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 귀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90) 귀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1]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교회는 오늘날 교회를 예표한다 . 오늘날도 라오디게아 교회와 같은 교회가 있다 . 예수님께서 라오디게아 교회를 책망하시는데 ,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라고 하셨다 . 보통 교회사람들은 예수님이 말씀하신『행위』를『믿음이 없고 , 열심이 없다』는 말씀으로 이해한다 . 『교회를 안나오는 것도 아니고 , 교회에 나와서 열심히 하는 것도 아니고』라는 말로 이해하는 것이다 . 그런데 여기에서 말하는 행위는 어떤 일 [2] 에 관계되는 것이다 . 즉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에 관계되는 일이다 .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에 관계되는 일은 하나님의 일이며 , 하나님이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다 . 즉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다 . 그 영생을 얻는 일에 대해서『더웁지도 , 차지도 않다』라는 말씀이다 . 예수님은『차지도 않고 더웁지도 않고 , 내 입에서 토하여 내치리라』라고 했다 . 내 입은 예수님이시다 . 예수님의 입에서는 하나님 말씀이 나오는데 , 그 말씀인즉『너는 미지근해서 , 나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 네가 말하기를『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못하도다』 라고 하셨다 . 이런 것이 미지근한 상태이다 . 교회를 향해서『부자라고 하는 것은 구원받은 자』를 말한다 . 자신은 구원받았다고 생각하지만 예수님은『그렇지 못하다 』라고 하신다 .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곤고한 자요 , 가난한 자 , 눈먼자 라는 것이다 . 예수님은 라오디게아 교인들에게『네가 교회에 다니면서 죄사함받고 , 구원받았다고 하지만 , 구원받지 못한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는 가난한 자요 곤고한 자요 가련한 자』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 『예수믿고 구원받았다』라고 생각하지만『예수님은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다 . 예수믿는다고 말은 하지만『율법에 얽매이면서도 성...

(89) 살았다 하는 이름을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89) 살았다 하는 이름을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1]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자가 사데교회에『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을 가졌으나 죽은 자라』고 하셨다 .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자는 예수님이시다 . 일곱 교회는 사도요한이 요한계시록을 쓸 당시에 소아시아에 교회가 일곱 있었는데 , 실재로 존재했던 교회들이었다 . 이 일곱 교회는 오늘날 모든 교회를 상징한다 . 『사데교회와 같은 교회가 오늘날에도 있다』라는 말씀이다 . 예수님이『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라고 말했다 . 『산 것 같은데 죽어있다』라는 말이다 . 왜냐하면『네 행위를 아노니』에서 그 행위이다 . 보통 교회사람들이 그 행위를 생각할 때 , 성도들의 신앙생활과 관계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 요한복음 6 장에서 오병이어의 기적의 말씀이 있는데 ,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그 기적을 보고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 나타났는데 , 예수님이 군중들을 향하여『너희가 나를 찾은 까닭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먹고 배부른 까닭이니라』라고 하면서『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라』라고 말씀하셨다 . 그랬더니 유대인들이『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일을 하는가요』라고 되물었다 . 예수님이『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다』라고 하셨다 . 여기서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일한다 라는『일』 ,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그 일이 바로 행위이다 . 헬라어에서는 같은 단어인데 , 요한복음에서는 일로 번역되어 있고 , 요한계시록에서는 행위로 번역되어 있다 . 하나님의 일은『하나님이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일인데 , 요한계시록에서 사데교회에 책망하시는 네 행위는 하나님이 보내신 자를 믿는 그 일에 대해서 예수님이『너희들이 어떻게 믿는지 안다』라는 말씀이다 . 『제대로 믿지 않는다』는 말이다 . 하나님의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데 , 『죽은 자』라고 말씀하시므로『아들을 믿지 않는다』라는 말이...

(88)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88) 육신의 정욕 , 안목의 정욕 , 이생의 자랑 [1] 많은 교회 사람들이『기도한다 , 감사한다』라는 말을 구분없이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 개인이 원하는 모든 것에 대해서 기도하고 , 감사를 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인지 , 내가 원하는 것인지 상관없이 하는 것이다 . 그리고『범사에 감사하라』라고 했으니까『무슨 일이든지 감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40 년 동안 하나님께 희생 제사와 예물을 드렸음에도 , 하나님은『받은 적이 없다』고 하셨다 . 데살로니가전서 5 장 18 절에 보면『범사에 감사하라 ,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라고 했으므로『모든 일들에 대해서 감사해야 한다』고 생각을 하는 것이다 . 그런데 잘못하게 되면 하나님이 아닌 다른 존재에게『감사한다』라는 고백을 할 수 있다 . 그러므로 사단이 이 세상의 임금이라는 사실을 반드시 생각하고 있어야 한다 . 세상에는 공평하지 못하는 일들이 많이 발생한다 . 『하나님이 이 세상에 역사하신다고 하면 어떻게 이런 일들이 일어날 수 있을까』할 정도의 일들이 일어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 하나님이 이 세상의 통치자이시지만 , 목적을 달성하기 까지 ( 천년왕국 도래 ) 는『하나님이 이 세상을 사단에게 넘겨주었다』는 사실을 생각해야 한다 . 따라서 이 세상에 사단이 모든 것의 임금 노릇을 하고 있다 . 하나님이 이 세상의 주관자이시면 세상에 불합리하고 불공평한 일이 일어날 수 없는 것이다 . 만일 하나님이 이 세상의 주관자이신데 , 이런 일들이 일어난다면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 아닌 것이다 .   『범사에 감사하라』라는 말을 두고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 예를 들어 어떤 교회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약간의 불법을 동원해서 이를 성공적으로 수행을 했다고 했을 때 , 이는 하나님께 감사할 일이 아닌 것이다 . 사도바울이 말했듯이『그리스도 안에서 범사에 감사해라』는 말씀이다 . 그리스도 안에서는 누구를...

