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권리

 장자의 권리


 


신명기 21장 15-17절「어떤 사람이 두 아내를 두었는데 하나는 사랑을 받고 하나는 미움을 받다가 그 사랑을 받는 자와 미움을 받는 자가 둘 다 아들을 낳았다 하자 그 미움을 받는 자의 아들이 장자이면 자기의 소유를 그의 아들들에게 기업으로 나누는 날에 그 사랑을 받는 자의 아들을 장자로 삼아 참 장자 곧 미움을 받는 자의 아들보다 앞세우지 말고 반드시 그 미움을 받는 자의 아들을 장자로 인정하여 자기의 소유에서 그에게는 두 몫을 줄 것이니 그는 자기의 기력의 시작이라 장자의 권리가 그에게 있음이니라」


 


공동체의 규모가 작은 가족공동체라 할지라도 원리는 동일하다. 장자를 세우는 문제에 대해서 가장의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여러 아내 중에 미움을 받던 아내에게 장자가 태어나면 가장의 마음대로 장자를 바꿀 수 없었다. 그 이유는 장자에 대한 규례를 정하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선호도나 감정에 의해 하나님보다 더 높은 위치에서 재산 상속 및 가문의 질서를 어지럽힐 수 없었다. 사회 구성원들의 권리와 생명을 지키고 보호하며, 배려하기 위함이었다.


 


창세기 25장 31-34절『야곱이 이르되 형의 장자의 명분을 오늘 내게 팔라 에서가 이르되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야곱이 이르되 오늘 내게 맹세하라 에서가 맹세하고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판지라 야곱이 떡과 팥죽을 에서에게 주매 에서가 먹으며 마시고 일어나 갔으니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김이었더라』


 


여기에 기록된 "장자의 명분"이란 히브리어는 "베코라"이다. 문자적으로 “처음 난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는 하나님의 소속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장자는 아비의 소유를 다른 아들들보다 두 배로 상속받을 권리를 가지고 있었다.


 


장자권은 창세기에서 볼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큰 민족에 대한 약속이 과연 어느 후손을 통해 성취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장자권에 직결되어 있었다. 장자권을 갖는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큰 민족을 이루는 특권의 자리에 서게 됨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큰 민족이란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취될 하나님의 나라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 장자권은 반드시 장자에게 돌아간 것은 아니며, 장자권을 소홀히 여긴 에서와 같은 자들은 장자로 태어났어도 그 권리를 빼앗겼다. 장자권은 아버지에 의해 변경될 수 있었다.


 


“그 사랑을 받는(아헤브) 자와 미움을 받는(사네) 자가 둘 다 아들을 낳았다 하자 그 미움을 받는 자의 아들이 장자이면”


 


아헤브는 애정을 갖다, 좋아하다, 친구를 의미한다. 사네는 증오하다, 미운 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미움을 받는 여인이 아들을 낳았는데, 그가 장자라는 것이다. 장자는 그의 어머니가 어떠함과 상관없다는 말이다. 중요한 것은 누가 먼저 약속의 씨의 혈통을 받았는가가 중요한 것이다.


 


약속의 씨의 혈통에서, 이삭과 이스마엘을 예로 든다. 이스마엘은 사라의 종이었지만, 장자인 이스마엘을 낳는다. 그리고 그 이후에 사라가 이식을 낳게 된다. 서열상으로는 이스마엘이 장자이지만, 하나님은 이삭을 장자로 여기셨다. 이삭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갈라디아서 4장 22-23절에서『내게 말하라 율법 아래에 있고자 하는 자들아 율법을 듣지 못하였느냐 기록된 바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여종에게서, 하나는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며 여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이것은 비유다.


 


이삭은 사라(자유한 자)에게서 나왔고, 이스마엘은 계집종 하갈에게서 나왔다. 이삭은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났고, 이스마엘은 육체를 따라 났다. 두 아들은 두 언약을 상징한다.『시내 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갈이라 이 하갈은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으로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곳이니』


 


두 여자는 두 언약을 가리킨다. 하나는 시내산으로 부터 종을 낳은 여자 하갈이다. 여전히 율법을 지키고 성전을 지키는 유대인들이 그 후손이라는 것이다. 그들의 어머니는 하갈이다. 지금 있는 예루살렘을 가리킨다.


 


그런데 사라는 갈라디아서4장 26절에서『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예루살렘은 율법을 상징한다. 그런데,『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이삭을 낳은 사라는 위에 있는 예루살렘이라는 것이다. 땅에 있는 예루살렘은 그림자요,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은 참 형상이며, 하나님의 약속의 실체라는 것이다. 사도바울의 눈에 이 땅에 있는 예루살렘은 하갈로 보이고, 하늘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어머니 사라로 보이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의 많은 사람들이 이스마엘처럼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자기들의 문제 해결에 몰두하고 있다. 교회에서도 세상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서로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모이고 즐긴다. 이들은 혈과 육의 교제일 뿐이다. 그래서 성령을 따라 산다고 말을 하면서도, 율법을 잘 지키려고 노력하면서 스스로 만족해 하고 있는 이스마엘인 것이다. 이삭이 되려면 아브람이 100세가 되어 죽은 것처럼 되어야만 한다. 자기라는 자아가 죽어야만 되는 것이다.


 


사도바울이 보기에 유대인들은 하갈로 보이는 것이다. 유대인들이 혈육적으로는 조상이 이삭이지만, 바울은『그들의 어머니는 하갈이라』고 말했다. 시내산으로부터 모세를 통하여 율법을 받은 자들은 그 어머니가 하갈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율법이 아닌 위에 있는 예루살렘을 바라보는 자들의 어머니는 사라인 것이다.


 


성령으로 거듭난 자를 말한다. 처음에는 율법 때문에 누구나 죄인임을 깨닫게 된다. 내가 율법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고 신앙생활 하는 자는 회개하지 않은 자들이다. 그러나 회개하는 자들은 내가 율법을 지킬 수 없는 자임을 깨닫고 회개하는 것이다. 회개는 돌이키는 것이다. 율법을 지킬 수 없는 존재를 포기하고, 하늘로부터 받는 새생명으로 돌이키는 것이다.


 


그래서 회개는『율법을 지킬 수 없는 자기』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에서 스스로 또는 남들이 보기에 신앙생활을 잘 한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율법을 지킬 수 있다고 믿는 자들의 모습이라면 그들은 회개를 모르는 자들이다. 그들은 천성적 착실함으로 교회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하늘로부터 오는 새생명으로 돌이키지 않는 자들이다.


 


장자권을 얻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를 의미하며,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자는 십자가에서 예수와 함께 죽고, 함께 부활하였음을 믿는 성도가 장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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