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베드로후서 1장 13-14절『내가 이 장막에 있을 동안에 너희를 일깨워 생각나게 함이 옳은 줄로 여기노니 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지시하신 것 같이 나도 나의 장막을 벗어날 것이 임박한 줄을 앎이라』


스케노마티(σκηνώματι) 는 육체를 의미한다. 베드로가 죽을 날이 얼마남지 않은 것을 시사하는 것이다. 육의 장막을 벗어나면 영의 몸(장막)을 입게 된다. 사도바울도 고린도후서에서 장막이라는 표현을 했다. 베드로가 일깨워주려고 하는 것은 성도 안에 그리스도가 함께 하는 것이다. 에델로신(ἐδήλωσέν)은 알리다 라는 말이다. 


베드로후서 1장 15-16절 『내가 힘써 너희로 하여금 내가 떠난 후에라도 어느 때나 이런 것을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교묘히 만든 이야기를 따른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


파루시안(παρουσίαν)은 예수의 강림이 아니라, 옆에 계시는 것을 의미한다. 즉 성도 안에 그리스도의 임재를 말한다. 그의 크신 위엄을 본 것은 베드로가 요한, 야고보와 함께 변화산에서 모세와 엘리야와 대화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빛처럼 빛나는 변화의 광경을 목격한 것을 의미한다. 뒤나민(δύναμιν)은 능력, 권능이다. 


베드로후서 1장 17-18절 『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그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이 소리는 우리가 그와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하늘로부터 난 것을 들은 것이라』


이런 놀라운 광경을 베드로가 목격했는데, 바로 이것이 성도 안에서 임재하는 파루시안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임재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도 들었다는 것이다. 베드로는 성도에게 그리스도가 임재했을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과 연결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베드로후서 1장 19절 『또 우리에게는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를 비추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옳으니라』


확실한 예언은 그리스도께서 성도 안에 계셔서 그의 말씀에 순종할 때 성도는 그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엘리야가 세밀한 주의 음성을 들은 것처럼 성도도 그렇게 되는 것이다. 어둠에서 비추는 등불처럼, 밤을 지나 새벽의 여명에 빛나는 샛별처럼, 성도의 마음이 그러할 때, 간절히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음성이 이렇게 들려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주의해서 들으라는 것이다. 샛별(하나님의 음성)이 마음에 떠오른다는 것은 주의 음성이 마음에 감동되어 떠 오르는 것이다. 베드로는 주의하라고 했다. 마귀의 음성인지 하나님의 음성인지 분별하라는 것이다. 마음에 떠오르는 하나님의 음성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성령의 마음으로 성경을 바탕으로 접근하라는 것이다. 


베드로후서 1장 20-21절 『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


성경은 해석하는 사람마다 다르게 해석되어지고 있다. 그 이유는 성경을 교리적으로 해석하기도 하고, 인본주의 영지주의, 율법주의 사상을 바탕으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고, 잘못된 번역 본으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성경이 작성되었을 때의 원어를 바탕으로 해석되어야 하고, 복음주의를 바탕으로 하고, 교리가 아니라, 말씀이신 호 로고스(예수 그리스도) 중심으로 해석해야만 하는 것이다. 


사사로이 푼다는 것은 인간중심의 인본주의를 따라 해석하는 것이다.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쓴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구약성경은 대부분 이스라엘의 역사 기록과 같은 느낌이 든다. 그래서 대부분 해석을 그 역사를 바탕으로 해석하는데, 구약성경의 내용을 통해서 구원자 그리스도를 발견하지 못하면, 정확한 예언의 해석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예수님은 알파와 오메가라고 요한계시록에서 말씀하셨다. 처음과 마지막이라는 말씀이다. 알파는 구약성경 속에서 그리스도, 오메가는 신약 성경 속에서 그리스도인 것이다. 구약에서는 잠깐씩 사람의 모습으로, 또는 천사의 모습으로 나타나셨다. 그리고 여러가지 모형으로 나타나셨다. 성소, 바위, 양 등으로 예표하신 것이다. 


창세기 3장 15절에서 인간의 모습으로 올 것을 약속하시고, 선지자들을 통해서 미가서 5장 2절에서 베들레헴에서 태어날 것이라고 예언하셨다. 그리고 이사야서 7장 14절에도 처녀의 몸에서 태어날 것을 말씀하고 있다. 다윗에게도 시편 22편에서 십자가에서 고난받으실 것을 말씀하셨다. 예수님의 부활도 시편16편에서 말씀하고 있다. 


예수님이 육신으로 오셔서 스스로『구약에서도 있었다』라는 말씀을 하고 있다. 아브라함과 함께 있었다고 하셨다. 아브라함은 예수님이 태어나시기 전 약 2000년 전의 인물이다. 요한복음 8장 55-59절에서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에 있었다 라고 했다. 그리고 함께도 지냈다고 했다. 


창세기 14장 18절에서『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히브리서 7장에서 이 멜기세덱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하는데, 아브라함이 바로 예수님을 만났다는 말이다. 아브라함이 멜기세덱 왕에게 십분의 일을 바쳤다. 


히브리서 11장 24-26절에서 모세가 그리스도를 만났다는 말씀이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누가복음 24장 27절에서 길을 가다가 두 사람의 제자와 대화를 나누는 중에『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자기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말한다. 


그리고 갈리리 바닷가에서 24장 44절에서 같은 말씀을 하고 있다.『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나” 라는 분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이다. 결국 구약시대의 여호와가 바로 그리스도라는 말씀이다. 


예수님이 요한복음 5장 39절에서『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여기에서 성경은 바로 구약성경을 말한다. 구약성경이 말하고 있는 분은 바로 그리스도에 관한 이야기라는 말씀이다. 


이사야서 34장 16절에서『너희는 여호와의 책에서 찾아 읽어 보라 이것들 가운데서 빠진 것이 하나도 없고 제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 이는 여호와의 입이 이를 명령하셨고 그의 영이 이것들을 모으셨음이라』여호와의 책은 구약성경을 말한다. 


모든 성경을 다 읽어보면 여호와가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까 부분적으로 성경을 보아서는 이해하기 힘든 사실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구약성경의 내용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역사하심을 찾는 것은 참으로 성경해석에 있어서 중요한 것이라 아니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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