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인과 셋째 인을 떼실 때에

 둘째 인과 셋째 인을 떼실 때에


요한계시록 6장 3-6절「둘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들으니 둘째 생물이 말하되 오라 하니 이에 다른(알로스) 붉은 말이 나오더라 그 탄 자가 허락을 받아 땅에서 화평을 제하여 버리며 서로 죽이게 하고 또 큰 칼을 받았더라 셋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들으니 셋째 생물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내가 보니 검은 말이 나오는데 그 탄 자가 손에 저울을 가졌더라 내가 네 생물 사이로부터 나는 듯한 음성을 들으니 이르되 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 되로다 또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지 말라 하더라」


다른 이라고 번역된 헬라어는 알로스와 헤테로스가 있다. 알로스는 동질인데 약간 다른 것이고, 헤테로스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붉은 말과 흰말이 완전히 다른 것이 아니라, 거의 동질인 말이라는 것이다. 라베인은 제하여 버리는 것이 아니라, 받아드리는 것이다. 평화가 받아드려 지도록 왕의 권세가 주어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겉으로는 평화를 말하지만, 둘로 나뉘어져서 싸운다는 것이다. 율법과 복음으로 나뉘어지고 영적 전쟁이 일어난다. 율법에는 복음이 감추어져 있지만, 율법이 율법주의로 가게 되면 복음을 발견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율법주의와 복음은 서로 작이 되는 것이다.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는 것은 율법주의 종말을 의미한다.


네 생물은 사자, 송아지, 얼굴이 사람같고 독수리가 등장한다. 말이 등장한다. 흰말, 붉은 말, 검은 말, 청황색 말이 등장한다. 이 말들은 네 생물과 연결되는 것이다. 사자와 흰말, 송아지와 붉은 말, 얼굴이 사람 같은 이가 검은 말, 독수리가 청황색 말이다. 스가랴에서 나오는 네말과 일치한다. 말은 그리스도의 세상 심판을 위한 도구라고 할 수 있다. 인을 떼는 것은 예루살렘을 심판하는 것이다. 흰말은 정결한 신부인 교회를 상징하는데, 예수님은 정결한 교회와 함께 전쟁을 수행하는 것이다. 정결한 교회에서 복음을 선포한다. 정결한 말씀을 선포하면 전쟁이 일어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게 붉은 말의 모습이다.


붉은 말은 전쟁을 상징한다.『그 탄 자가 허락을 받아 땅에서 화평을 제하여 버리며 서로 죽이게 하고 또 큰 칼을 받았더라』참 복음과 가짜 복음의 전쟁이다. 마태복음 10장 34절에서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새언약이 선포되면 옛언약과 전쟁이 일어난다. 유대주의와 복음이 전쟁을 한다. 성도에게는 심령 속의 하나님 나라와 자기의 의를 내고자 하는 옛사람과의 전쟁이다.


검은 말은 기근을 상징하는데, 옛사람, 옛성전, 율법이 점차 성도들에게 줄어드는 모습이다. 밤이 낮으로 서서히 바뀌는 모습이다. 요한계시록이 작성될 당시 유대주의자들의 세력이 점차 약해지고 그리스도인들로 바뀌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율법주의로 돌아가려고 하는 움직이 많이 있었다.


요한은 율법주의로 돌아가면 심판받을 수 밖에 없는 것을 말해준다. 새언약을 따르지 않으면 흰말이 붉은 말로, 검은 말로, 청황색 말로 되는 것이다. 평화가 전쟁으로, 말씀의 기근으로 심판으로 나아가게 된다는 말이다.


아디케세스(ἀδικήσῃς 기본형 아디케오)는 심판하다는 의미다. 메아디케세스는 심판하지 말라는 것이다. 감람유와 포도주는 왜 심판하지 말라는 것인가?


한되(코이닉스)는 밀이 약 1L정도 된다. (군인이 하루 정도 먹는 양), 한 데나리온에 12L를 살 수 있었는데, 한 데나리온에 한 되밖에 살 수 없다는 말이다. 한 데나리온에 밀을 한 되,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 되 산다는 것은 물가가 엄청나게 높다는 의미다. 밀은 보리보다 세배 비싼 것으로 보여진다. 로마 당시 엄청난 흉년으로 기근이 심했던 것으로 밝혀진다.


밀 보리는 곡식이고, 밀 보리는 떡을 만드는 재료이다. 밀과 보리는 옛사람, 돌성전을 나타낸다. 그리고 율법을 상징하는 것이다. 율법의 상징은 모세이고,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죽는 것이다.


