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요한일서 2장 1-2절『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여기에 대상은 자녀들이다. 곧 거듭나서 성령세례를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이다. 그들은 성령이 인도하심을 따라 사는 자들로서, 죄를 짓지않는다. 성령께서 죄를 대하는 순간 죄를 짓지 않도록 두려움도 주고,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이다. 그러나, 혹시라도 죄를 범하는 순간이 있더라도 그 대언자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글의 목적은 죄를 범하지 않게 하기 위한 목적이다. 죄를 짓는 순간이 오면 이 글을 잘 생각해보라는 것이다.
힐라모스(ἱλασμός)는 속량을 의미한다. 속량은 값을 주고 사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은 이 세상의 모든 죄를 해결하기 위함이었다.
요한일서 2장 3-4절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그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그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타스 엔톨라스(τὰς ἐντολὰς)는 구약의 십계명과 같은 율법이 아니라, 성령이 인도하시는 예수님의 명령이시다. 그 명령은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이다. 그 사랑은 바로 아가페의 사랑인데, 인간은 아가페의 사랑을 할 수 없다. 그래서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어서 그 사랑을 하라는 것이다. 그 사랑은 영을 살리는 일이다.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심으라는 것이다. 영을 살리는 자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만 할 수 있다.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자가 바로 야다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기노스코멘(γινώσκομεν)은 히브리어 야댜와 같은 단어다. 영을 살리는 일을 하지 않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된 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요한일서 2장 5-6절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하게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그의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그의 안에 산다고 하는 자는 그가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
하나님의 사랑은 아가페이며, 영을 살리는 일이다. 영을 살리는 일은 바로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일인 것이다. 영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으로 살아 움직일 때, 곧 하나님 나라가 되는 것이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자들은 사탄의 지배를 받는 사탄의 종들이다. 그런데, 성도가 그들에게 십자가를 심으므로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는 것이 곧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는 일인 것이다.
메네인(μένειν)은 머물다 라는 의미다. 예수 그리스도가 행하시는 것은 무엇인가? 예수님도 하나님 아버지가 행하시는 것을 그대로 행하신다고 말했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속의 죽음으로 이 세상에 오신 것을 믿게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자는 모든 죄에서 벗어나게 해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다.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마음 속에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탐욕이 있기 때문에, 그 탐욕에 대해서 죽으라고 말을 하는 것이다. 결국 성도가 행하는 것은 탐욕의 옛사람이 십자가에서 죽어야 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대속의 죽음을 이룬 것처럼 성도들도 함께 죽으라는 것이다. 페리파테인 (περιπατεῖν)은 행하는 것으로 번역되었는데, 동행한다는 의미다.
요한일서 2장 7-8절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쓰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처음부터 가진 옛 계명이니 이 옛 계명은 너희가 들은 바 말씀이거니와 다시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쓰노니 그에게와 너희에게도 참된 것이라 이는 어둠이 지나가고 참빛이 벌써 비침이니라』
아가페토이(Ἀγαπητοί)는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들아 라는 의미다. 옛명령은 율법(옛계명)을 의미한다. 계명을 명령으로 수정하여 사용하는 이유는 율법주의가 아닌 율법으로서 명령이기 때문이다. 율법주의는 규정과 조항에 얽매이지만, 율법은 그 속에 그리스도가 숨겨져 있다. 율법 속에 그리스도가(새명령)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시고 지키도록 했다. 그러나 백성들은 율법을 완벽하게 지킬 수 없음으로 동물을 죽여서 희생제사를 하나님께 드린 것이다. 그래서 이런 일이 반복되는 과정에서 인간은 죄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여인의 후손을 기억하고,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바라보라는 것이다. 그래서 율법 속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하는 자는 새명령에 들어가는 자가 되는 것이다.
엔 아우토(ἐν αὐτῷ)는『그의 안에』라는 의미다. 즉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에게도 참된 것이라는 말씀이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어둠(죄)이 지나가고 참빛(예수 그리스도)가 내 안에 들어오신다는 것이다.
요한일서 2장 9-10절 『빛 가운데 있다 하면서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둠에 있는 자요 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여 자기 속에 거리낌이 없으나』
예수 그리스도가 내 안에 있다고 말을 하면서, 형제의 죽은 영을 살리려고 하지 않는다면, 여전히 그리스도가 없는 자라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는 목적은 죽었던 영을 살리기 위함이다. 요한복음 6장 63절에서『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교회에서 형제를 사랑하는 것에 대해서, 예배드릴 때, 옆자리에 앉은 형제들에게『사랑합니다』라고 말을 한다고 형제 사랑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간에 영의 상태를 바라보아야 하는 것이다. 형제를 사랑하는 것은 아가페로, 세상적인 사랑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심는 일이다. 형제간에 서로가 서로에게 십자가를 심는 것이 형제를 사랑하는 일이다. 물론 여러가지 방법으로 형제의 어려움을 도와주는 것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본질은 아니라는 말씀이다.
요한일서 2장 11절『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둠에 있고 또 어둠에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그 어둠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라』
형제를 미워한다는 것은 형제의 영에는 관심이 없는 자다. 그런 사람은 역시 자신의 영에 대해서도 무관심한 자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모르는 자는 영에 대해서 관심이 없다. 그래서 영적인 눈이 닫혀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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