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법에서 벗어나느니라

 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법에서 벗어나느니라


로마서 7장 1-3절『형제들아 내가 법 아는 자들에게 말하노니 너희는 그 법이 사람이 살 동안만 그를 주관하는 줄 알지 못하느냐 남편 있는 여인이 그 남편 생전에는 법으로 그에게 매인 바 되나 만일 그 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법에서 벗어나느니라 그러므로 만일 그 남편 생전에 다른 남자에게 가면 음녀라 그러나 만일 남편이 죽으면 그 법에서 자유롭게 되나니 다른 남자에게 갈지라도 음녀가 되지 아니하느니라』


바울이 로마사회의 결혼법을 예로 들어서 설명하는데, 남편있던 여인이 다른 남자에게 갈 수 있는 방법을 설명하는 이유는 그리스도인들이 원래 남편이던 율법에서 벗어나 다른 남편인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가는 것의 당위성을 설명하는 것이다. 남편이 죽었다는 말은 율법을 완성하여, 율법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남편이 살아있다는 말은 율법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율법이 남편인데, 다른 남자는 복음이다. 즉 율법도 지키고, 복음도 받아드리는 자가 음녀라는 말이다. 음녀는 영적 간음 행위에 해당된다. 오늘날 복음도 받아드리고, 율법도 지켜 행하는 자들이 교회 공동체 안에 너무나 많은 사실이다.


웨스트민스트 대요리문답 99에 의하면, 하나님이 정하신 규례를 철저히 지켜 행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컬은 것이 된다고 말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규례와 말씀과 행사는 의식법, 재판법, 도덕법을 구분해서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총칭해서 말을 하는 것이다. 교리는 의식법에서는 폐했을지라도, 도덕법에서는 여전히 율법의 규례와 말씀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는 것이다.


신도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므로 율법을 완수하셨는데, 다시 십계명의 모든 규정을 철저히 지켜 행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 대부분이다. 인간으로서는 도무지 지킬 수 없는 규정을 지켜야하는지 아니면 안지켜도 되는지 속으로 앓고 있는 것이다.


구약시대는 십계명의 규정을 철저히 지켜 행하도록 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렇게 지시한 것은 너희들은 죄인들로서 이것을 완벽하게 지킬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신다. 그래서 희생제물을 통해서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하나님께 회개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신약시대에 들어와서 예수님이 율법에 대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으므로 율법을 완수하셨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도 마찬가지로 율법에 대해서 죽은 자들이다. 그래서 율법을 완수한 것으로 간주된다. 율법을 완수했는데, 율법을 다시 지켜 행하려고 한다면,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전의 상태는 죄인된 상태이다. 예수님이 이렇게 죄인된 상태에서 자유를 주셨는데, 왜 신도들은 다시 죄의 굴레로 들어와 율법의 멍에를 쓰려고 하는가? 도덕법이든 십계명이든 이 규정을 통해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뜻을 생각해보면, 죄는 탐욕에서부터 비롯됨을 발견할 수 있다. 단순히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는 것이 죄라고 생각한다면,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죄는 탐욕, 즉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마음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규정 하나 하나를 통해서 이것을 깨달아라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율법의 글자 조문에서 벗어나, 성령의 인도를 통해서 마음에 새긴 율법의 내용을 생각하면서 행동을 하게 된다. 그래서 율법에 대해서 자유인이지만, 율법을 완전히 폐한 것이 아니라, 완성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글자 조문의 행위대로 행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 벗어난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가 어떤 상황에 놓일 때, 성령의 인도를 받아 행동하면, 율법을 완성한 것으로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것이다. 글자의 조문 그대로가 아니라, 글자의 의미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고 행동하면 된다.


십계명의 제4계명에서 안식일을 거룩히 지켜라 라고 되어있는데, 왜 오늘날 교회는 지키지 않은가? 그것은 신도들이 안식일이 주일로 대체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주일성수라는 말이 나온 것이다.


예수님이 안식일의 주인이시다. 예수님이 율법을 완성하셨으므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 역시 안식을 이룬 것이다. 안식일을 지키는 의미는 안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식을 이룬 자는 날에 의미를 두지 않고, 마음에 안식을 생각한다. 그래서 안식을 지키는 자가 되는 것이다. 안식일이 주일로 대체되었다는 말도 틀렸고, 주일성수라는 말도 잘못된 말이다.


또 다른 예를 들어서 신도가 죄인되었을 때는 하나님으로부터 죄에 대한 심판을 받게되는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속으로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신도 역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음을 믿으면 죄로부터 벗어나 자유인이 되는데, 그것은 과거형이라는 것이다. 현재와 미래는 다시 죄를 지을 수 밖에 없으므로, 회개하여 예수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야 한다는 논리이다. 이게 바로 율법주의의 한 모습인 것이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서 성도가 죄로부터 벗어났으며, 더 이상 율법으로 죄를 판단하지 않을 것을 말씀하시는데도 믿지 않는 것이다. 로마서 8장 1-4절「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런데도, 신도가 계속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존재로 인식한다면, 그의 정체성은 여전히 육에 있는 자가 되는 것이다. 과거에는 영에 있다가 이후에 다시 육에 있는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육에 있는 자인 것이다. 회개하여 하나님께 돌이키지 않은 자인 것이다. 예수가 자신을 위해 죄를 용서받았지만, 앞으로도 계속 죄를 용서받아야 한다고 믿는 자들은 원래부터 육에 있는 자가 된다.


왜냐하면, 예수와 함께 죽은 자는 예수와 함께 부활하였음을 믿기 때문이다. 부활생명을 받은 자는 성령세례를 받은 자로 성령의 인도를 받는다. 그래서 죄로부터 벗어난 자라는 것이다.


성도의 심령 속에는 육의 몸(겉사람)과 영의 몸(속사람)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영에 항상 있게 해야만 한다. 그래야 그는 천국을 이루는 자가 되지만, 가끔 육에 있음을 발견할 때가 있다. 자신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은 존재임을 기억하고, 신속히 돌이켜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육의 가시가 날아든다.


로마서 7장 21-24절「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자기 자신과의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과 연합된 자라는 것의 믿음이 중요한 것이다. 이것이 복음이고,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 나는 날마다 죽은 자이고, 날마다 부활생명을 가진 자라는 것을 기억해야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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