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을 미쁘신 창조주께 의탁할지어다
영혼을 미쁘신 창조주께 의탁할지어다
베드로전서 4장 12-13절『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페이라스몬)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사랑하는 자들은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들이다. 불(테 엔 휘민 퓌로세이 τῇ ἐν ὑμῖν πυρώσει)은 불 안에서, 시험(페이라스몬πειρασμὸν)은 마귀의 유혹이다. 즉 마귀의 유혹으로 너희가 불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이 성령을 받은 후에 마귀의 시험에 들어간 것처럼, 제자들도 성령을 받은 후에 마귀의 미혹이 더 강해지는 것이다. 마귀의 미혹의 대상은 성령세례를 받은 사람들이 주가 되는 것이다. 성령세례를 받은 자들도 옛사람의 모습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옛사람이 십자가에서 죽은 것은 하나님이 그렇게 봐주시는 것이고, 옛사람은 육체 속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성령의 능력으로 싸우라는 것이다. 그 싸움은 십자가에서 날마다 죽는 죽음이다. 그런데, 신도들은 옛사람의 모습을 보면서, 회개하고 죄를 용서해달라고 말하는 것이다. 죄의 용서가 아니라, 죄에 대해서 죽는 것이 되어야만 한다.
파데마신(παθήμασιν)은 십자가의 고난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의 열정을 의미한다. 그래서 십자가와의 연합을 의미한다. 성도가 직접 십자가를 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연합되어 죽는 것이다. 그 의미는 바로 자기를 부인하는 삶이다. 그때 주님의 영광이 자기를 부인하는 삶 가운데서 나타나는 것이다.
베드로전서 4장 14절『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그리스도의 이름은 말씀이신 호 로고스이다. 엔 오노마티(ἐν ὀνόματι )는 이름 안에서 라는 의미다. 즉 호 로고스 안에서 라는 말이다. 치욕을 당하는 것은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호 로고스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비난한다는 것이다. 호 로고스 안에 있는 자는 성령(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신다.
베드로전서 4장 15-16절 『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둑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토 오노마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고난은 비난받는 것을 의미한다. 비난받는 것을 두가지로 대조한다. 육적인 악행으로 비난받는 것과 그리스도로 인해서 비난받는 것이다. 토 오노마티(ὀνόματι)는 호 로고스의 이름이다.
베드로전서 4장 17-18절『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은 어떠하며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받으면 경건하지 아니한 자와 죄인은 어디에 서리요』
심판은 먼저 교회 안에 있는 자들로 시작한다. 교회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지만, 택함을 입지 못한 자를 먼저 심판하는데, 영적으로 죽어있는 자에게는 심판에 대해서 더 이상 말할 것도 없다는 것이다. 교회 안의 사람들 중에는 예수를 믿는 자와 예수와 함께 죽은 자가 분리된다. 예수를 믿는 자는 자기가 주인이지만, 예수와 함께 죽은 자는 예수가 주인인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의인은 그렇게 많지 않다는 말이다.
베드로전서 4장 19절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에 그 영혼(프로슈카스)을 미쁘신 창조주께 의탁할지어다』
아가도포이이아(ἀγαθοποιΐᾳ)는 죽었던 영을 살리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 의탁하게 한다. 피스토(πιστῷ)는 신실한이라는 의미다. 고난을 받는 자들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려고 하는 자들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연합되는 자(자기를 부인하는 삶)들이다. 프슈카스(ψυχὰς)는 생명(soul)들이다.
요한복음 6장 63절『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모든 사람들의 영이 육체에 갇혀 죽어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하여 영이 살아난다는 것이다.
부활은 육체가 다시 살아나는 것이 아니라, 이전의 영적 생명을 되찾는 것을 의미한다. 에베소서 2장 5-6절「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숙카디죠)」
숙카디죠는 과거형으로 이미 앉혔다는 것이다. 육체가 살아있는데, 이런 말을 하는 것 자체가 육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영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는 것은 부활을 의미하며, 성도 역시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한 것이다. 그것은 영적인 부활임을 나타낸다. 다만 영이 살아난 것 뿐만 아니라, 영이 영의 몸을 입고 있는 것이다. 부모로부터 받은 몸이 있지만, 하늘로부터 영은 영의 몸을 입고 하늘에 앉혀있는 것이다.
베드로전서 3장 18절「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그래서 사도바울은 혈과 육에 대해서 말을 한다. 고린도전서 15장 50절「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혈과 육은 부모로부터 받은 육체를 의미하는바, 이는 결코 하나님 나라를 받을 수 없으며, 반드시 죽는 존재인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육의 부활을 믿는가 하면, 교리에는 육과 영의 전인격적인 부활을 설명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인격적인 육은 부모로부터 받은 육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육이 되어야 한다. 이게 성령세례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5장 44절에서도『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그래서 영의 몸은 영을 담는 몸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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