감람유와 포도주는 제사와 관련이 있다. 요셉이 감옥에 있을 때, 떡맡은 관원장과 술맡은 관원장이 함께 있었다. 그들이 꿈을 꾸고 요셉이 꿈을 해석해 주는데, 떡 맡은 관원장이 죽는다. 술맡은 관원장이 살고 그로 인해서 요셉은 바로의 꿈을 해석해 주고, 총리가 된다.

노아가 방주에서 내려와 포도나무를 심고 자기 장막 안에서 포도주를 마셨다. 안식이라는 의미다. 포도주는 하나님 나라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떡은 아침(알파)의 음식이다. 감람유와 포도주는 저녁 음식(오메가)이다. 성도의 심령 속에 옛사람은 죽고, 새창조가 되어 새사람이 부활하여 사는 것이다.


신명기에서 광야에서는 포도주를 마시지 말라고 하시고, 약속의 땅에 들어가면 마셔라고 하신다. 포도주는 언약과 안식의 성취를 의미한다. 예수님의 첫번째 표적이 가나 혼인잔치에서 물(율법)로 포도주(복음)를 만드는 것이다. 포도주는 결혼 잔치에 등장하는 술이다.

예수님이 마지막 십자가에서 신포도주를 마시고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셨다. 그리스도를 만나는 날, 종말의 음료가 바로 포도주인 것이다. 종말은 성도의 심령 속에 성전이 세워지는 날이 된다. 옛사람이 죽는 것이 종말이다. 이때 예수의 피를 마시는 것이다. 예수의 피를 마시는 자는 심판하지 않는 것이다.


감람유는 올리브유인데, 색깔이 금색이다. 그래서, 금(자하브)을 상징한다. 창세기 2장 11-12절에서『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 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성전의 모든 기물은 조각목으로 되어 있으며, 올리브유를 바르고, 금을 칠했다. 이는 변하지 않는 영원성을 나타낸다. 올리브유는 기름을 붓는 의식에 사용된다.

메시야(헬라어 그리스도)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의미다. 그리고 기름은 성령을 의미한다. 올리브유를 심판하지 말라는 의미는 성령으로 거듭나는 자는 심판의 대상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감람유와 포도주는 새하늘, 새생명, 복음을 상징한다. 심령 속의 성전이다. 가나안에 들어가는 자는 여호수아 예수이다.


요한계시록에서 묘사하는 교회의 모습은 전투하는 교회다. 이 땅의 교회는 여러 문제들로 인해 고난당하고 핍박당할 수밖에 없기에, 악한 세력과 싸우는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러나 환난과 핍박 가운데서도 끝까지 신앙을 지키고 승리하는 성도들에게는 새 하늘과 새 땅이 유업으로 주어진다. 바로 그 유업을 받은 성도들이 하늘에서 창조주 하나님과 구속주 예수님을 찬양하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미래의 교회 모습, 즉 하늘에 존재하는 교회다. 이것이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이중적 교회의 모습이다.


2-3장에서는 이 땅에서 존재하는 교회의 모습을 소개했다. 그것은 소아시아 일곱교회로 대표되는 이 땅과 모든 세대를 총 망라하여 과거, 현재, 미래에 존재하는 교회다. 일곱 교회로 대표되는 이 땅의 교회들은 많은 문제와 싸우고 있으며, 주님은 그 문제들과 끝까지 싸우고 승리할 것을 성도들에게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이 땅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성도들에게는 종말에 새 하늘과 새 땅을 유업으로 받게 된다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4-5장에서 바로 그 종말의 모습을 하늘에서 창조주 하나님과 구속주 예수님을 찬양하는 성도의 모습으로 보여주었다.


6장에서는 요한계시록의 몸통이라 할 수 있는 세가지 심판에 대한 말씀이 시작되고 있다. 세가지 심판 이야기는 첫째, 일곱 봉인에 담긴 심판. 둘째, 일곱 나팔에 담긴 심판. 셋째, 일곱 대접에 담긴 심판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세가지 심판에 대한 이야기를 살펴보기 전에, 심판 이야기에는 일정한 패턴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가장 두드러진 패턴은 세가지(일곱 봉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 심판마다 각각 일곱개의 심판 내용이 있다는 사실이다. 일곱개의 심판 내용 중, 처음 네개는 각각 통일성을 가지며, 나머지 세개는 처음 두개와 나머지 한개가 서로 구별된다는 특징이 있다.


