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식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지니라
곡식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지니라
신명기 25장 4절「곡식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지니라」
밭을 갈고 일하는 소가 먹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사람들이 하는 그일은 어떤 소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며, 그 소망한 일이 이루어졌을 때는 소망의 열매를 얻는 기쁨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신명기 25장은 재판에 관한 규정이다. 재판은 사람의 결정이 아닌 하나님의 결정이라는 대 전제가 재판 과정 가운데 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판단과 그 판단 결과가 엄중하게 선포되고 있음에도,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면면히 나오고 있다.
첫째, 태형이라도 40회를 넘어가서는 안되고, 인간의 존엄성이 손상될 만큼, 인간의 생명이 위협받을 만큼 형벌을 치루게 해서는 안된다.
둘째, 타작마당에서 일하는 곡식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고 했다.
셋째, 형제중에 한 사람이 죽게 되면 다른 형제가 그 가족을 돌봐야 할 의무가 있으며, 수혼법이라는 제도를 통해 갑작스런 불행이나 사고를 당한 가족도 살아갈 방법을 제시해주셨다. 결국 생명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고 귀한 것이라는 말씀이다.
넷째, 싸움의 극한 상황이라고 해도 넘어서는 안되는 분명한 행동의 기준이 있으며 성적 불구자로 만들 수 있는 죄악을 저지른 자는 불쌍히 여겨서는 안된다.
다섯째, 상거래에 있어서 두개의 저울추, 두개의 되를 사용하여 사람을 속이는 것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가증된 것이다.
여섯째, 출애굽때 이스라엘을 공격한 아말렉은 진멸하라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9장 5-10절『우리가 다른 사도들과 주의 형제들과 게바와 같이 믿음의 자매된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리가 없겠느냐, 어찌 나와 바나바만 일하지 아니할 권리가 없겠느냐, 누가 자기 비용으로 군 복무를 하겠느냐, 누가 포도를 심고, 그 열매를 먹지 않겠느냐, 누가 양떼를 기르고, 그 양떼의 젖을 먹지 않겠느냐, 내가 사람의 예대로 이것을 말하느냐, 율법도 이것을 말하지 아니하느냐, 모세의 율법에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 기록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어찌 소들을 위하여 염려하심이냐, 오로지 우리를 위하여 말씀하심이 아니냐, 과연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밭가는 자는 소망을 가지고 갈며, 곡식 떠는 자는 함께 얻을 소망을 가지고 떠는 것이라.』
성도의 먹고 사는 문제는 자신에게 대하여는 최소한 육적 생명을 유지하기 위함이며, 다른 사람에게는 부활생명을 주기 위한 의미가 있는 것이다. 군인이든, 농부든 열심히 자기의 일을 하는 목적은 열매를 얻기 위함이다. 밭을 가는 소도 열심히 일하는데, 그 소가 소망이 있다면 일한 만큼 먹는 것이라는 비유가 될 것이다. 성도가 복음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소망은 영적 열매맺기 위함인 것이다. 열매는 부활의 열매이다. 그리스도께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것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부활에 참여하는 자가 열매가 된다.
바울은 자비량으로 먹고 사는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고, 복음을 선포하는데 매진 했다. 여기서 말하는『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는 말씀에 대해서,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데, 필요한 대가와 연결하지 않으려는 의도였다.
목회자가 목회에 전념하기 위해서는 일한 대가를 받고 그것으로 생활을 한다. 그것은 육적인 몸을 유지하기 위함이고, 목회를 하는 목적은 그 일로 돈을 벌기 위함이 아닌 것이다. 목회자가 목회를 전념하는 일은 하늘 생명의 열매를 맺기 위함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성도가 열심히 복음을 전하는 것도 하늘 생명을 열매맺기 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고 성령세례를 받은 교인들이 가장 많은 교회가 고린도교회이였다. 비록 당시 기독교인들이 바울을 사도로 여기지 않았지만, 고린도교회 교인들 만큼은 그렇게 하면 안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목회자가 목회에 전념하기 위해서는 일한 대가를 받고 그것으로 생활을 한다. 그것은 육적인 몸을 유지하기 위함이고, 목회를 하는 목적은 그 일로 돈을 벌기 위함이 아닌 것이다. 목회자가 목회를 전념하는 일은 하늘 생명의 열매를 맺기 위함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성도가 열심히 복음을 전하는 것도 하늘 생명을 열매맺기 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고 성령세례를 받은 교인들이 가장 많은 교회가 고린도교회이였다. 비록 당시 기독교인들이 바울을 사도로 여기지 않았지만, 고린도교회 교인들 만큼은 그렇게 하면 안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바울은 당시에 돈을 받지 않고 천막일을 하면서 사역하므로, 기독교인들이 그것을 두고 사도직을 의심하기도 했다.
