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요한일서 4장 13절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
엔 아우토(ἐν αὐτῷ)는 그리스도 안에 라는 말이다. 성령이 임하시면, 성령의 능력으로 성도가 그리스도 안에 있게 된다. 그래서 그리스도 역시 성령의 능력으로 성도 안에 있게 된다. 성령을 주시는 분은 바로 그리스도 이시다. 엄밀히 말하자면 여호와 하나님이 성령을 성도에게 주시는 것이다. 성령세례를 주시는 분도 바로 그리스도이시며, 여호와 하나님이신 것이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성부는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즉 한 분이신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성부 하나님의 아들로 이 세상에 육신으로 오신 분(인자)이다. 그래서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역사는 성부와 성자 성령의 관계로 나타난다. 그리고 성도 역시 이 땅에 있으므로, 성부와 성자(그리스도), 성령을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는다. 성도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성령의 능력으로 성도가 성부(여호와 하나님)에게 있으며, 그리스도가 성도 안에 있으면, 성령의 능력으로 성부(여호와 하나님)가 성도에게 있는 것이다.
요한일서 4장 14-15절『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우리가 보았고 또 증언하노니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그의 안에 거하시고 그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우리는 요한을 포함한 제자들의 무리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 보았던 자들이다.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시인하는 자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이 되며, 성부 하나님이 성도 안에 거하신다는 것이다. 성도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은 이 땅에서 역사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모습이다.
세상에 초림으로 나타나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인자 곧 사람이지만,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영의 몸을 입은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이다. 신학은 이 땅에 초림으로 오신 분도 하나님, 성부 하나님도 하나님, 성령도 하나님이라고 말을 하므로 하나님을 세분으로 인식하게 만든다.
세분이 각각 인격을 가지고 있다고도 말을 하므로서 하나님 나라에 세분의 하나님이 있는데, 그들은 곧 한 분이라는 이상한 말들을 하고 있는 것이다. 삼위일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에 대해서 이해를 돕기 위해 설명한 것이다. 따라서 이 땅에서 하나님을 바라 볼 때 삼위일체를 통해서 하나님을 알아라고 하는 것이다.
삼위일체의 진정한 의미는 성부와 예수 그리스도와 성도가 성령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요한일서 4장 16절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사랑(아가펜ἀγάπην)은 죽었던 영을 살리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사랑이라는 말은 하나님은 영이라는 말과 같은 것이다. 대부분의 교회는 사람이 죽으면, 그 죽었던 육체가 부활한다고 믿는 것이다. 그러나 부활은 죽은 육체는 살아지고, 영이 영의 몸을 입고 영의 세계인 하나님 나라로 들어간다.
그래서 오늘날 교회가 생각하는 사랑은 하나님의 아가페적인 사랑이라고 말을 하면서도, 육으로 비롯된 인간적인 사랑과 섞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내가 하나님의 아가페적인 사랑을 할 수 있는가 라고 생각하며 괴로워한다. 하나님의 아가페적인 사랑은 육적 자기를 부인하고, 성령으로 거듭나서 죽었던 영을 살리는 것이다. 형제를 사랑하는 것도 바로 이와 같은 원리인 것이다. 영을 살리는 것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는 것이다. 성도가 이웃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심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인 것이다.
요한일서 4장 17-18절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루어진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께서 그러하심과 같이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러하니라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영이 살아있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은 자들이다. 물에서 죽고 성령으로 다시 태어난 자들이다. 물에서 죽은 것은 성도의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은 것이므로 성도도 심판을 받은 것이다. 그래서 심판에 대해서 담대한 자가 된다. 콜라신(κόλασιν)은 처벌, 형벌의 의미를 갖는다. 드려움의 원인은 처벌받을 것이 생각나기 때문에 두려운 것이다.
요한일서 4장 19-21절『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엔톨렌)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엔톨렌은 명령이다. 율법인 십계명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에 대한 명령(새계명)이다. 사랑은 영을 살리는 것이다. 인자의 살을 먹고, 인자의 피를 마시는 것이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연합되면,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의 모든 죄를 사해주시며, 그래서 죽었던 영이 다시 살아나는 것이다. 이게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며, 이것을 믿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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