았다는 선언”은 성만찬이 아니라, 세례의식에서 이다. 세례의식은 물세례와 성령세례를 포함하는데, 물에 들어갈 때 육의 몸이 죽었다고 선언하고, 물밖으로 나올 때,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게 해 주신다는 선언인 것이다. 로마서 6장 3-5절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 세례의식을 통해서 목사가 선언한다고 할지라도, 세례받은 신도의 마음 상태에 대해서 예수님이 사탄의 시험을 받은 것처럼, 신도 역시 율법주의, 기복주의, 신비주의에 빠져있는지를 시험하는 것이다. 이를 통과해야만 한다. 그 때와 그 날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영원히 통과하지 못하...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 로마서 1장 9-10절『내가 그의 아들의(투 휘우) 복음 안에서(토 유앙겔리온 τῷ εὐαγγελίῳ ) 내(무 엔 μου ἐν ) 심령으로(엔 토 프뉴마티 ἐν τῷ πνεύματί ) 섬기는(라트류오)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항상 내 기도(프로슈케)에 쉬지 않고(호스 아디알레잎토스) 너희를 말하며(므네이안) 어떻게 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휘몬)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포이우마이)』 호 라트류오 엔 토 프뉴마티 무 엔 토 유앙겔리온 투 휘우 (ᾧ λατρεύω ἐν τῷ πνεύματί μου ἐν τῷ εὐαγγελίῳ τοῦ υἱοῦ) 는 내가 섬기는, 나의 성령 안에서, 나의 복음 안에서 라는 의미다. 이 말은 관계대명사 호와 하나님을 연결한다. 즉 바울은 라트류오 엔 토 프뉴마티 무 엔 토 유앙겔리온 투 휘우를 통하여 자신과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해서 말을 하는 것이다. 제사장으로서 하나님을 섬기는데 있어 중요한 것은 엔 토 프뉴마티(성령 안에서)이고, 엔 토 유앙겔리온 토 휘우 아우투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가 되는 것이다. 프로슈케의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가지고 하는 기도이다. 바울이 기도할 때마다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을 언급하는 것은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호스 아디알레잎토스 (ὡς ἀδιαλείπτως) 는 심지어 쉬지 않고 라는 의미다. 호스 아디알렢토스 므네이안 휘몬 포이우마이 (ὡς ἀδιαλείπτως μνείαν ὑμῶν ποιοῦμαι) 는 심지어 쉬지 않고 너희의 언급을 만들고 있다 라는 의미다. 포이우마이는 중간태로서 이것은 바울이 기도할 때마다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을 언급하는 것이 자신을 위한 것임을 보여준다. 바울은 단순히 로마교회를 위한 기도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프로슈케의 기도로 인해 하나님과 더 친밀한 관계가 생긴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즉 프로슈케 기도는 기도 대상과 자신에게 다 유익한 기도가 되는 것이다. 바울은 자신이 로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