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잘못된 신앙에 대해서 싸워라
너는 잘못된 신앙에 대해서 싸워라
베드로전서 5장 9절『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이를 다시 해석해보면, 『너는 그가 (교회)질서 속에서, 형제애를 발휘하고, (교회의) 어려움을 성취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너는 그를 굳건한 믿음에서 그가 주장하는 잘못된 신앙에 대해서 싸워라』는 것이다.
잘못된 신앙은 주로 율법주의가 해당된다. 믿음으로 구원을 받지만, 율법도 철저히 지켜 나가는 혼합적인 형태를 의미한다.
오늘날 기독교 내에서도 복음과 율법을 구분하여 말한다. 『율법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복음으로 구원받는다』라고 말을 하기도 한다. 우리는 율법과 율법주의를 구분하지 못하면 율법과 복음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따라서 우리는 『율법주의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복음으로 구원받는다』라고 말을 하는 것이 바른 말일 것이다. 교회에서 흔히 말하는 계명을 지켜 행하는 모든 행위들은 율법주의인 것이다.
율법과 율법주의를 구분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율법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이 백성들에게 율법을 지켜서 하나님의 의에 이르도록 명령하셨다. 백성들은 율법의 계명들을 지키려고 했으나 지킬 수 없었다. 그래서 모두가 동물의 희생제사를 통해서 죄에서 벗어나려고 한 것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신 목적은 너희들은 모두 죄인들인데, 율법을 통해서 그러한 사실을 깨달으면, 희생제사를 통해서 약속의 씨(그리스도)를 발견하라는 것이다.
율법주의의 대표적인 것에 대해서 보면, 예수를 믿는다고 말을 하면서도 날마다 죄를 용서받아야 한다거나, 십일조를 철저히 해야한다거나, 주일성수를 해야 한다거나, 교회 건물을 성전이라고 말을 하는 등의 수많은 사례를 볼 수 있다. 율법아래 있는 자들은 여전히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들이다. 부활을 믿지만, 육체가 죽어서 부활됨을 믿으으므로, 역시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들이다.
이외에도 이단으로서 영지주의가 있다. 오늘날은 많은 교회에서 성령체험이니 은사를 강조한다. 신비한 체험을 통해서 하나님이 역사하신다고 믿는 것이다. 신비한 체험을 통해서, 그 사람에게 성령이 역사하여 거룩한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하거나, 그 사람이 신성을 가진 자가 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다.
은사에 대해서, 하나님의 예언 능력을 받았다고 하며, 다른 사람의 미래에 대해서 예언을 하거나, 국가나 사회에 어떤 사건들이 일어날 것을 예언하기도 한다. 신비한 말(방언)을 통해서 하나님과 직접 소통하여 병도 낫게 해주고, 이 땅에서도 복을 받아서 잘되게 해 달라고 빌고 있으며, 혹시라도 문제가 해결되면 신통한 능력을 가졌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것이다. 이게 영지주의에서 말하는 감추어진 신성을 깨우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이러한 모든 행위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하나님이 초대교회 당시 제자들에게 허용하신 것인데, 오늘날 많은 교회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에 있는 신성(하나님의 형상)을 깨우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다.
영지주의를 추구하는 종교들은 대부분 사상이 같다. 마음 속에 있는 신성을 깨우는 것이다. 그래서 노력으로 그것을 이루어 보려고 하는 것이다. 자기를 신적인 존재로 생각하는 모든 유형을 의미한다. 열심히 노력하여 신적인 수준에 이를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래서 종교통합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나 기독교는 전혀 다른 이야기다. 성경(로마서 1장)은 인간의 마음에 신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 악한 탐욕만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영지주의 자들은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마음을 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 스스로 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베드로전서 5장 10절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
여기서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에 대한 헬라어 원어를 보면 『Καλέσας (카레사스:부르다) ὑμᾶς(휴마스:너는) εἰς(에이스:안으로) τὴν(관사) αἰώνιον(아이오니온:시작과 끝이 없는) αὐτοῦ(아우토우:그는) δόξαν(도잔:광채) ἐν Χριστῷ (엔 크리스토:그리스도 안에서)』이 문장은 모든 은혜의 하나님에 대한 설명이다.『그리스도 안에서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영광 안으로 너를 부르시는』하나님이다. 들어가게 하는 것이 아니라 부르시는 것이다. 잠깐 고난이라고 반역된 것은 올리곤(ὀλίγον작은) 파돈타스(παθόντας수난)으로 작은 수난이다. 즉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자에게 거듭남에 대해서 설명하는 작은 수난을 의미한다. 그래서 가끔 비난도 받는다.
베드로전서 5장 11-14절『권능이 세세무궁하도록 그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내가 신실한 형제로 아는 실루아노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간단히 써서 권하고 이것이 하나님의 참된 은혜임을 증언하노니 너희는 이 은혜에 굳게 서라 택하심을 함께 받은 바벨론에 있는 교회가 너희에게 문안하고 내 아들 마가도 그리하느니라 너희는 사랑의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 모든 이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바벨론에 있는 교회는 로마에 있는 교회를 의미한다. 베드로의 믿음의 아들인 마가가 바울이 로마에 있을 때 같이 있었다는 점(골로새서 4:10)과 유대인들이 그 당시 로마를 바벨론으로 칭했던 점, 요한계시록 17장 5절과 18장 2절에서도 바벨론에 대한 내용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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