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군이 너보다 많음을 볼지라도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적군이 너보다 많음을 볼지라도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신명기 20장 1-4절「네가 나가서 적군과 싸우려 할 때에 말과 병거와 백성이 너보다 많음을 볼지라도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애굽 땅에서 너를 인도하여 내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하시느니라 너희가 싸울 곳에 가까이 가면 제사장은 백성에게 나아가서 고하여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이스라엘아 들으라 너희가 오늘 너희의 대적과 싸우려고 나아왔으니 마음에 겁내지 말며 두려워하지 말며 떨지 말며 그들로 말미암아 놀라지 말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너희와 함께 행하시며 너희를 위하여 너희 적군과 싸우시고 구원하실 것이라 할 것이며」
전쟁의 주관자는 너희가 아니라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분명히 밝힌다. 너희의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며, 너희를 위하여 적군과 싸우시고, 반드시 구원하실 것이라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겁내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고, 떨지 말고, 놀라지 말라 명령하신다. 애굽 땅에서 하나님이 열가지 재앙을 내린 것과 홍해가 갈라진 것을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인간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된 것임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출애굽 1세대는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다. 그들도 애굽에서 하셨던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을 보았지만, 아낙자손을 보고 두려워, 들어가면 죽는다 라고 말한 것이다. 하나님의 능력보다 아낙자손의 두려움이 더 큰 것이다. 두려움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두려움은 육적 반응이다.
마태복음 10장 28절에서『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사람을 두려워하고, 주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주님을 두려워하는 자만 구원받는다. 주님이 계시고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주님보다 사람을 두려워하는 자는 회개해야만 하는 것이다. 구원은 언제나 같은 것이다.
주님이 함께하면 어느 곳이나 천국이 되지만, 주님이 없으면 지옥이 되는 것이다. 정말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만을 붙잡는 자인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마태복음 10장 29절『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어떤 것에도 두려워하거나 낙심해서는 안된다. 주님 만을 온전히 순종하면 된다.
신명기 20장 5-9절 「책임자들은 백성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새 집(바이트)을 건축하고 낙성식을 행하지 못한 자가 있느냐 그는 집으로 돌아갈지니 전사하면 타인이 낙성식을 행할까 하노라 포도원을 만들고 그 과실을 먹지 못한 자가 있느냐 그는 집으로 돌아갈지니 전사하면 타인이 그 과실을 먹을까 하노라 여자와 약혼하고 그와 결혼하지 못한 자가 있느냐 그는 집으로 돌아갈지니 전사하면 타인이 그를 데려갈까 하노라 하고 책임자들은 또 백성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두려워서 마음이 허약한 자(레바브)가 있느냐 그는 집으로 돌아갈지니 그의 형제들의 마음도 그의 마음과 같이 낙심될까 하노라 하고 백성에게 이르기를 마친 후에 군대의 지휘관들을 세워 무리를 거느리게 할지니라」
그러나 하나님은 다음의 사람들은 참여할 수 없게했다. 첫째, 새집을 건축하고 낙성식을 행하지 못한 자다. 여기서 낙성식은 건축물의 공사를 다 마치고 기념하는 의식인데, 건축물을 완공하고 하나님께 감사예배를 드리지 못한 자는 돌아가게 했다. 낙성식을 봉헌으로 표현했다. 전쟁에서 얻은 전리품, 성막, 성물, 성전을 구별하여 거룩한 목적으로 하나님께 바치는 것을 말한다. 봉헌식은 이를 바치는 의식이다. 낙성식에는 제사가 있고, 그리고 건물이 완공되었음을 기념하는 것인데, 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봉헌)과 부활(낙성식)을 기념하는 것이다. 부활이 이루어지지 않은 자는 전쟁에 나갈 수 없는 것이다. 성령이 임하지 않으므로 전쟁을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바이트는 성전을 의미하며, 영적으로는 성도의 심령 속의 성전을 의미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성전이 세워짐을 믿음으로 바라보지만, 성령이 임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둘째, 포도원을 만들 과실을 먹지 못한 자다. 포도원은 영적으로 심령 속의 성전이며, 그 과실은 부활생명의 열매를 의미한다. 부활생명이 없는 자는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셋째, 약혼은 하고 아직 결혼하지 못한 자다. 예수를 믿어 구원받는다고 생각하지만, 천국 혼인잔치에 참여하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하는 것이다. 열처녀의 비유에서 처럼, 영적 혼인은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라는 말은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님과 함께 죽고, 함께 부활한 자가 하나가 되는 것이다.
넷째, 두려워서 마음이 허약한 자다. 그의 형제들의 마음도 그의 마음과 같이 낙심될까 하노라 라고 했다. 레바브는 에워싸이다, 정신없다, 어리섞어 보이다 등의 의미를 갖는다. 영적으로 율법에 마음이 빼앗겨, 죄로부터 벗어나지 못한채 항상 두려움에 사는 신도들을 의미한다. 그들은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는 존재들이다.
마가복음 3장 22-24절『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서기관들은 그가 바알세불이 지폈다 하며 또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니 예수께서 그들을 불러다가 비유로 말씀하시되 사탄이 어찌 사탄을 쫓아낼 수 있느냐 또 만일 나라가 스스로 분쟁하면 그 나라가 설 수 없고 만일 집이 스스로 분쟁하면 그 집이 설 수 없고 만일 사탄이 자기를 거슬러 일어나 분쟁하면 설 수 없고 망하느니라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는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세간을 강탈하지 못하리니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강탈하리라』
서기관들은 예수님이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쫒아낸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예수님의 모친과 육신의 형제들도 예수님을 미쳤다고 생각한 것이다. 만일 예수님이 귀신을 쫒아내는데, 서기관들이 예수를 바알세불(귀신의 왕)의 하수인으로 규정한다면, 사탄이 사탄을 쫒아내는 결과가 되어, 논리에 맞지 않다는 말이다.
예수님이 귀신을 쫒아내는 것은 귀신들린 자에게 하나님의 권능으로 죄를 사해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죄가 없어지므로, 귀신이 그를 지배할 권리가 없어지게 된다. 귀신이라고 번역되었지만, 죄인을 관리하는 천사이다. 그래서 영적 전쟁의 대상은 귀신(천사)이 아니라, 심령 속에 있는 죄를 제거하는 것이다. 심령 속에 있는 죄는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육적자아인 것이다.
마가복음 8장 34-35절『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영적 전쟁은 말 그대로 눈에 보이지 않는 자기와의 전쟁이다. 자기라는 존재는 육적으로 탐심이 기본 바탕이 되어 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으로 통해서 이 탐심이 못박혀야 함을 말해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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