바울은 일을 하고 그 대가를 받아서 먹고 마실 수 있으며, 결혼도 하고 살아갈 수 있는데, 이게 하나님이 주신 권리인데도 복음의 사역을 위해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말을 하는 것이다.
바울이 성령세례를 주는 것은 성령과 관계되는 것이고, 신도들이 헌금을 내는 것은 종교적인 일이라는 것이다. 신도들이 종교적인 행위로서 사역자들이 헌금내는 것의 일부를 취한다고 그게 과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바울도 이를 취할 수 있었지만, 복음에 장애가 되기 때문에 받지 않았다고 한다.
복음 사역자들이 그들의 일한 대가를 받는 것을 구약시대 성전 일을 하는 이들과 비교하여 바울은 설명한다. 그러나 바울은 대가를 받는 것으로 인해서 복음이 잘못 이해될까봐 차라리 죽을지언정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복음을 전하는 것은 자랑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당연히 전하여야 할 사명인 것을 말해주고 있다. 사역자들이 살아가는데, 돈이 필요하므로 교회가 사례비를 지급하는 것인데, 과도한 사례비를 요구하는 자들이 있다면, 복음을 전하는 사명보다 돈에 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것을 돈과 연관짓지 않는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값없이 전하는 것이므로, 그 사역의 대가를 바라는 권리를 여기에 사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자신의 삶에서 포기한 것들을 여러가지로 말했는데, 성령받는 사람은 죄로부터 자유인이지만,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되었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더 많은 사람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기 위함이었다.
오늘날 교회 공동체의 상황은 너무나 대조적이다. 대형교회 공동체가 있는가 하면, 나무나 초라한 작은 교회 공동체가 대조적으로 세워져 있다. 대형 교회에서 분쟁이 일어나고, 교회를 자식에게 물려주려고 하는 이유는 돈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부활 생명의 열매맺는 일보다 사례비에 더 관심을 갖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작은 공동체는 오히려 최소한의 생계 유지마저 힘든 상황이 되는 것이다. 신도들은 교회 공동체의 소명이 무엇인가를 다시 점검해보아야 할 것이다.
바울은 일을 하고 그 대가를 받아서 먹고 마실 수 있으며, 결혼도 하고 살아갈 수 있는데, 이게 하나님이 주신 권리인데도 복음의 사역을 위해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말을 하는 것이다.
바울이 성령세례를 주는 것은 성령과 관계되는 것이고, 신도들이 헌금을 내는 것은 종교적인 일이라는 것이다. 신도들이 종교적인 행위로서 사역자들이 헌금내는 것의 일부를 취한다고 그게 과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바울도 이를 취할 수 있었지만, 복음에 장애가 되기 때문에 받지 않았다고 한다.
복음 사역자들이 그들의 일한 대가를 받는 것을 구약시대 성전 일을 하는 이들과 비교하여 바울은 설명한다. 그러나 바울은 대가를 받는 것으로 인해서 복음이 잘못 이해될까봐 차라리 죽을지언정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복음을 전하는 것은 자랑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당연히 전하여야 할 사명인 것을 말해주고 있다. 사역자들이 살아가는데, 돈이 필요하므로 교회가 사례비를 지급하는 것인데, 과도한 사례비를 요구하는 자들이 있다면, 복음을 전하는 사명보다 돈에 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것을 돈과 연관짓지 않는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값없이 전하는 것이므로, 그 사역의 대가를 바라는 권리를 여기에 사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자신의 삶에서 포기한 것들을 여러가지로 말했는데,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