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로 중의 여자를 보고 그에게 연연하여 아내를 삼고자 하거든

 포로 중의 여자를 보고 그에게 연연하여 아내를 삼고자 하거든


 


신명기 21장 10-14절「네가 나가서 적군과 싸울 때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손에 넘기시므로 네가 그들을 사로잡은 후에 네가 만일 그 포로 중의 아리따운(야페) 여자를 보고 그에게 연연하여 아내를 삼고자 하거든 그를 네 집으로 데려갈 것이요 그는 그 머리를 밀고 손톱을 베고 또 포로의 의복을 벗고 네 집에 살며 그 부모를 위하여 한 달 동안 애곡한 후에 네가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의 남편이 되고 그는 네 아내가 될 것이요 그 후에 네가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거든 그의 마음대로 가게 하고 결코 돈을 받고 팔지 말지라 네가 그를 욕보였은즉 종으로 여기지 말지니라」


 


전쟁 포로를 향한 사랑의 감정을 인정하고 있다. 전쟁 포로 중에 한 여인을 보고 사랑에 빠지면 그녀를 아내로 삼기 위해 데려다가 여인의 머리를 밀고 손톱을 베게 했다. 이 의식의 의미는 과거 죄악 된 삶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상징적 행위이며, 그녀로 하여금 고향을 잊게 만드는 의식이었다.


 


그 후에 1개월의 애곡기간 동안 몸 담았던 조국, 부모와의 이별을 인정할 수 있는 기간을 허락하였고, 마음을 완전히 정리할 수 있도록 했다. 훗날 그 여인에 대한 마음이 식게 되어도 그녀를 종으로 팔지말고 하나님의 딸이요 택한 백성으로 여겨 그녀가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있다. 고향과 가족을 잃은 그녀에게 하나님께서 가족이 되어주시는 것이다.


 


영적으로 보면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연합된 자를 상징한다. 성도의 심령 속에는 옛사람과 새사람이 존재하며, 항상 싸우는 것이다. 그러나 성령으로 옛사람을 죽게 만들면, 그의 정체성은 새사람이 되며,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가 된다. 아름답다는 야페는 즐거운, 유쾌하다는 의미도 있다. 그래서 종에서 아내가 되는 것이다.


 


요한복음 15장 12-15절「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사람이 친구(필로스)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필로스)라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필로스는 사랑하는 사람이다. 예수님은 관계를 통해서 마음 속에 있는 말을 나누는 사이를 필로스라고 했다. 친구라고 표현했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가장 사랑하는 사이는 부부일 것이다.


 


“그를 네 집으로 데려갈 것이요” 집은 성전을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아내가 된 성도는 성전에 거하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전의 것은 다 벗어버리고, 성전에 걸맞는 예복을 입게 된다.


“머리(로쉬)를 밀고(갈라흐) 손톱을 베고 또 포로의 의복을 벗고 네 집에 살며”로쉬는 머리 우두머리를 의미하며, 여자의 우두머리는 사탄이었지만, 갈라흐는 황폐화시킨다, 머리를 밀다라는 의미를 갖으므로, 우두머리가 사탄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포로의 의복, 옛사람의 옷을 벗어버리고, 그리스도의 옷으로 갈아입는 것이다. 손톱을 깍는 행위도 육적으로 죽은 자임을 나타낸다.


 


“그 부모를 위하여 한 달 동안 애곡한 후에”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는 육적으로 첫사람 아담의 몸에서 이어져 온 죄의 몸이 죽는 것이다. 그리고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는데, 이를 성령세례라 한다. 성령세례를 받은 자는 바로 새사람의 몸을 입는 것이 아니라, 일정기간을 지난 후에 하나님이 성령을 통해서 거듭나게 해 주시는 것이다.


 


“그 후에 네가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거든 그의 마음대로 가게 하고 결코 돈을 받고 팔지 말지라 네가 그를 욕보였은즉 종으로 여기지 말지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십자가에서 죽었고, 그래서 죄의 몸이 죽었으므로, 죄로부터 자유함을 입는 것이다. 죄의 종이 아니라, 죄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속량은 노예를 사는 개념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에서 연합되므로 이미 속량되었으므로, 다시 팔 수 있는 그런 존재는 아니라는 말이다. 돈을 받고 샀는데, 돈을 받고 판다는 것은 속량이 아닌 것이다.


 


골로새서 1장 13-14절『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에서 『곧』이라는 말은 속량과 죄 사함이 동의어의 개념이 아니라,『이어서』라는 개념이다. 속량이 있어야, 죄사함을 받는다는 뜻이다.


 


여기에서 속량은 레위기 4장 20절의『속』을 인용한 것이다. 『그 송아지를 속죄제의 수송아지에게 한 것 같이 할지며 제사장이 그것으로 회중을 위하여 속죄한즉 그들이 사함을 받으리라』


창세기 6장 4절에서『너는 고페르 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되 그 안에 칸들을 막고 역청을 그 안팎에 칠하라』욤키프러의 명사형이 역청이다.『칠하라(덮으라)』는 말이 카파르다. 구약시대 성소 마당에 놋 제단이 있었다. 어린양에게 안수를 하면서 모든 죄를 전가시킨다. 이것도 redeem이라는 단어다. 그래서 죽은 어린양과 죄인이 하나가 되는 것이다. 이게 회개하는 자에게 일어나는 속죄가 된다. 그 다음에 물두멍 대야에서 손과 발을 씻어준다. 씻은 다음에 성소 안에 들어갈 수 있었다. 성소 안에는 덮개가 있는데, 이 덮개가 바로 이 단어다. 지성소에는 1년에 한번(음력 7월 10일) 들어가는데, 지성소 안에는 법궤가 있고, 그 위에 속죄소라고도 하고 시은소라고도 하는 덮개(히브리어로 코페르트:은혜로 덮었다는 뜻)가 있다.


 


모든 죄인들의 죄를 덮는 날이 바로 욤키프러였다. 그래서 1년에 한번 대제사장이 시은소 위에 피를 뿌려, 그 피가 덮어지는 것이다. 신약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주님이 죄인들을 피값으로 사는 것이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휘장이 찟어짐) 부활하셔서, 대제사장으로서 보좌에 계시는 하나님께 나아갔으므로, 하나님이 회개하고 돌이키는 자를 사탄으로부터 피값으로 죄인을 사는 것이다.


 


『속』이라는 말은 덮혀지는 것(카파르)이다. 하나님의 심판으로 부터 덮혀지는 것이다. 그래서 속량이 없는 죄 사함은 없다. 하나님이 사는 자는 죄인이 회개하여 돌이키는 자로서, 하나님의 아들을 대신 죽게해서 사는 것이다. 놀라운 은혜다. 회개하는 자에게만 자기 아들의 죽음의 값을 지불하는 것이다. 회개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주어진다. 그래서 하나님의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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