일곱 봉인에 담긴 심판의 경우를 보면, 처음 네개는 네생물과 네마리의 말들에 의해서 통일성을 가진다. 일곱 봉인에 담긴 심판 이야기는 일곱 개 봉인된 것 중 첫 번째 봉인된 것을 떼면서 시작한다. 먼저 네생물 중 하나가 말하자 흰 말을 탄자가 나왔다. 그리고 이어서 둘째 봉인된 것을 떼었을 때, 둘째 생물이 말하자 붉은 말이 나왔다. 셋째 봉인된 것을 떼었을 때, 셋째 생물이 말하자 검은 말이 나왔다. 넷째 봉인된 것을 떼었을 때, 넷째 생물이 말하자 청황색 말이 나왔다.


이상의 내용을 종합해 보면, 세가지 심판 이야기 중 일곱 봉인에 담긴 심판 이야기의 처음 부분이 네개의 통일된 구조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일곱개의 심판 내용 중, 처음 네개가 네생물과 네마리의 말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와같은 구조가 나머지 심판 이야기에도 동일하게 기록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일곱개의 심판 내용 중, 처음 네개가 통일성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나머지 세개는 서로 다른 양상으로 하나님의 심판이 진행되고 있다. 즉 일곱개의 심판 이야기는 네개와 세개라는 짜임새로 구성되어 있다.


일곱개의 심판 이야기 중, 네개와 세개의 구조로 나누어지는데, 심판은 전부 일곱개인데, 그 내용과 대상은 네개다. 일곱은 완전 수다. 성경에서 넷은 동서남북, 자연계 전체를 나타내는 의미가 있다. 그러므로 일곱이라는 숫자는 하나님의 심판 자체의 완전성을 함축하고 있고, 넷이라는 숫자는 심판이 미치는 대상에 있어서의 완전성을 함축한다. 이는 하나님의 심판은 완전하며 그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대상은 없다는 의미다.


흰말은 복음 전파 운동이 활기 있게 진행될 것을 말한다. 붉은 말은땅에서 화평을 제하는 전쟁을 의미한다. 검은 말은 심한 흉년, 경제적 환란을 의미한다. 한 데나리온에 말한 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 되라는 말은 극심한 경제 위험이다. 그런데 더 비밀은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 않는 것이다. 신앙적 요소와 성도의 예배를 위한 부분에는 화가 미치지 않음을 말한다. 청황색 말은 검과 흉년과 사망을 의미한다. 전쟁 후에 온 역이 될 수 있다. 다섯째인을 떼니 순교자의 호소가 있다.


제단 아래서 충성 하던 이들의 순교가 있고, 또 그들 의 죄값은 꼭 하나님께서 보상하실 것이다. 여섯째인을 떼니 큰 천재 지변이 있다. 세상 권세잡는 자들의 힘은 전혀 무력해지는 시대를 의미한다.


세개의 심판 이야기는 요한계시록의 본론에 해당한다. 그런데 심판이라는 동일한 주제가 세번씩이나 반복하여 기록하고 있다는 것은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알려주는 것이다. 결국 요한계시록의 본론이 심판에 대한 이야기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심판 이야기의 결론은 바벨론의 멸망과 새 예루살렘의 등장으로 설명한다. 즉 세개의 심판 이야기의 결론은 바벨론의 묘사된 악의 세력은 완전히 제거될 것이며, 환난과 핍박 가운데서도 끝까지 신앙을 지킨 성도에게는 새 하늘과 새 땅이 유업으로 주어진다는 것이다.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차례대로 하나씩 봉인된 것이 떼인다. 1, 2, 3, 4, 5, 6번째 봉인이 떼인 후, 6장의 마지막 말씀이 기록된 후에 7장으로 넘어가 하늘과 땅에 존재하는 교회의 모습, 즉 144,000명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다시 8장 1절부터 일곱 번째 봉인이 떼이면서 일곱 나팔의 심판이 다시 시작된다. 여기서 6번째 봉인이 떼이고 7번째 봉인이 바로 떼이지 않고 그 사이에 하늘과 땅에 존재하는 144,000명에 대한 이야기가 삽입되어 있다는 게 중요하다.


6장에서 봉인된 것들이 떼이면서 이 땅에 하나님의 심판이 임했는데, 6장 마지막 절에서 이렇게 묻고 있기 때문이다.『진노의 큰 날에 누가 능히 서리요』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이 7장이다. 큰 환란 가운데서도 144,000이라는 성도들은 멸망하지 않고 능히 선다는 것이 대답이다. 결국 환란과 핍박 가운데서도 성도는 승리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은 환난과 핍박 가운데 있는 성도들에게 위로와 소망을 주는 말씀이다. 큰 시험 가운데서도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끝내 승리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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