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88)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1]

많은 교회 사람들이『기도한다, 감사한다』라는 말을 구분없이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개인이 원하는 모든 것에 대해서 기도하고, 감사를 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인지, 내가 원하는 것인지 상관없이 하는 것이다. 그리고『범사에 감사하라』라고 했으니까『무슨 일이든지 감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40년 동안 하나님께 희생 제사와 예물을 드렸음에도, 하나님은『받은 적이 없다』고 하셨다. 데살로니가전서 518절에 보면『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라고 했으므로『모든 일들에 대해서 감사해야 한다』고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잘못하게 되면 하나님이 아닌 다른 존재에게『감사한다』라는 고백을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사단이 이 세상의 임금이라는 사실을 반드시 생각하고 있어야 한다. 세상에는 공평하지 못하는 일들이 많이 발생한다.『하나님이 이 세상에 역사하신다고 하면 어떻게 이런 일들이 일어날 수 있을까』할 정도의 일들이 일어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의 통치자이시지만, 목적을 달성하기 까지(천년왕국 도래)는『하나님이 이 세상을 사단에게 넘겨주었다』는 사실을 생각해야 한다. 따라서 이 세상에 사단이 모든 것의 임금 노릇을 하고 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의 주관자이시면 세상에 불합리하고 불공평한 일이 일어날 수 없는 것이다. 만일 하나님이 이 세상의 주관자이신데, 이런 일들이 일어난다면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 아닌 것이다.

 『범사에 감사하라』라는 말을 두고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어떤 교회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약간의 불법을 동원해서 이를 성공적으로 수행을 했다고 했을 때, 이는 하나님께 감사할 일이 아닌 것이다. 사도바울이 말했듯이『그리스도 안에서 범사에 감사해라』는 말씀이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누구를 속이는 일도 해서는 안될 일이다. 그리고 개인에게 어떤 좋은 일이 생겼을 때『무조건 감사한다』라는 말을 했을 때, 하나님에게 잘못을 저지러는 경우도 생기는 것이다. 사도요한이『이 세상이나 이 세상의 것을 사랑하지 말라』라고 했다. 왜냐하면『하나님의 사랑이 그 안에 없다』라는 말이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만유』라는 뜻도 있지만,『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라』는 말이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이 세가지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은 것이 없는 것이다.『이 모든 것들은 세상이 주는 것이지, 하나님께로 좇아오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그러면 세상은 사단의 것이 됨을 말하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면 왜 이런 말을 하겠는가? 물론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통치 아래에 있지만, 하나님이 어떤 목적을 달성하는 기간 동안만 사단에게 세상을 넘겨준 것이다. 이 세상은 사단이 관리하고 있으며, 『사단이 주는 것을 좋아하지 말라』는 말이다.

육신의 정욕은 육체가 원하는 것을 말한다. 안목의 정욕은 눈으로 보아서 좋은 것들, 이생의 자랑은 이 세상에서 돈과 권력과 명예를 소유하고 싶어서 만족을 얻게되는 것을 말한다. 세상에서 주는 모든 것을 받고『하나님께 감사한다』라고 말한다면 곤란하다. 사도요한이 요한1215절에서『이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님께로 온 것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했다. 그런데 교회에서 조차, 대부분 이 세상의 것을 얻기 위해서 기도하고 있으며, 대부분 자기와 관련된 이 세상의 것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예수님이 마태복음 631절에서『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먹을까 염려하지 말라』라고 하셨다. 누가복음에는『염려하지 말라는 정도가 아니라, 구하지 말라』라고 하셨다. 야고보는『병든 자를 위해서 기도를 하라』고 했으며, 사도바울도『항상 기도하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예수님의 말씀 속에는『물질세계에 있는 것들을 위해서 구하지 말고, 먼저 하나님 나라의 의를 구할 것』을 말씀하셨다. 물질은 인간의 육체를 유지하기 위해서 필수적이지만, 기도와 간구의 대상은 아닌 것이다. 일부 교회에서는 누가복음에 나오는『불의한 재판관과 과부의 비유를 설명하면서 간절히 끝없이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들어주신다』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는데, 불의한 재판관과 과부의 이야기는『사단에 속았던 원한을 탄원하고, 성령을 간구하라』는 말씀이지만, 물질을 얻는데 이 말씀을 적용해서 설명하는 경우도 있다. 예수님이 이어서『내가 세상에 다시 올 때 믿음을 보겠는가』라고 하셨다.[2]

