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시리니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시리니
신명기 18장 15-22절「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가운데 네 형제 중에서 너를 위하여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을지니라 이것이 곧 네가 총회의 날에 호렙 산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 구한 것이라 곧 네가 말하기를 내가 다시는 내 하나님 여호와의 음성을 듣지 않게 하시고 다시는 이 큰 불을 보지 않게 하소서 두렵건대 내가 죽을까 하나이다 하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들의 말이 옳도다 내가 그들의 형제 중에서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그들을 위하여 일으키고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령하는 것을 그가 무리에게 다 말하리라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전하는 내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내게 벌을 받을 것이요 만일 어떤 선지자가 내가 전하라고 명령하지 아니한 말을 제 마음대로 내 이름으로 전하든지 다른 신들의 이름으로 말하면 그 선지자는 죽임을 당하리라 하셨느니라 네가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그 말이 여호와께서 이르신 말씀인지 우리가 어떻게 알리요 하리라 만일 선지자가 있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한 일에 증험도 없고 성취함도 없으면 이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이 아니요 그 선지자가 제 마음대로 한 말이니 너는 그를 두려워하지 말지니라」
이 말을 사도행전에서 다시 인용해서 사도바울이 말한다. 사도행전 3장 22-26절『모세가 말하되 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 같은 선지자 하나를 세울 것이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그의 모든 말을 들을 것이라 (에안)누구든지 그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백성 중에서 멸망 받으리라 하였고 또한 사무엘 때부터 이어 말한 모든 선지자도 이 때를 가리켜 말하였느니라 너희는 선지자들의 자손이요 또 하나님이 너희 조상과 더불어 세우신 언약의 자손이라 아브라함에게 이르시기를 땅 위의 모든 족속이 너의 씨(엔 토 스페르마티 수)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셨으니 하나님이 그 종(톤 파이다)을 세워 복 주시려고 너희에게 먼저 보내사 너희로 하여금 돌이켜 각각 그 악함을 버리게 하셨느니라』
모세는 하나님과 백성의 중보자로서 역할을 수행했다. 백성들이 모세를 통하여 말하고 행동했던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모세와 같은 선지자(예수 그리스도)가 나올 것인데, 사람들은 그 분(호 로고스)에게 직접 말을 듣는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음을 믿는 자에게 하나님이 예수와 함께 부활시켜 주시는데, 죽었던 영이 부활하게 되면, 성도의 심령 속에 새성전이 세워지고, 그래서 말씀이신 그리스도께서 호 로고스로 성도의 심령 속으로 들어와 성도와 교제를 나누는 것이다. 성경 말씀 속에서 호 로고스는 역사하시고, 성도에게 말씀하신다.
에안(ἐὰν)은 만일이라는 가정법이다. 말씀을 듣는 것은 쉽지 않지만, 만일 듣지 않는 자가 있다면 멸망이라는 말이다. 대부분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주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는데, 듣지 않으면 멸망당한다는 것이다. 호 로고스의 말씀은 미세한 음성으로 성도에게 다가온다.
야고보서 5장 7절『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파루시안) 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강림(재림)으로 번역된 파루시안은 파라(옆에서)와 루시안(존재하다, 있다)의 합성어로서, 성도의 심령 속에 호 로고스가 들어오는 것을 의미한다. 호 로고스가 들어오는 것을 이른 비와 늦은 비로 비유하며 설명한다.
베드로후서 1장 15절『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파루시안)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교묘히 만든 이야기를 따른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 파루시안(παρουσίαν)은 예수의 강림이 아니라, 옆에 계시는 것을 의미한다. 즉 성도 안에 그리스도의 임재를 말한다. 그의 크신 위엄을 본 것은 베드로가 요한, 야고보와 함께 변화산에서 모세와 엘리야와 대화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빛처럼 빛나는 변화의 광경을 목격한 것을 의미한다. 이런 놀라운 광경을 베드로가 목격했는데, 바로 이것이 성도 안에서 임재하는 파루시안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임재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도 들었다는 것이다. 베드로는 성도에게 그리스도가 임재했을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과 연결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만일 어떤 선지자가 내가 전하라고 명령하지 아니한 말을 제 마음대로 내 이름으로 전하든지 다른 신들의 이름으로 말하면 그 선지자는 죽임을 당하리라 하셨느니라” 거짓선지자들은 성경의 원래의 언어인 히브리어나 헬라어에 능통하지 못하거나, 신학대학교에서 교육받은 교리를 진리인양 생각하거나, 성경 말씀을 인본주의, 율법주의, 영지주의 사고를 바탕으로 자기 생각대로 해석하여 신도들에게 가르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왜곡되어 엉뚱한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마태복음 23장 15절에서『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이는 왜곡된 성경 말씀을 통해서 구원이 아니라 오히려 구렁텅이로 인도하는 것과 같다는 표현이다.
오늘날 교회 공동체에서 잘못된 교리를 하나 말을 한다면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일 것이다. 대부분 신도들은 예수를 믿으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으로 믿는 신도의 죄를 하나님이 사해주신다는 것을 믿는다. 그러나 여기에는 세가지의 오류가 있다. 신도가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라, 신도가 예수의 믿음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라는 의미가 된다. 둘째,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으로” 이 말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와 신도가 연합되어 죽고, 그 결과 대속의 죽음으로” 라는 의미가 된다. 함께 죽지 않으면 대속의 죽음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만일 선지자가 있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한 일에 증험도 없고 성취함도 없으면 이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이 아니요” 이는 참 선지자와 거짓 선지자를 구분하는 기준이며, 성취되지 않은 예언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는 의미다. 예언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성취된 것이다. 이단들 중에는 여전히 그리스도가 아직 오지 않았다고 말하는 자들도 있다.
신도들 대부분은 재림에 대해서도 예수 그리스도는 여전히 오지 않았다고 말을 한다. 성도의 심령 속에 성전이 세워진 자에게는 예수님이 영으로 재림해 들어와서 임재하신다. 그래서 그 분을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것이다. 누구의 말이 맞는 이야기인가? 여전히 예수님이 재림해 들어와 임재하심을 믿지 않은 자는 심판의 대상이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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