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함 속으로 들어가라

 거룩함 속으로 들어가라


로마서 6장 14-16절『죄가 너희(하마르티아 휘몬(ἁμαρτία ὑμῶν)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하마르테소멘) 그럴 수 없느니라(메 게노이토) 너희 자신을 종으로(둘로스)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오이다테)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호 휘파코에테)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이렇게 순간 순간 하나님 옆에 세워두면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하마르티아 휘몬은 너희의 죄라는 말이다.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한다는 것이 아니라, 너희의 죄가 주장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죄를 용서받는다. 그러나 죄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피를 통하여 죄가 있음에도 덮허두시는 것이다.


죄가 주장하지 못하는 것을 율법이 아니라 은혜 가운데 있기 때문이라고 바울은 말한다. 하나님의 은혜에 들어가면 죄가 주장하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회개하는 자에게 이런 은혜를 베푸시는 것이다. 회개는 옛사람의 죽음이다.


하마르테소멘(ἁμαρτήσωμεν)은 가정법 아오리스트 시제이다.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죄의 지배를 벗어났지만, 그럼에도 죄를 지을 가능성은 있다는 말이다. 그 이유는 육의 몸이 자극하기 때문이다.


메 게노이토(μὴ γένοιτο)는 그런 일이 있지 않기를 바란다는 말이다. 은혜 아래 있는 사람들도 순간 실수로 죄를 범할 수 있지만 이런 일이 있지 않기를 소원한다는 것이다. 게노이트는 있다 존재한다는 말로 희구법(소원), 아오리스트 시제, 중간디포테(자기에게), 3인칭 단수이다. 이런 일이 나에게 있어서도 안되고 다른 사람에게도 있어서는 안된다는 소원인 것이다.

둘로스(δούλους)는 종이다. 죄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둘로스의 길이다. 사탄의 종이었을 때는 죄의 종이 되었지만, 그리스도의 종이 되면 그리스도께서 시키는 대로 하면 죄를 짓지 않게 된다는 말이다.


오이다테(οἴδατε)는 아오리스트 시제로서 너희가 성령을 받을 때 순간적으로 깨달아 알지 않느냐 라는 말이다.

호 휘파코이테(ᾧ ὑπακούετε)는 휘포(~아래서)와 아쿠오(듣다)의 합성어로 종이 주인의 발 아래서 듣고 순종하는 것이다. 심령 속에 호 로고스의 음성을 듣고 그 분의 말씀대로 행하는 자가 순종하는 자이다. 그러나 자신의 생각대로 행동하는 자들은 불순종을 범할 수 있는 것이다. 무엇이든지 여쭈어 보아야만 한다.


로마서 6장 17-19절「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파레도데테 튀폰 디다케스)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로부터 해방되어(엘류데로덴테스)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너희 육신(사륵스)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내주어 불법에 이른 것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라(파라스테사테(παρεστήσατε너희가 내어주라)』


파레도데테(παρεδόθητε넘겨받다)는 파라(옆에서)와 디도마(주다)의 합성어다. 수동태 아오리스트 시제로서 순간적으로 옆에 있는 것을 의미한다.


튀폰(τύπον)의 기본형인 튀포스는 모형이라는 의미로 복사판이다. 우리가 교훈의 모형 속으로 들어가면서 마음으로부터 순종했기 때문이다 라는 것이다. 성도가 받은 은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가 된 것인데, 그렇게 될 수 있는 것은 우리 옆에 와 있는 교훈의 모형 틀 속으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종으로서 순종의 본을 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엘류데로덴테스(ἐλευθερωθέντες)가 아오리스트 시제 수동형으로 사용되었다. 성도가 성령세례를 받을 때 순간적으로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의의 종이 되기 위해서는 죄에 대해서 죽어야 함을 말해준다. 예수와 함께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칭함을 받는 것이다.

디카이오쉬네(δικαιοσύνῃ)는 의로움이다.


「(파라스테사테(παρεστήσατε너희가 내어주라) 타(τὰ 그) 멜레(μέλη지체들을) 휘몬(ὑμῶν너희의) 둘라(종들로) 테 디카이오쉬네 에이스 하기아스몬τῇ δικαιοσύνῃ εἰς ἁγιασμόν)』

번역하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 속으로 들어가라”이다. 한글 개역개정은 거룩함에 이르라 라고 되어있으나, 거룩함 속으로 들어가라는 것이다.


거룩을 하나님의 성품으로 생각하는 신도들이 대부분이다. 대부분 목사들은 신도들에게 하나님을 닮아가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을 하며, 그런 삶을 살면, 죄성은 점점 사라지고,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 넘쳐서 성화된 삶을 살게된다는 논리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고, 신도들의 마음이 새롭게 변화되어 하나님이 기뻐하는 자가 된다고 말을 하는 것이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복음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대부분 복음과 율법을 혼합시키는 것인데, 자신들은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거룩은 죄와 상반된 개념이다. 죄가 있는 자는 결코 거룩해 질 수 없으며, 모든 인간은 스스로 거룩해 질 수 없는 존재들이다. 따라서 죄인이 죄로 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면, 거룩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나, 예수 그리스도를 제외한 어느 누구도 죄에 대해서 자유로운 사람이 없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은 회개하는 죄인을 거룩하게 하기 위함이다. 이는 죄인들이 어떠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인한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혜에 기인하는 것이다. 그래서 거룩이라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에 대한 대가인 것이다.


하나님을 닮아간다, 예수님을 닮아간다는 말은 자신의 노력을 가하는 행위로서 그것은 거룩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거룩하게 된 자가 영적 성장을 이루려는 한 모습이 된다. 그러나 이것도 실체없는 일이다.


하나님을 닮아간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예수를 닮아간다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정확히 알 수 없는 것이다. 신도가 교회 생활을 열심히 해서 목사들에게 칭찬을 받을 수 있겠지만, 하나님은 복음을 전하는 일 외에는 칭찬하지 않으신다.


또한 신도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희생정신을 발휘해서 그들로부터 칭찬을 받아 하나님의 이름을 더 높이려 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하나님은 죄인으로부터 영광을 받지 않으신다. 신도가 죄인들에게 복음을 전해서 돌아오게 한다면 몰라도, 하나님은 죄인들로부터 회개의 부르짖음을 듣고 싶어할 뿐이다. 따라서 닮아가는 삶은 실체가 없는 것이며, 목사들이 이렇게 말을 한다면, 거룩의 의미를 모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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