(2) 사망에 이르는 죄[3]

죄는 사망에 이르는 죄와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가 있다. 사망에 이르는죄를 일부교회에서는『육체가 죽는 것이라』고 설명하는 경우가 있다. 고린도전서 55절에서『이런 자를 사단에게 내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얻게 하려함이라』이 성경 귀절을 근거로  사도요한이 요한1서에서 말한『사망에 이르게 하는 죄』를『육체를 사단에게 내어주는 육체의 죽음이라』고 일부교회에서 설명하는 경우가 있다. 그 예로 가롯유다와 같은 경우, 그리고 성경에서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자기의 전 재산을 팔아서 반은 숨기고 반만 내다가, 성령의 치심을 받고 현장에서 죽는 것들을 떠올리면서 『육체의 죽음이라』고 말하곤 한다. 현대적인 예를 들어서 어떤 교회의 믿음 좋은 집사가 회사의 회식 장소에서 술을 마신 후 운전을 하다가 교통사고를 내고 죽어버렸는데 이런 죽음, 또 어떤 사람이 교회 헌금을 가지고 가서 노름을 하다가 심장마비로 죽는 경우, 이런 것을『사망에 이르는 죄』라고 설명을 하는 것을 가끔 볼 수 있다. 이런 자들은 갑작스럽게 죽기 때문에 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되집어 보면 교회 헌금을 가지고 노름을 했는데, 죽지 않으면 사망에 이르는 죄가 아닌가? 회식장소에서 술을 마시고 운전을 했는데, 요행히 죽지 않았다면 사망에 이른 죄가 아닌가? 사망이 육체가 죽는는 것이라면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정말 비논리적인 결과이다.

사도요한이 기록한 요한1서의 성경은 영생에 대한 말씀이다. 요한1513절에서 말하고 있다.『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하려 함이라』성경에서 말하는『사망에 이르는 죄』는 육체와 관련되는 것이 아니라,『영생과 관련된 죄』라는 것이다.『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말은 육체의 죽음이 아니라 영의 죽음을 말한다. 만일 육체의 죽음이라고 한다면 죄값인 육체의 죽음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성경에 말하는 죄값의 사망은『하나님을 떠난 것이 죄』이고,『영이 영생에서 멀어진 것이 사망』이다.

사도요한은 사망에 이르는 죄를 짓는 자를 위해서는『기도하지 말라』고 말했다.[4] 왜냐하면 영생과 관계있기 때문이다. 사망에 이르지 않는 자를 위해서『기도하라』고 했다. 사망은 하나님을 떠난 영을 말하며 하나님과 관계가 단절된 것을 말한다. 성경에는『용서받지 못하는 죄』를 마태복음에서 말하는데,『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지 않는 자』이다. 예수님이 이런 자를 그 날에『나는 너를 모른다』라고 말씀하셨다. 이런 자들이 사망에 이르는 자들이다. 마태복음 25장에서 슬기로운 다섯처녀와 미련한 다섯처녀의 말이 나오는데, 미련한 다섯처녀가 사망에 해당하는 사망에 해당된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실 때 좌우에 강도가 있었다. 누가복음에서 한 강도는 예수님을 비방해서『너 자신을 구원하고 우리도 구원해보라』라고 했는데, 예수를 메시야로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다른 한편의 강도는『주여 당신의 나라가 임할 때 저를 기억하여 주소서』 라고 했으며, 예수님이『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라고 말씀하셨다. 위의 예를 통해서 구원 못받은 사람들은『예수를 믿는다』고 말만 하는 사람들이거나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구약의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었던 사람들 두 부류이다. 한 부류는 아예 예수를 그리스도로 인정하지 못하는 경우이다. 대부분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다. 물론 예수를 믿지 않는 이방인들도 포함될 것이다.

