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살된 시체가 발견되고 그 쳐죽인 자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거든

 피살된 시체가 발견되고 그 쳐죽인 자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거든

 

신명기 21장 1-9절「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어 차지하게 하신 땅에서 피살된 시체가 들에 엎드러진 것을 발견하고 그 쳐죽인 자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거든 너희의 장로들과 재판장들은 나가서 그 피살된 곳의 사방에 있는 성읍의 원근을 잴 것이요 그 피살된 곳에서 제일 가까운 성읍의 장로들이 그 성읍에서 아직 부리지 아니하고 멍에를 메지 아니한 암송아지를 취하여 그 성읍의 장로들이 물이 항상 흐르고 갈지도 않고 씨를 뿌린 일도 없는 골짜기로 그 송아지를 끌고 가서 그 골짜기에서 그 송아지의 목을 꺾을 것이요 레위 자손 제사장들도 그리로 갈지니 그들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사 자기를 섬기게 하시며 또 여호와의 이름으로 축복하게 하신 자라 모든 소송과 모든 투쟁이 그들의 말대로 판결될 것이니라 그 피살된 곳에서 제일 가까운 성읍의 모든 장로들은 그 골짜기에서 목을 꺾은 암송아지 위에 손을 씻으며 말하기를 우리의 손이 이 피를 흘리지 아니하였고 우리의 눈이 이것을 보지도 못하였나이다 여호와여 주께서 속량하신 주의 백성 이스라엘을 사하시고 무죄한 피를 주의 백성 이스라엘 중에 머물러 두지 마옵소서 하면 그  흘린 죄가 사함을 받으리니 너는 이와 같이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한 일을 행하여 무죄한 자의  흘린 죄를 너희 중에서 제할지니라」

 

삶의 현장에 피살된 시체가 발견되었다. 그 시체는 자연사나 사고사가 아닌 계획된 범행에 의해 죽임을 당한 사람이 분명하다. 문제는 그 시체가 있던 장소가 인기척이 드문 곳이라 누구에 의해 생명을 잃었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시체는 있는데, 죄를 범한 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경우이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죄인이 된다. 죄의 출처를 알 수 없다. 로마서 5장 13절『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었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였느니라』사람들은 죄의 원인을 아담으로 돌리고 있다. 그러나 로마서 5장 14절『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라고 말한다.

 

아담으로 부터 모세까지라는 말은 첫사람 아담으로부터 예수 그리스도(마지막 아담)까지라는 말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 모세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는 말에서 첫사람 아담은 오실 자(예수님)의 복사판이라는 것이다. 즉 예수님이 첫사람 아담으로 와서 죄의 몸으로 십자가에서 죽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은 스스로 하늘에서 왔다고 했다. 마찬가지로 모든 사람도 그의 영이 하늘에서 세상으로 와서 흙속에 갇힌 것이다. 하나님 나라에서 죄의 결과 이렇게 영이 갇혀 죽어있는 것이며, 죄의 결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 죽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옛사람의 죽음이며, 죄에 대한 죽음이기도 하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겉으로는 유대 지도자들이 신성모독죄를 걸어서 십자가에 처형했다. 그들이 살인죄를 저지런 것이다. 그러나 영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죽인 자들을 알 수 없다.

 

누군가를 위해 대속으로 죽은 자의 죽음은 살해한 자의 정체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엄밀히 보면, 세상 사람들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를 살해한 자가 된다.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공동체가 책임이 있는 것이다.

 

오늘날 대부분 신도들은 자신이 영적으로 예수를 죽인 자이며, 그렇게 생각하는 자는 드물 것이다. 다만 예수의 죽음으로 그 분이 자신의 죄를 대속하여 죄로부터 자유함을 입었다고 믿을 뿐이다. 그러나 진실은 모든 사람들이 예수를 죽인 자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 모든 공동체가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 있는 그 어떤 사람, 공동체도 책임을 지려고 하는 사람은 없다. 다만 영적으로 세상 사람들 중에 소수의 남은 자가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죽은 자로 여기며, 애통해 하는 것이다. 그 애통해 하는 자가 그리스도를 죽였으며, 그 또한 그렇게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로 여기게 된다.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고의적 살인에 의해 부당한 피가 흘려지는 일은 땅을 더럽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피에 대한 책임은 공동체가 져야 했다. 그래야 이스라엘 내의 경건과 거룩이 유지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그 시체가 발견된 장소와 가장 가까운 마을은 그 죽음에 대한 속죄의 규정을 실행한다. 속죄의식을 위해 선택되는 아직 부리지 아니하고 멍에를 메지 아니한 암송아지는 강제로 죽임을 당한 피살자와는 다른 존재로 피살자의 죽음을 덮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암송아지의 죽음은 이스라엘 공동체 내에 피 흘린 죄가 있지 않도록 하는 역할이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의 그림자이기도 하다.

 

암송아지의 피가 흐르게 되는 마르지 않고 지속적으로 흘러가는 물줄기는 누군지 알 수 없는 살인한 죄를 영영히 흘려보낸다는 의미가 있다. 의식을 마친 후 가까운 성읍의 모든 장로들은 암송아지 위에서 무죄와 정결함을 입증하는 의미로 손을 씻으며 이렇게 기도했다. 『우리의 손이 이 피를 흘리지 아니하였고 우리의 눈이 이것을 보지도 못하였나이다 여호와여 주께서 속량하신 주의 백성 이스라엘을 사하시고 무죄한 피를 주의 백성 이스라엘 중에 머물러 두지 마옵소서』

 

마을 전체가 큰 의식을 행하였고, 누군지 알 수 없는 억울하게 죽은 사람을 장사하면서 함께 드리는 이 기도 속에는 마을 공동체 전원이 모두 공동책임자가 되며,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신실함을 공유하게 된다. 죄의 의미를 깨닫고, 모든 공동체가 죄를 지었으나, 죄가 하나님이 허락하신 이 인생에, 이 땅에, 백성들의 심령에 머물지 않도록 함께 기도하는 것이다.

 

신앙 공동체는 언제나 외부의 영향으로 소멸되고 와해될 위기에 있기 때문에 신명기는 공동체로 하여금 죄에 대해서 공동책임을 지며, 그어나 죄악에 대해서는 어떤 타협도 용납하지 말고 절대적인 순종을 강조한다. 특히나 전쟁을 할 때에는 살려두지 말고 진멸하라는 매우 엄격한 기준이 있었다. 그런데 전쟁중이라 할지라도 인도주의적인 상황에 대해서는 배려와 돌봄을 병행하여 주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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