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요한계시록 6장 9-11절「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톤 로곤)과 그들이 가진 증거(마르튀리안)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영혼들(프슈카스)이 제단 아래에 있어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 하니 각각 그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쉬되 그들의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당하여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
인을 떼는 것은 심령 속의 하나님 나라가 임하면 땅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땅의 현상은 말들을 통해서 일어나는 일을 설명한다. 성전에는 제단이 둘이 있다. 성소 뜰의 번제단과 성소 안의 분향단이다. 여기에는 기도와 연관이 있으므로 분향단을 의미한다. 성막의 기물들에는 번제단, 물두멍, 떡상, 등잔대, 분향단이 있다. 분향단은 다섯번째에 있다. 다섯번째 인을 떼고 제단이 등장한다. 오(5)라는 숫자는 기도와 관계가 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는 것이다. 6장 9절은 분향단의 위치에서 기도하는 장면이다.
제단 아래 있는 푸쉬케들(육적 존재), 성막으로는 성소에 있는 자들이다. 구원의 여정으로는 광야 있는 자들이다. 구원이 완성된 자들이 아니라 진행형인 것이다. 죽임을 당한 푸쉬케가 아니라 죽어가고 있는 푸쉬케의 모습이다. 옛사람이 죽어야 하는데, 그 과정을 그려놓은 것이다. 푸쉬케는 영에 의해서 침노당해야만 한다. 옛사람은 죽어야만 하는 것이다. 이 과정이 빨리 끝났으면 좋겠는데, 빨리 끝나지 않은 것이다.
교회(성도)는 이 땅에서 십자가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옛사람의 죽음이다. 그래서 심령 속에서 하나님 나라가 세워진다. 옛사람이 죽임을 당해야 새사람으로 살게된다. 성도는 새사람을 위해 옛사람이 원하는 것을 취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육체를 가지므로 육체를 통해서 옛사람이 새사람을 억압하는 것이다. 옛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면 세상 사람들이 저주하게 된다. 마치 실패한 자인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그 옛사람의 모습을 통해서 다시 새사람의 모습을 기억하고 구원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요한계시록 6장은 하나님 나라가 임할 때 일어나는 일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첫째 인은 흰말로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나가는 모습이다. 그러나 점차 신앙이 희미해져간다. 심령 속의 하나님 나라가 희미해지고, 여전히 옛사람의 모습과 인본주의 율법주의 영지주의가 결합되어 점차 붉은 말, 검은 말, 청황색 말로 죽음을 향하여 달려가는 모습이다. 그러나 6장 9절에서 참 성도는 다섯번째 인을 떼는 자들이다. 성도는 실패하고 환란 당하고 고난 중에 있는 자들이다.
고통주는 자들이 다름 아닌 교회 안에 있는 자들이다. 기복신앙과 율법주의, 인본주의, 영지주의에 사로 잡힌 자들이 성도를 죽이려 한다는 말이다. 참 성도는 예수와 함께 죽고 함께 부활하여 지금 현재 하나님 나라가 임한 자를 의미한다. 그래서 심령 속에 하나님 나라가 세워진 자들이다. 그래서 성도는 순교자의 삶을 살게 된다. 생생명을 받은 자들에게 일어나는 현상들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성도의 심령 속으로 침노해 들어오셔서 옛사람을 죽게 하신다. 그렇게 하기 위해 성도를 환란과 고통 속으로 빠뜨리게 된다. 그래서 그 환란 속에서 성도는 프로슈케 기도를 통해서 오직 하나님 만을 바라볼 때, 성도의 옛것이 부셔지는 것이다.
마태복음 4장 1-3절에서『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광야 시험은 하나님의 아들이면 네 힘으로 증명해보라는 것이다. 성도에게도 같은 시험이 들어온다. 하나님의 백성이면 백성답게 해보라고 요구한다. 하나님의 백성이면 복을 받은 증거를 대 보라는 것이다. 그런데, 교회 사람들은 철저히 율법의 계명을 근거로 거룩한 자로서 모습을 나타내려고 한다. 그리고 복을 받은 자라는 것을 나타내려고 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태복음 16장 24절에서『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라고 말을 한다. 죽임을 당하는 순교자의 삶을 살아라는 것이다.
베드로전서 1장 6절에서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영혼이라고 번역된 것은 육의 몸(푸쉬케)이다. 옛사람은 죽어야 새사람(영의 몸)으로 갈아입게 된다. 육의 몸(푸쉬케)의 죽음은 곧 영생으로 이어진다.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성도가 고난 속에서 언제까지 이렇게 옛사람(옛성전)에게 당하면서 살아야 하는지 호소하는 것이다. 옛성전이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하나님 나라가 완성되기 위한 기도인 것이다. 여리고 성이 무너지듯이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할 때 무너질 것이다.
『각각 그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쉬되 그들의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당하여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요한계시록 7장은 하나님 나라의 성전이 세워지는 모습을 그리는데,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죽임을 당한 수가 차야 한다고 말을 한다. 궁극적으로 죽임을 당하는 것은 육체적인 죽임이 아니라, 자기 옛사람(혼)의 죽음을 의미한다. 옛사람의 죽음이 없으면 흰 두루마리를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흰옷은 하나님의 의의 말씀이다. 인을 뗄 때 흰말이 등장하고 신앙이 퇴색될 때, 붉은색, 검은색, 청황색으로 되는 것이다.
『그 수가 차기까지』라는 말은 성전에 관한 이야기로 예루살렘 성전의 무너짐을 말한다.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예루살렌 성전이 40일 후에 무너졌다. 성도의 옛성전도 이렇게 무너져야만 한다는 말씀이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해진 숫자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심령 속에 하나님의 성전이 세워지는 과정을 그린 것이다.
그 과정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성도에게 흰옷을 주시는데, 흰옷을 주시는 것은 하나님이 성도로 인정을 하시는데,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옛성전이 무너져야 한다는 것이다. 여전히 성소의 제단에 있으며, 광야에 있으며, 요단강을 건너야만 하는 것이다. 요단강을 건너면 여리고 성이 기다리고 있고, 계속해서 무너뜨려야 할 것들이 있는 것이다. 성도의 심령 속에 성전이 세워지는 것은 성소와 지성소가 하나가 되는 것이다. 휘장이 갈라지듯이 성소에 머물러 있는 성도가 지성소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것이『그 수가 차기까지』라는 것이다.
성도의 심령 속에 성전의 휘장이 갈라지는 때는 바로 옛성전이 무너지는 때이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때이다. 성도 역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음을 믿는 그 때가 바로 이 때인 것이다. 이는 하나님 만이 결정하시고 아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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