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그의 주인을 피하여 네게로 도망하거든
종이 그의 주인을 피하여 네게로 도망하거든
신명기 23장 15-16절「종이 그의 주인을 피하여 네게로 도망하거든 너는 그의 주인에게 돌려주지 말고 그가 네 성읍 중에서 원하는 곳을 택하는 대로 너와 함께 네 가운데에 거주하게 하고 그를 압제하지 말지니라
종에 대해 신명기에서는 상반된 모습을 보인다. 신명기15장 12~14절“네 동족 히브리 남자나 히브리 여자가 네게 팔렸다 하자 만일 육년을 너를 섬겼거든 제 칠년에 너는 그를 놓아 자유하게 할 것이요 그를 놓아 자유하게 할 때에는 공수로 가게 하지 말고 네 양 무리 중에서와 타작마당에서와 포도주 틀에서 그에게 후히 줄지니 곧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그에게 줄지니라”
종이 도망치면 돌려주어야 하는가 라는 입장에서,
빌레몬서에 사도바울과 오네시모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오네시모는 빌레몬의 종이었고, 주인에게서 도망쳐 나왔으나 바울을 통해 구원을 얻었다. 사도바울은 오네시모가 필요한 상황이었는데, 그의 주인에게 돌려보내면서 자신의 요구가 관철되도록 부탁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를 위해 간구한다. 비록 사도로서 무슨 선한 것을 명령할 수 있겠으나, 그는 명령하지 않고 사랑을 인해 간구하였다. 많은 세월을 주를 위해 수고했고 지금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옥에 갇혀 있는 나이 많은 그가 간구하고 있는 것이다. 빌레몬은 그의 요청과 간구를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빌레몬서 1장 12절「네게 그를 돌려 보내노니 그는 내 심복이라」바울은 오네시모를 빌레몬에게 돌려보냈다. 노예제도에서 종은 주인의 소유물이었다. 그가 도망쳐 나온 후 바울이 다시 오네시모를 빌레몬에게 돌려보낸 것이다. 빌레몬이 바울의 부탁을 거절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신명기에 따르면, 종은 육년을 섬기고 칠년째는 자유를 주게 했다. 그런데, 중간에 도망을 가버리면 어떻게 하는가 라는 내용이다. 종이 주인으로부터 도망을 가면, 도망간 곳의 사람이 주인에게 돌려보내지 말라는 것이다.
그 종을 돌려보내지 않으면, 도망온 곳의 사람이 주인이 되는 것이다.그래서 원래 주인에게 값을 지불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가 된다. 주인이 바뀌는 것이다. 이게 속량과 관계가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사탄의 종이 된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대속의 죽음으로 십자가를 지셨다. 대속이라는 말은 속량으로서 값을 지불하고 종을 사는 개념이다. 그래서 도망쳐 나온 종은 사탄의 종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되는 것이다. 종에 대한 자유에 대해서 말하고 있으나, 영적으로 출애굽을 상징하며, 또한 사탄으로부터 자유함을 입는 자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사도바울은 에베소서 1장 7절에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라고 말을 한다. 속량은 레위기 4장 20절의『속』을 인용한 것이다. 속량은 대속, 구속이라는 말로도 사용된다. 구입(Purchase)한 후에 해방(delieve)된다는 말이다. 죄인을 사서 해방되는 것이 다. 이것의 개념이 바로 욤키프러다.
골로새서 1장 13-14절『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구원의 문제는 더러움을 씻는 것이 아니라, 어두움으로 부터 건져내는 것이다. 흑암 속에 있으므로 하나님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마태복음 4장 16절에서, 이사야 선지자의 말을 인용해『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하였느니라』라고 말하고 있다. 빛이 비춰주는 것이 구원의 시작이 된다. 요한복음 1장 5절에서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어린양의 죽음을 통해서 하나님이 그 죽음에 연합되는 자를 사시는 것이다. 그래서 죄를 사해주신다. 사는 것이 속량이다. 고린도전서 7장 23절에서는『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
하나님이 사탄으로부터 자기 아들의 피값으로 사는 것이 속량이다. 속량이 없는 죄사함은 없다. 노예를 산 다음에 더러움을 씻어주는 것이다. 디도서 2장 14절에서『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속량이 되어야 깨끗하게 된다. 하나님이 회개하여 옛사람의 옷을 벗는 자를 속량하셔서 자기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크리스찬이라는 말은 그리스도의 것이라는 뜻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구원이다. 그러나 회개하지 않은 자는 이 말을 완강히 거부한다. 사람의 본성은 자기가 주인이 되어 자기 뜻대로 살고 싶어하지 누구의 종이 되고 싶어하지 않는다. 자기 마음대로 살고 싶은 자기가 바로 사탄에 묶여있는 자가 된다. 스스로 자유로운 영혼이라고 외치지만 사탄에 묶여있는 것이다. 흑암에 있기 때문에 깨닫지 못할 뿐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종이 될 때 참 자유인이 되는 것이다.
주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시지만, 회개하여 돌아오는 자만 구원하신다. 『부르심을 받은 자는 많지만 택하심을 받은 자는 적다』는 것이다. 교회에 부르심을 받아 앉아있으면서도, 택하심을 받은 것으로 착각하면 곤란하다. 택하심을 얻는 자는 오직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하나님으로부터 속량된 자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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