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양이 일곱 인 중의 하나를 떼시는데

 어린 양이 일곱 인 중의 하나를 떼시는데


요한계시록 6장 1-2절「내가 보매 어린 양이 일곱 인 중의 하나를 떼시는데 그 때에 내가 들으니 네 생물 중의 하나가 우렛소리 같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이에 내가 보니 흰 말이 있는데 그 탄 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나아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


6장의 이야기는 하박국 3장의 내용과 거의 동일하다. 하박국은 바벨론이 이스라엘을 침략했을 때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요한계시록은 우주 천체가 그렇게 된다는 말이 아니라, 예루살렘의 성전이 로마에 의해 파괴되는 모습을 예언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옛성전의 심판을 의미한다. 마태복음 24장에서 예루살렘 성전의 무너질 것을 예언하는 장면이 나온다. 같은 의미를 담고 있다. 24장 에서 전쟁에 대한 귀절이 있는데, 요한계시록 6장에서도 전쟁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리고 기근, 지진, 박해, 성전의 무너짐이 같은 내용으로 표현되고 있다.


예루살렘의 성전은 성도의 심령 속의 성전과 같은 개념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옛사람(옛성전)과 새사람(새성전)과의 관계로 보아야 한다. 옛성전이 무너지고, 새성전이 세워진다. 율법주의가 무너지고, 복음으로 세워진다는 것이다. 율법주의가 무너짐은 제사형식, 절기 지키는 것 등의 의식이 사라지고 심령 속에서 성령이 임하셔서 인도하는 바에 따라 가는 것이다.


옛성전이 무너짐은 심판을 의미하고 동시에 새성전으로 구원이 이루어진다. 우리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으므로, 동시에 우리 새사람이 예수와 함께 부활하는 것이다. 예루살렘 성전이 있을 동안에는 예수님의 제자들도 율법에 따라 행동했지만,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면서 다 흩어지고 성령을 받아서 성령으로 행동하게 되는 것이다.


“일곱 인 중의 하나를 떼시는데(아노이고)” 아노이고는 복음의 선포되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을 때 아노이고(하늘이 열림) 가 등장한다. 하늘이 열리는 것은 복음의 실체가 드러나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가 시작될 때 나타나는 현상을 말하고 있다.


『네 생물 중의 하나가 우렛소리 같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네 생물 중의 하나에게 오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네 생물 중 하나가 온다. 네 생물은 성소를 이동시키는 전투 대열의 한 부분을 맡은 자들(세 지파)이다. 네 생물은 전쟁과 관련이 있는 것이다. 그들은 하늘의 군대들이다.


『이에 내가 보니 흰 말이 있는데 그 탄 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스테파노스)을 받고 나아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요한이 본 흰 말을 탄 자는 이미 승리한 것이다. 흰 말을 탄 자는 면류관을 가졌다. 예수님이 이미 승리하셨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도 승리하는 것을 말해준다. 그러나 제자를 비롯해서 성도는 고난을 겪는 것이다.


세대주의 자들은 흰말을 탄 자를 사탄으로 생각한다. 이미 신실한 기독교인들은 휴거되고 남은 자들이 이렇게 짓밟힐 것이라는 것이다.


마태복음 24장 3-6절에서『예수께서 감람 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와서 이르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제자들이 예루살렘 성전에 대해서 말을 하면서 이 말을 말한다. 이 말들은 하나님의 백성인 성도도 이와 같은 재앙을 겪는다는 말이다.


말은 스가랴 6장 1절에서 『내가 또 눈을 들어 본즉 네 병거가 두 산 사이에서 나오는데 그 산은 구리(나하쉬) 산이더라』나하쉬는 구리로 표현되는 바 말씀을 상징한다.


말은 또한 교회를 상징한다. 교회는 성도의 심령 속에 세워진 성전을 의미한다. 예수님이 교회의 머리로서 교회를 보호하시는 것이다. 흰말은 승리의 상징이다. 그리고 흰 색은 정결을 상징한다. 정결한 교회를 위해 예수님이 싸우신다.


『그 탄 자가 활을 가졌고』하나님이 활을 가졌다. 노아의 심판때 다시는 물로 심판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무지개로 언약의 증표를 삼았다. 무지개라는 히브리어가 활(케쉐트)이라는 의미다.

요한계시록 4장 3절에서도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전쟁을 위해 그리스도가 활을 가지는 것이다. 이전에는 보잘 것 없는 어린양으로 죽임을 당했지만, 부활하시고 승천하셨으며, 성도의 심령 속으로 들어오셔서 싸우시는 것이다. 이기고 이기려고 하는 것이다.


마태복음 24장 8-13절에서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니라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 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실족하게 되어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으며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그래서 휴거에 대한 이야기는 잘못된 것이다.


스테파노스는 면류관이다. 전쟁에서 승리하는 자의 면류관이다. 계시록 9장 7절에서 적그리스도도 면류관과 같은 것을 쓰고 있다고 한다. 면류관이 아니라 면류관과 비슷한 것이다. 계시록 12장 3절에서 『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보이니 보라 한 큰 붉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그 여러 머리에 일곱 왕관(디아데마)이 있는데』디아데마는 머리에 둘러 쓴 띠를 의미하는데, 땅의 왕권을 상징한다. 스테파노스와는 다른 개념이다. 계시록 19장에서 예수님이 쓴 디아데마는 하늘의 왕권을 의미한다. 즉 참 왕권이시다.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 옛성전은 무너지고, 새성전이 등장한다.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지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다. 성도의 심령 속에 옛사람은 죽고 새사람이 등장한다. 예수님은 말탄 자로서 활을 가지고 싸워 이기고 이기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이와 같은 것이다. 그러나 고난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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