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릇에 담지는 말 것이요 낫을 대지는 말지니라

 그릇에 담지는 말 것이요 낫을 대지는 말지니라


 


신명기 23장 24-25절「네 이웃(레아)의 포도원(케렘)에 들어갈 때에는 마음대로(네페쉬 소바) 그 포도(에나브)를 배불리 먹어도 되느니라 그러나 그릇(켈리)에 담지는 말 것이요 네 이웃의 곡식밭(카마)에 들어갈 때에는 네가 손으로 그 이삭(멜리야)을 따도(카타프) 되느니라 그러나 네 이웃의 곡식밭에 낫(헤르메쉬)을 대지는 말지니라」


 


레아는 형제, 남편, 동지 등의 의미를 갖는다. 형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케렘은 포도원, 뜰을 의미하며, 포도원은 에덴동산을 상징한다.


 


네페쉬는 생명, 소바는 만족함, 채우다 등의 의미를 갖는데, 네페쉬 소바는 생명을 얻다는 의미다.


켈리는 기구나 그릇을 의미한다. 생명을 그릇에 담는다는 것은 한정된 생명이라는 것이다. 한정된 생명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얻으라는 것이다.


 


에덴동산과 같은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면, 한정된 육적 생명을 버리고, 영원한 생명으로 나가라는 것이다. 에덴동산에는 생명나무가 있는데, 그 생명나무의 열매는 영생하는 부활생명을 의미한다. 그런데, 선악지식 나무도 있는 것이다. 만일 선악지식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한정된 생명을 얻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스스로 의를 이루어 보겠다는 생각을 가진 육적 생명이 되기 때문이다. 선악지식 나무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의미하지만, 생명나무는 예수님의 부활을 상징한다.


 


카마는 곡식, 곡식의 줄기, 곡식이 있는 밭을 의미한다.


멜리야는 이삭, 이삭의 머리를 의미한다.


 


카타프는 이삭을 따다, 잘라버리다 등의 의미다.


 


헤르메쉬는 봉헌하다, 바쳐지다라는 하람에서 유래된 단어로서, 낫을 의미한다.


 


알곡과 쭉정이의 비유에서 알곡은 곳간에 가득채우지만, 쭉정이는 불에 태워버리는 것이다. 알곡은 새생명을 의미한다. 그러나 낫을 댄 쭉정이는 옛생명을 의미하므로 불에 태워버리는 심판을 의미하는 것이다.


 


포도원의 비유에서 육적 생명이나, 알곡이 있는 밭의 비유에서 옛생명은 구원받지 못하고 불에 태워버린다. 이것은 심판의 의미를 갖지만, 불세례에 해당되는 것이다. 불은 성령으로서, 성령의 불은 거듭나지 못한 옛것을 태워버린다. 불세례의 대표적인 것이 바로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이다. 이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은 자기의 의로 스스로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자에 대한 심판의 모습을 나타낸다.


 


그러나 불세례를 받은 자는 성령세례를 받는다. 성령세례는 새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다는 요한복음 3장 5절의 말씀은 옛사람은 죽고, 새사람으로 거듭나야만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옛사람은 죄의 몸을 의미한다. 로마서 6장 6절에서「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옛사람이 어떤 요인에 의해 새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열심히 새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자들인 것이다. 대부분 타 종교가 이런 식이다. 그러나 거듭나는 것은 이전의 옛생명은 사라지고, 하늘로부터 오는 새생명으로 태어나야만 한다.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산으로 받을 수 없는 것이다.


 


“그릇에 담지는 말 것이요 낫을 대지는 말지니라” 한정된 생명, 육적 생명에 머물지 말라는 것이다. 창세기 2장 7절에서「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네페쉬 하이)이 되니라」네페쉬 하이는 육적 생명을 의미한다. 생기는 하나님의 입김이지만, 하늘을 상징하고, 흙으로 된 육체는 땅을 상징한다.


 


하늘과 땅의 창조에 대한 성경 귀절을 보면 창세기 1장 2절에서 창세기 1장 2절「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다시 번역하면, “땅이 심연의 얼굴 위에 흑암 공허 혼돈으로 존재했고, 하나님의 영은 그 물의 얼굴 위에 운행하시니라” (히브리어 성경)


 


פְּנֵ֣י 페네(얼굴)이 개역개정 창세기 1장 2절 앞부분의 번역에서 빠져 있다. 『심연의 얼굴 ְּפְּנֵ֣י תְהֹ֑ום  』(페네 태홈)은 『깊은 물의 얼굴』을 의미하며, 얼굴은 사람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단어로서, 영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심연의 얼굴은 깊은 물 속의 얼굴로서 물질세계에 갇혀있는 영을 의미하다. 육적 생명이 이런 모양이다. 그래서 성령은 수면에서 운행하는 것이다. 육적 생명을 둘러싸는 물 속으로 들어가지 않는 것이다. 성령이 역사하지 않으므로, 그의 생명은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가 된다.


 


물은 이중성을 나타낸다. 육체를 살리는 물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영을 살리는 영적 생명이라는 것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물의 얼굴은 영을 살릴 수 있는 물인가 아닌가라는 말이다. 심연의 얼굴은 영을 살리는 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 물의 얼굴은 성령에 의한 생수로 인하여 영을 살리는 것을 말한다. 태홈(깊은 물)이라는 물은 관사가 없는 물이다. 영이 죽었다는 말은 영이 하나님을 떠났다는 말이다.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한 영들은 하나님이 없이도 스스로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는 사탄의 미혹에 빠졌다. 이 미혹이 에덴동산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그래서 하와가 먼저 미혹당하고,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남편에게 주므로 그들은 에덴동산에서 이 세상으로 쫒겨난 것이다. 에덴동산은 이 땅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하나님 나라의 사건을 설명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요한계시록에서 새하늘괴 새땅은 어둠이 없는 빛만 있다. 하나님은 빛이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둠이 존재하는 물질세계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 요한1서 2장 15절에서『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그러나 창세 전에 그리스도를 예정하시고 범죄한 영들을 구원하기 위해 물질세계에 하나님이 말씀으로 들어오시는 것이다. 말씀을 통해서 이 세상의 흑암에 갇혀 있는 인생들에게 하나님이 기다리고 계심을 알려주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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