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복을 내리소서 할지니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복을 내리소서 할지니라


 


신명기 26장 12-15절「셋째 해 곧 십일조를 드리는 해에 네 모든 소산의 십일조 내기를 마친 후에 그것을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에게 주어 네 성읍 안에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 그리 할 때에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아뢰기를 내가 성물을 내 집에서 내어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에게 주기를 주께서 내게 명령하신 명령대로 하였사오니 내가 주의 명령을 범하지도 아니하였고 잊지도 아니하였나이다 내가 애곡하는 날에 이 성물을 먹지 아니하였고 부정한 몸으로 이를 떼어두지 아니하였고 죽은 자를 위하여 이를 쓰지 아니하였고 내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여 주께서 내게 명령하신 대로 다 행하였사오니 원하건대 주의 거룩한 처소 하늘에서 보시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복을 주시며 우리 조상들에게 맹세하여 우리에게 주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복을 내리소서 할지니라」


 


“셋째 해 곧 십일조를 드리는 해에” 안식년을 기준으로 세번째 해가 되는 때, 3년과 6년째를 가리킨다. 이때는 이스라엘이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한 구제비로 사용하였는데 이를 “셋째 해 십일조”라 한다.


 


객과 고아와 과부는 사회적, 경제적으로 소외된 이른바 이스라엘의 약자 계층이다. 그런데 여기에 또한 레위인들이 포함된 이유는 이들 역시 이스라엘 열두지파 중 기업이나 분깃이 없는 자들로 오직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내는 십일조에 의지하여 생계를 유지하는 자들이었기 때문이다.


 


객(게르)은 이스라엘에 귀화한 이방인을 가리킨다. 그렇지만 그들은 기업을 받지는 못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스라엘 사회에서 곤궁하고 빈한한 자의 위치에 머물렀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도 전에 애굽에서 이방인으로 생활하였음을 들어 귀화한 이방인들을 선대하도록 명하셨던 것이다.


 


고아와 과부는 그들을 돌보아 주는 자들이 없는 약자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고아의 아버지로, 과부의 재판장으로 자처하시고 그들을 돌보신다. 예수님도 고아와 과부와 객을 돌보라고 하셨다.


 


누가복음 7장 13-15절「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 하시고 가까이 가서 그 관에 손을 대시니 멘 자들이 서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시매 죽었던 자가 일어나 앉고 말도 하거늘 예수께서 그를 어머니에게 주시니」


 


과부는 남편이 없는 자를 의미하며, 남편이신 그리스도가 없는 자가 된다. 과부를 돌본다는 것은 그들을 그리스도로 인도하는 것을 의미한다.


 


고아는 부모가 없는 아이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의지할 곳이 전혀 없는 것이다. 영적으로 고아는 하나님을 떠난 자, 부활생명이 없는 자를 의미한다.


 


요한복음 14장 18-19절「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것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겠음이라」


 


나그네는 집과 소속이 없는 자로서 하늘 본향을 잃은 자를 상징한다.


 


히브리서 11장 13-14절「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내가 애곡하는 날에 이 성물을 먹지 아니하였고” 신명기 26장 14절에는 성물이라는 표현은 없으며, “그것의 부분”(밈멘누:기본형은 민)이다. 십일조의 한 부분을 의미한다. 그러나 번역을 할 때, 레위기 22장 3절을 근거로 성물(코데쉬)이라 표현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레위기 22장 3절『그들에게 이르라 누구든지 네 자손 중에 대대로 그의 몸이 부정하면서도 이스라엘 자손이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는 성물(코데쉬)에 가까이 하는 자는 내 앞에서 끊어지리라 나는 여호와이니라.』코데쉬는 거룩한, 신성한, 구별된 장소나 물건 등의 의미를 갖는다.


 


제사장은 먼저 먹기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했다. 그래서 먼저 부정함이 없는 거룩한 삶을 살아야만 성물을 먹을 수 있었다. 표면적으로는 율법을 잘 지켜서 죄를 짓지 않으면 거룩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또한 죄를 지어도 희생제물을 하나님께 드려서 거룩하게 되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거룩은 하늘에서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예수와 더불어 십자가에서 죽은 자, 곧 죄에 대해서 죽은 자가 거룩한 자가 되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대개 7일 정도의 장례 기간을 가졌는데, 이때에 많은 음식을 했다. 따라서 이를 충당하기 위하여 하나님께 구별해 놓은 십일조를 유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부정한 몸으로 이를 떼어두지 아니하였고”


 


시체나 기타 이유로 의식상 몸이 부정해진 중에는 성물을 하나님께 드리지 아니하였다는 뜻이다. 몸이 부정한 상태에서 성물에 가까이 하는 것은 율법으로 엄격히 금지되어 있기 때문이다.


 


"죽은 자를 위하여 이를 쓰지 아니하였고”


 


공동 번역은 “죽은 혼령에게 바친 일도 없습니다"로 번역하고 있다. 이는 곧 죽은 자의 기일을 맞이하여 제사 음식을 장만하는 데 여호와께 구별된 십일조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십일조는 영적으로 죽은 자를 살리기 위해 사용되는 것이지, 영적으로 죽은 자를 위해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십일조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물로 드리는 것, 곧 십자가의 죽음을 상징한다. 예수님의 죽음은 죽은 자를 위한 제물이 아니라, 죽은 자를 살리기 위한 희생제물이라는 것이다.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 서기관들은 희생제물을 죄인을 살리는 역할보다 그들의 식량을 위한 것으로 생각했다.


 


“내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여 주께서 내게 명령하신 대로 다 행하였사오니”


 


이는 하나님께 온전한 십일조를 드렸다는 뜻이다. 한편 선지자 말라기는 이러한 십일조와 관련하여 과부와 고아 및 나그네 등을 돌보지 않는 것은 곧 하나님의 소유를 도적질하는 행위라고 언급하였다.


 


말라기 3장 5-9절「내가 심판하러 너희에게 임할 것이라 점치는 자에게와 간음하는 자에게와 거짓 맹세하는 자에게와 품꾼의 삯에 대하여 억울하게 하며 과부와 고아를 압제하며 나그네를 억울하게 하며 나를 경외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속히 증언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나 여호와는 변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야곱의 자손들아 너희가 소멸되지 아니하느니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 조상들의 날로부터 너희가 나의 규례를 떠나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런즉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하였더니 너희가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 하는도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봉헌물이라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둑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주의 거룩한(코데쉬) 처소(마온) 하늘(샤마임)에서 보시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복을 주시며 우리 조상들에게 맹세하여 우리에게 주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복을 내리소서 할지니라”


 


“주의 거룩한 처소 하늘”은 하나님 나라를 의미하며, 세상에서는 성전을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성전이시며, 그리스도가 임재하는 곳이 바로 하나님 나라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의 심령 속에 임재하는 성전이 곧 하나님 나라가 되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신약에서 영적 이스라엘 성도를 지칭한다.


 


복을 주신다는 것은 영적으로 부활생명을 주는 것을 의미한다. 십일조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생각하며, 세상에서 나그네 된 자로서 부활생명을 받아서 다시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는 복을 얻는 것이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가나안을 상징하는 바, 이 또한 성도의 심령 속의 하나님 나라인 것이다. 사도바울은 이를 셋째 하늘로 표현한 바가 있다. 셋째 하늘은 물리적인 삼층천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혼과 영과 골수를 쪼개기까지 하며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