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갈라디아서 6장 14-18절『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엔 토 스타우로 투 퀴리우)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만이 중요하니라 무릇 이 규례(카노니)를 행하는 자에게와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평강과 긍휼이 있을지어다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스티그마타)을 지니고 있노라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트 프뉴마토스)에 있을지어다 아멘』

바울이 십자가의 본질을 설명한다.『엔 토 스타우로 투 퀴리우 ἐν τῷ σταυρῷ τοῦ Κυρίου』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 라는 말이다. 왜 예수와 못박히는 것이 세상에 대해서도 못박히는가? 그 이유는 못박히는 주체가 육의 몸(탐욕:옛사람)이기 때문이다.

이 옛사람은 육의 몸으로서 첫사람 아담으로부터 내려오는 것으로,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자기의 의를 말한다. 자기의 의는 세상에서 무엇인가를 이루어보고 싶어한다. 그래서 십자가에 못박히는 것이 자기의 의(자아)가 죽는 것이다. 이게 되어야 다음 단계인 성령의 능력으로 거듭남(부활:새피조물)으로 나아가게 된다.

예수님은 사람의 아들이면서 하나님의 아들이셨다. 성경은 예수님을 인자라고 부른다. 인자라는 말은 사람이라는 말이다. 첫사람 아담으로서 내려오는 모든 죄악된 육적 몸을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시므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의 모든 육적 몸도 함께 죽은 것이다.

예수님의 이 죽음이 없다면 세상에서 구원받을 자는 아무도 없는 것이다.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으로 인해서, 새피조물로서 부활생명을 받아 거듭나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종교적인 의례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오직 거듭남이 구원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이전에는 내가 주인이었는데, 새로운 피조물이 되면 호 로고스가 심령 안에서 주인으로 되는 것이다. 호 로고스는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호 로고스인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특정 공간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성도의 영 속에 나타나므로, 프로슈케 기도를 통해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마가복음 4장에서 씨뿌리는 비유가 있다. 4장 4절에서 들으라(아쿠테) 라고 말을 한다. 4장 9절에서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늘 주의 음성을 들으라는 것이다. 들을 귀가 열려있는 자들은 성령으로 거듭난 자와 성령세례를 받은 자들이다.

호 로고스는 세밀한 음성으로 말씀하신다. 들을 귀는 육적 귀가 아니라 마음의 귀를 의미한다. 즉 심령으로 울리는 음성인 것이다. 바울이 다메섹에서 주님의 음성을 들을 때, 다른 사람은 듣지 못했다. 귀머거리는 눈으로 상대방의 소리를 듣는다. 영적인 음성은 육적인 귀로 소리를 듣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호 로고스에서 로고스(말씀)의 헬라어 의미는 생각의 표현이다. 즉 하나님의 생각의 표현이다. 하나님의 생각의 표현은 인간의 뇌를 통해 오는 것이 아니라 심령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심령은 영의 마음이다. 우리의 심령은 어디에 있는가? 요한복음에서는 배에서 생수가 나온다는 말이 있는데, 그것은 몸의 중심인 배에 있다는 것이다. 심령에서 나오는 마음과 뇌에서 나타나는 생각을 구분해야만 한다. 뇌의 생각에 의지하지 말고 영의 마음을 집중하여 음성을 들어야 하는 것이다. 간단하게 대화하듯이 주님께 묻고 울림을 통해 말씀을 듣는 것이 훈련을 통해서 대화가 길어지게 된다. 아이가 엄마와 대화하듯이 처음에는 짧게 성장하면서 길게 대화를 하게 된다.

고린도후서 13장 5절『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

성도의 영 안에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임재하여 있다는 말씀이다. 그런데, 수많은 신도들은 여전히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고 있는 실정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신도의 영 속에 임재하지 않으면, 그들은 거듭난 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들은 고린도후서 13장 5절의 말씀을 믿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심령 속의 예수 그리스도와는 별도로 심판주로서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지 알 수 없다. 성도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으셨으므로, 더 이상 심판은 없는 것이다.

성도의 영 속에 성령의 역사로 성전이 세워지며, 또한 하늘에 앉히심을 받는다 라고 한다. 에베소서 2장 5-6절『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사도바울도 셋째 하늘을 경험하면서, 몸밖에 있었는지, 몸안에 있었는지 모르겠다고 고백하고 있다. 영적인 천국과 하나님 나라는 공간적인 의미로서 이해할 수 없으나, 사람의 몸이 모든 신경으로 세포와 연결되어 있듯시, 성도 한 사람의 천국이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하나님 나라와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육의 눈으로 보는 물리적 공간은 한정되어 있지만, 영적인 세계는 공간적인 개념이 아니라, 다른 특별한 것이라 여겨진다.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실 때에도 벽을 뚫고 나타나시고, 갑자기 사라지시고, 몸이 변형되시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볼 수 있다.

카노니(κανόνι)는 표준을 의미하며, 성령을 가리킨다. 즉 토라(율법)이 표준이 아니라 성령이 표준이라는 의미다. 스토이케수신은 ~와 함께 걸어간다는 의미다. 표준이 되는 성령과 함께 걸어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이스라엘은 영적 이스라엘 즉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를 의미한다.

스티그마타(στίγματα)는 복수 명사로서 흔적들이다. 그것은 성령의 열매를 의미한다.

투 프뉴마토스(τοῦ πνεύματος)는 심령이 아니라, 성령과 함께 라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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