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을 죽여 이스라엘 중에서 악을 제하여 버리라

 그 사람을 죽여 이스라엘 중에서 악을 제하여 버리라


 


신명기 17장 12-13절「사람이 만일 무법하게 행하고(자돈)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서서(아마드) 섬기는 제사장이나 재판장에게 듣지 아니하거든 그 사람을 죽여 이스라엘 중에서 악(라)을 제하여 버리라(바아르) 그리하면 온 백성이 듣고 두려워하여 다시는 무법하게 행하지 아니하리라」


 


자돈은 교만, 오만, 염치없는 등의 의미를 갖는다. 이러한 행동이 바로 제사장이나 재판장에게 듣지 않는 행동을 의미하는 것이다.


 


아마드는 서다라는 의미가 있으나, 대항하다, 그만두다, 떠나다 라는 의미를 갖는다.


라는 산산조각나다, 깨뜨리다 등 의미를 갖는 라아에서 유래된 것으로, 역경, 고난, 비참, 해로운 등의 의미가 있다.


 


바아르는 불을 붙이다, 소멸하다, 없애다, 태우다 등의 의미를 갖는다.


 


“사람이 만일 무법하게 행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서서 섬기는 제사장이나 재판장에게 듣지 아니하거든 그 사람을 죽여 이스라엘 중에서 악을 제하여 버리라” (וְכָל־הָעָ֖ם יִשְׁמְע֣וּ וְיִרָ֑אוּ וְלֹ֥א יְזִיד֖וּן עֹֽוד׃ ס)


 


다시 번역하면“무법하게 행하여 제사장의 말을 듣지 않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는 자 또는 재판관에 대항하는 자를 죽여 이스라엘 중에서 고난을 소멸시켜 버리라”


 


예수 그리스도는 율법에 따라 신성모독죄로 죽으셨다. 제사장의 눈으로 볼 때는 예수님은 무법한 자로 보이셨으며, 재판관에 대항하는 자로 여겨졌으며, 그래서 그는 율법에 따라 죽임을 당하므로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 곧 영적 이스라엘에게 고난을 소멸시켜 버린 것이다.


 


갈라디아서 3장 10-13절『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니 율법을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 하였느니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진노아래 있었지만, 그들이 문둥병과 같은 죄인됨을 모르고 있을 뿐이었다. 문둥병은 손과 발이 떨어져 나가도 통증이 없어서 모르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진노하셔서 심판 아래 있는데, 이것을 세상 사람들은 죄악으로 인해서 모르고 사는 것이다.


 


예수님은 나무에 달려 죽으셨다. 그게 저주다. 이 땅에서 안식하지 못하고 공중에서 달려 죽었다. 예수님은 저주를 받은 자의 죽음에 붙이셨다. 예수님은 저주스러운 죽음을 죽으신 것이다. 못박히고, 채찍질 당하시고, 인간들이 받아야 할 모든 하나님의 진노를 다 받으신 것이다. 그래서 율법의 저주로부터 속량하셨다고 말한다. 십자가에서 모든 것이 다 이루어졌다. 죄로부터, 죽음으로부터, 저주의 속박으로 부터 다 이루어진 것이다. 그가 채찍을 맞으므로 나음을 얻었다고 성경은 말한다.


 


갈라디아서 3장 10절『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므로 율법을 완성시켰으며,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도 또한 마찬가지로 율법에서 벗어났는데,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말을 하면서도, 믿는 자가 스스로 율법을 지켜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율법을 세우면, 그것이 기준이 되어 하나님이 그 율법대로 판단하신다는 것이다. 자기가 쳐놓은 덧에 자기가 걸려드는 것이다.


 


갈라디아서 2장 18절에서 『만일 내가 헐었던 것을 다시 세우면 내가 나를 범법한 자로 만드는 것이라』모든 죄인들은 율법에서 완전한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교회 사람들 대부분, 율법이 아닌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믿지만,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 율법을 바라보고 지켜나간다고 생각한다. 즉 율법을 지켜나가는 것은 구원이 아니라, 다만 죄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그러나 율법을 지키려고 하는 자는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을 온전히 믿지 못하는데서 기인한다.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말은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부활한다는 믿음이다. 그래서 예수와 함께 죽으므로 죄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다. 그런데, 다시 율법으로 들어가서 죄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게 된다. 갈라디아서는 이를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믿음으로 구원받는다 라고 믿으면서 율법으로 죄를 짓지 않게다는 생각은 열처녀의 비유에서처럼, 미련한 다섯처녀가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를 영적 간음이라고까지 표현했다. 예수님의 말도 믿고, 자기의 생각도 믿고, 적당히 섞어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다. 상경은 율법을 지키면, 모든 율법을 하나라도 어기면 안된다는 것이다. 선택적으로 할 수 없는 것이 율법이다.


 


신명기 27장 26절에서『이 율법의 말씀을 실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그런데, 오늘날 교회 사람들은 지킬 수 없는 율법을 왜 스스로 세우는가? 율법을 지키려고 하는 사람은 저주 아래 있다고 성경은 말을 하는데도 지키려고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현실적으로 죄를 짓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율법이 아니라 예수와 함께 죽는 십자가다.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부활하는 믿음을 가진 자는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받는 자가 된다.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받는 자는 날마다 죽은 자임을 기억하고 그 믿음을 지켜나가야만 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모든 율법의 규정에서 벗어난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죄를 물을 수 있는 규정이 없다. 로마서 8장 1-2절에서도『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은혜 아래 있게되므로 율법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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