(87) 우리가 돌아가야 할 본향이 하나님 나라인가

(87) 우리가 돌아가야 할 본향이 하나님 나라인가 [1] 보통 교회사람들은『아담과 하와가 살았던 에덴동산으로 돌아가야 한다』라고 말하면서 그것을 낙원의 회복이라고 한다 . 또한 그것을『하나님과의 회복이라』고 말한다 . 그런데 히브리서 11 장 13-16 절의 말씀은『우리가 돌아가야 할 본향은 하늘에 있다』라고 한다 . 요한복음 14 장 1-3 절 [2] 에도 하늘에 본향이 있음을 말하고 있다 . 성경이 분명히 하늘에 돌아가야 할 본향이 있다고 말하고 있는데 , 계속 에덴회복 만을 고집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 그 이유는 인간이 어디에서 왔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 단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셨고 , 인간을 에덴동산에 두셨기 때문에 에덴동산을 본향으로 말하기도 한다 . 전도서 12 장 7 절에『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 신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라고 했다 . 하늘에서 내려온 자들은『이 세상이 나그네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 본향으로 돌아가야 하는 비유가 바로 탕자의 비유이다 . 탕자가 원래 있었던 고향이 하나님 나라이고 , 탕자가 떠나 온 곳이 바로 이 세상이다 . 탕자가 아버지께로 돌아올 때는 스스로 아들의 신분을 버렸다 . 탕자는『자기가 어디서 왔다』라는 것을 알지만 아버지 집을 떠날 때의 자기 신분을 버렸다는 말이다 . 그런데 , 아버지는 상관없이 아들로 맞이해 주었다 . 돌아가야 할 본향을 있음을 알면 , 돌아가기만 하면 아버지는 받아주는 것이다 . 그 죄값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지게하는 것이다 . 그런데 , 내가 어디로 부터 온 것인지 모르면 갈 수 없는 것이다 . 모르는 이유는 영에 대해서 모르기 때문이다 . 하나님은 영이시니 돌아 가야하는 존재도 바로 영이다 . 그런데 인간은 육체만을 바라본다 . 마음이 육으로 부터 비롯된 자는 하나님을 알 수 없다 . 영의 마음을 가지 자만이 하나님을 알 수 있으며 , 하늘 나라가 본향임을 알 수 있다 . 육의 마음을 가진 자는 에덴동산이 있던 이 ...

(86) 좋은 일의 그림자 속죄 제사

(86) 좋은 일의 그림자 속죄 제사 [1] 구약성경에서 말하는 제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나아갈 때 반드시 드려야 하는 것이다 . 제사의 종류는 여러가지가 있으나 , 이스라엘 백성들이 일년에 한번 드리는 대속죄일 제사를 중심으로 그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 . 제사라 함은 교회사람들이 생각하기에 하나님 앞에 제물을 드리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 창세기 4 장에 가인과 아벨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던 내용이 나온다 . 즉 하나님께 갖다 드리고 , 바치는 개념으로 이해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 제사 속에 들어있는 제물의 히브리어 단어는 『제바흐』인데 , 본래 의미는 도륙된 짐승의 육체 , 죽인 사체인데 , 그것이 변형이 되어서 제물 , 헌물로 번역이 된 것이다 . 『제사를 드리다』라는 말은 제물과 비슷한 말인데 , 히브리어 단어는『자바흐』이다 . 본래의 의미는 드리다 라는 뜻도 있지만 짐승을 죽이다 , 도륙하다 라는 의미도 담겨있다 . 제사와 제물에 대해서 본래 히브리어의 의미가 가지고 있는 것을 되새겨 보면 하나님 앞에서 짐승을 죽이는 것을 말한다 . 왜 짐승을 죽이는 것인가 ? 제사라는 것을 의역을 하면『하나님 앞에 죄를 죽여서 하나님의 만족 , 하나님의 의를 채우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일반적으로 바치고 드리는 그러한 의미가 아닌 것이다 . 하나님과 하나님을 떠난 자들 사이에는 죄라는 것이 가로 막혀 있으므로 , 그 죄를 죽여서 하나님의 의를 채워주는 것이다 . 구약성경에는 7 월에 이스라엘 민족 전체를 위하여 대제사장이 제물을 바치고 속죄 제사를 드리는데 , 이스라엘 백성이 예물을 가지고 와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아니라 , 이스라엘 민족이 가지고 있는 죄 때문에 죄의 값으로 생명을 죽여서 하나님의 의를 만족시켜 주는 것 , 즉 의를 채워주는 것이다 . 제사를 집행하는 제사장 ( 히브리어 : 카한 [2] ) 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중재 ( 중보 ) 하는 사람이다 . 예수님은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영원한 대제사장이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