한 부류는 예수를 믿는데, 예수님이『모른다』라고 말한 경우이다. 그 경우는『사람들 앞에서 나(예수님)를 부인하면 모른다』고 말씀을 하는 것이다. 그들은 예수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도 하고 병도 고치고 큰 권능도 행했던 자들이다. 그런데 예수님이『모른다』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이 사람들은 인간적으로 생각할 때 예수님을 부인한 것이 아닌데, 예수님이 보시기에 부인한 것이다. 겉으로는 예수님을 인정하는척 하고, 속으로는 부인한 그런 의미가 아닌 것이다. 예수님은 구원으로 인도하시는 복음이시다. 그런데 율법은 인간이 스스로 율법을 지켜서 의를 이루어 보려는 것으로 결국 의를 이루지 못하기 때문에, 스스로 죄인임을 깨닫고 그리스도를 찾으라는 말씀이며, 스스로 포기하는 자는 그리스도를 보내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다. 율법을 믿고 지키려고 하는 것은 오신 예수를 믿지 않는 것과 같다. 신약(새로운 약속)이 성취되었는데, 구약(옛날 약속)에 계속 매달리고 있는 형국이므로 오신 예수를 믿지 않는 것과 같은 것이다.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는 것은 오신 예수를 믿지 않는 그 말이다. 즉 율법이 아닌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구원을 얻을 수 있음을 믿는 그것이다.

오늘날 예수를 믿고 구원받는다고 말은 하지만 여전히 율법 속에 갇혀있는 사람들을 본다. 십일조, 주일(안식일)성수, 성전건축, 율법에 비추어 죄를 짓는지 살펴보고 날마다 회개를 해야한다고 생각하는 경우 등 다수의 율법적 요소를 따르고 있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을 여전히 지키는 것은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신 일들』을 사람들 앞에서 부인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723[5]에서 이런 자들을『불법을 행하는 자』들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불법은 율법을 어기는 것을 말한다. 예수에게로 완전히 들어오지 못한 경우, 율법에 매여있지만 결국 율법도 지키지 못하는 불법을 행하는 자가 되기 때문이다.

로마서 415절에 보면『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함도 없느니라』예수를 믿는 자는 성령의 법으로 율법이 아니기 때문에 법에 저촉될 것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에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율법에 완전히 벗어났으므로 아무렇게나 살아도 되는가? 라는 무지한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단 조건이 옛사람이 죽어야 한다. 옛사람은 세상을 좋아하는 악이다. 이 악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죽었다는 선언을 한 자만 해당된다. 그러니까 악이 없으므로 죄가 함께 할 수 없다. 요한1518-19절에서『하나님께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라고 했다. 악이 죽었다고 선언한 자는『이렇게 된다』라고 사도요한은 말하고 있다. 하나님은 악과 함께 유할 수 없다. 악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다고 선언하는 자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할 수 있으며, 하나님 보좌에 나아갈 수 있다. 그런데 악이 죽었다고 선언도 하지 않으면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스스로 말하지만 자신이 그냥 우기는 것 밖에 안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앞에서 인정하는 사람은 옛사람이 십자가에서 예수와 더불어 죽었다고 믿고 선언하고, 율법의 계명들을 벗어나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자만 인정하는 것이다. 스스로 율법을 지키고 있는지를 잘 점검해 보아야 할 일이다. 마태복음에서 말하는 열처녀 는 이스라엘을 비유하는데, 미련한 다섯처녀는 여전히 율법을 지키고 있는 자들이다. 그런데 다른 다섯처녀는 신랑인 메시야에 대해서 알았던 것이다. 율법은 계시될 믿음의 때 까지[6] 우리를 그리스도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라고 했다. 즉 그리스도가 나타나면 율법은 종료가 되는 것이다. 아직도 율법 아래 있으면, 갇혀있는 것이며, 수건이 가려져 있는 것이다. 미련한 다섯처녀는『깨어있지 못하다』라고 표현을 하고 있다. 성경에서『깨어있으라』라는 표현은『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깨달아 알고 있으라』라는 말이다. 십일조를 지키고, 성전건축을 하고, 주일(안식일)성수를 해야하고, 율법을 통해서 죄를 짓는지 살펴보는 등의 행동은 자신이『율법을 지키지 않는다』고 말하면서도, 율법을 지키는 행위에 해당되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데서 기인한다. 성경의 말씀에 깨어있지 못한 상태이다. 사망에 이르는 죄는『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라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지 못하는 자를 말한다. 옛사람이 죽지 않았거나, 율법을 여전히 행하는 자를 모두 포함한다.





[1] 요한1215-17: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2] 누가복음18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3] 요한1513-21: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하려 함이라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 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한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러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저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 모든 불의가 죄로되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도 있도다 하나님께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 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서 멀리하라


[4] 요한1516: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한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러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저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


[5] 마태복음723: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6] 두껑이 열려서 예수 그리스도가 밝히 들어날 때 까지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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