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며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며


디모데전서 1장 1-2절『우리 구주 하나님과 우리의 소망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명령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믿음 안에서 참 아들된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우리 구주 하나님으로 번역된 우리 말의 헬라어는『데우 소테로스(Θεοῦ Σωτῆρος구주) 헤몬(ἡμῶν 우리의)』데우는 정관사가 있을 때는 성부 하나님, 없을 때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따라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의 구주되시며, 우리의 소망이신 그리스도 예수께서 부르심에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된 바울은 』으로 수정되어야 한다.


그네시오(γνησίῳ)는 낳은 이라는 의미다. 테크노(τέκνῳ)는 아들이 아니라 자녀다. 믿음 안에서 나은 자녀 라는 의미다. 사도바울은 은혜와 긍휼과 평강에 대해서 목회자들이 가지고 있어야 할 덕목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사도바울은 헬라어 은혜와 히브리어 평강을 붙여서 독특한 인사를 했다. 주안에서 헬라인도 유대인도 모두 한 형제자매인 것을 알려주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다른 서신서 와는 다르게 사도바울은 디모데전서에서 두 단어 사이에 긍휼이라는 단어를 추가했다. 가장 먼저 쓰인 서신서로 알려진 갈라디아서 6장 16에서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마지막 인사에 보면 『평강과 긍휼이 있을지어다』라고 했다.


어쩌면 사도바울은 1차 전도여행을 통해 세워진 갈라디아 교회에 보낸 첫 서신에서부터 오랜 선교와 목회사역을 마무리하며 영적 아들인 디모데에게 편지를 보내며 돌이켜 보니 자신이 얼마나 긍휼을 입은 존재인지를 고백한 것이다. 이를 통해 영적 아들인 디모데에게 긍휼을 입은 존재임을 잊지 말고 사역에 임할 것을 영적 아비의 마음으로 표현한 것이다.


디모데전서 1장 3-4절 『내가 마게도냐로 갈 때에 너를 권하여 에베소에 머물라 한 것은 어떤 사람들을 명하여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며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몰두하지 말게 하려 함이라 이런 것은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을 이룸보다 도리어 변론을 내는 것이라』


바른 교훈(헤테로다다스칼레인 ἑτεροδιδασκαλεῖν)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다. 그 외의 것은 다른 교훈인 것이다. 복음이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도 안에 역사하시어, 실제적으로 관계를 맺는 것을 의미한다. 지식으로 믿는 그런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의 말씀을 통해서 성령 감동을 받고 은혜로 나아가는 것이다. 우리와 하나되는 예수 그리스도와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반드시 우리의 육적인 것(혼:옛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어야만 한다. 따라서 십자가의 복음이 아닌 모든 것은 다른 교훈이 되는 것이다.


당시 유대인들은 구약성경을 통해서 신화와 족보, 율법주의적인 것에 대해서 계속 말하고 있었다.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오이코노미안 οἰκονομίαν)』경륜은 청지기라는 의미를 갖는다. 성도는 믿음 안에서 하나님의 청지기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교리가 옳고 어떤 교리는 잘못되었다고 하는 그런 것에 몰두하여 변론하지 말라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교리가 아니라, 제대로 된 믿음이 중요한 것이다.


디모데전서 1장 5-7절 『이 교훈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이거늘 사람들이 이에서 벗어나 헛된 말에 빠져 율법의 선생이 되려 하나 자기가 말하는 것이나 자기가 확증하는 것도 깨닫지 못하는도다』


교훈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이다. 청결한 마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사함을 받아 살아난 영의 마음이다. 쉬네이데세오스(συνειδήσεως)를 양심으로 번역했는데, 영어성경도 마찬가지다. 양심으로 번역된 쉬네이데세오스는 함께 아는 것이다. 즉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교훈이 선한 양심을 위한 것이라면 다른 종교와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다른 종교는 열심히 노력해서 양심을 회복한다고 주장한다. 기독교는 자기를 부인하고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는 것이다. 거짓된 믿음은 자기를 내세우는 믿음이다. 예수를 믿는다고 말을 하면서도, 자기를 내세우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은 자기를 부인하라고 하는데, 자기가 주체가 되어 믿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믿음이 되어야만 한다.


사도바울은 디모데에게 『헛된 말에 빠지지 말라』고 권면했다. 당시 디모데가 에베소에서 목회하면서 당면한 가장 큰 어려움은 율법주의자들과 영지주의자였다. 율법주의자들은 율법을 정확히 알지 못하면서, 문자적 조문에만 신경을 쓰고 지키느니 마느니 하는 것이다. 율법 속에서 그리스도를 찾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율법주의적으로 빠지는 것이다. 하나님이 율법을 주신 목적은 계명의 규정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계명 속에서 발견해야만 하는 그리스도인 것이다. 오늘날 율법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율법주의로 빠지는 것이다.


그리고 영지주의자들은 이들은 영적인 통찰력 즉 깨달음만 있으면 구원받을 수 있고 어떻게 살든 상관없다고 믿었기에 이들과 큰 마찰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단호하게 디모데에게 헛된 말에 빠지지 말라고 권면했다. 이들은 유대교의 신화들과 끝없는 족보들을 늘어놓는 목적이 자기자랑에 있을 뿐 거룩한 삶, 믿음의 삶과는 무관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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