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형제의 소나 양이 길 잃은 것을 보거든 못 본 체하지 말고
네 형제의 소나 양이 길 잃은 것을 보거든 못 본 체하지 말고
신명기 22장 1-4절「네 형제의 소나 양이 길 잃은 것을 보거든 못 본 체하지 말고 너는 반드시 그것들을 끌어다가 네 형제에게 돌릴 것이요 네 형제가 네게서 멀거나 또는 네가 그를 알지 못하거든 그 짐승을 네 집으로 끌고 가서 네 형제가 찾기까지 네게 두었다가 그에게 돌려 줄지니 나귀라도 그리하고 의복이라도 그리하고 형제가 잃어버린 어떤 것이든지 네가 얻거든 다 그리하고 못 본 체하지 말 것이며 네 형제의 나귀나 소가 길에 넘어진 것을 보거든 못 본 체하지 말고 너는 반드시 형제를 도와 그것들을 일으킬지니라」
소나 양을 잃어버린 주인이 안타깝게 자식과 같은 소나 양을 찾아다니고 있을 것을 생각하면 주인을 어떻게 해서라도 찾아주는 것이 맞겠지만 길잃은 짐승을 발견하게 되었을 때 그 짐승의 주인을 찾아주기 위해서는 자신의 시간과 수고의 대가를 치러야 하고, 그것을 찾아주어도 자신에게 큰 유익이 있는 것이 아니기에 주인을 찾아주려 하기보다는 그냥 지나치거나 오히려 자신의 것으로 취하는 경우도 생긴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비록 수고는 하게 되고, 오히려 자신이 희생하게 되더라도 이웃을 위해 기꺼이 그러한 수고를 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계신다.
영적으로 보면,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소나 양은 주인을 잃은 그의 백성일 것이다. 소나 양이 왜 주인을 잃게 되었는가? 주인을 잃었다기 보다, 주인을 떠났기 때문이다. 소나 양은 항상 주인과 함께 있어야 하는데, 주인이 필요하지 않으므로 스스로 주인을 떠났기 때문이다. 주인을 떠나게 되면, 위험해 질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을 떠난 백성은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서 선악과를 먹은 아담과 하와와 같은 존재들이 된다. 이사야 53장 6절에서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이것은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한 천사의 이야기이다. 유다서 1장 6절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인간은 이런 이유로 아담으로부터 죄의 몸을 이어받아 세상에 살고 있는 죄인들이 되어버렸다. 죄인들은 하나님 알기를 싫어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지 않으려고 한다. 이와 같은 모양이 주인을 잃은 소와 양과 같은 존재들이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이들을 주인에게로 돌이키려고 하는 수고를 하신다.
하나님은 모든 그동안의 하나님을 떠난 죄악을 그리스도에게 담당시켜 그를 믿는 자들은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 역시 이 일을 담당하는 것이다.
“나귀라도 그리하고” 나귀는 율법을 상징한다. 나귀를 잃어버렸다는 말은 율법 속에서 복음을 찾지 못하고 율법주의에 매몰된 유대인들을 상징한다. 오늘날에도 율법주의에 매몰된 신자들이 이와 같은 모양이다. 성도는 율법주의에 빠져 있는 자들을 복음으로 인도하여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와 같은 것이다.
“의복이라도 그리하고” 모든 사람들이 입고 있는 옷은 육적 생명의 옷이다. 이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생명을 나타낸다. 원래 범죄한 천사들은 영원한 생명의 옷을 입고 있었지만, 범죄하므로 그들의 옷을 벗겨 죽을 수 밖에 없는 육적 옷을 입고 세상에 태어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영원한 생명을 가진 그리스도의 옷으로 갈아입게 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 된다.
“형제가 잃어버린 어떤 것이든지” 잃어버렸다는 것은 원래 가지고 있었다는 말이다. 원래 있었던 것은 영생이다. 영생을 가지고 있었는데, 세상에 태어나므로 영생을 잃어버렸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영생을 주기를 원하신다. 이것이 부활이다. 부활생명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부활한 것을 믿으면, 하나님이 영생을 주신다. 부활은 원래의 모습대로 돌아가게 만드는 것이다. 원래의 모습이 바로 영생인 것이다. 영이 영의 몸을 입고 있는 것이 영생이며, 죽었던 영이 살아나, 그리스도의 옷을 입는 것이 영생이라는 말씀이다.
“네 형제의 나귀나 소가 길에 넘어진(나팔) 것을 보거든 못 본 체하지 말고 너는 반드시 형제를 도와 그것들을 일으킬지니라”
나팔의 기본어근은 떨어지다, 밖으로 던지다, 중단하다, 죽다,(제비로)나누다, 실패하다(실패케 하다), 넘어 뜨리다, 눕(히)다, 잃다, 내동댕이 치다, 멸망하다 등의 의미를 갖는다.
나팔은 영적으로 넘어진 것으로서, 유대인들로 말하자면, 율법주의에 빠져 있는 자들, 오늘날에 교회 공동체 안에서는 율법주의, 인본주의, 신비주의에 빠져 있는 자들을 의미한다. 그들을 다시 복음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형제가 일으켜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형제가 진리를 말해도 듣지 않으므로, 넘어진 것을 일으키지 못하고 지나가버린다.
형제가 진리를 말해도 듣지 않는 이유는 그들이 대부분 교리에 얽매여 있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영적 의미보다, 교리를 통해서 배운 것을 더 신봉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예를 들어보자면,
웨스트민스트 대요리문답 문 99. 십계명을 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법칙을 준수해야 하는가?
답. 십계명을 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법칙을 준수해야 한다. 1. 율법은 온전한 것으로 누구나 전인격적으로 그 의를 충분히 따르고 영원토록 온전히 순종하여 모든 의무를 철두철미하게 끝까지 완수하여야 하며 무슨 죄를 막론하고 극히 작은 죄라도 금한다.
이것이 율법주의의 전형이다. 죄인들은 율법에서 정해진 의무를 완전하게 지킬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대속의 죽음을 통한 구원이 이루어지도록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신 것이다. 신도들은 문자적으로 교리를 배우지만, 율법주의를 벗어나 율법 속에 있는 의미를 깨닫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해주며,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죽어야만 거룩해질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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