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서

요한복음 16장 7-11절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 가지않으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책망하리라.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 예수님께서 아버지께로 올라가면서 성령을 보내 주시는데, 성령을 보내주시는 이유가 무엇인지, 성령님이 오셔서 어떤 일을 하시는지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신분으로 게셨던 예수님께서 인간의 육신을 입고 세상에 내려 오셔서 십자가 위에서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을 다 짊어지시고 죽으셔서 세상 모든 죄를 다 사하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삼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는데, 그 때 당시에는 큰 이슈가 되었겠지만, 아무도 말을 안하고 세월이 지나 그 문제에 대해서 누군가 이야기하지 않으면 그냥 없어지는 것이다. 남는 것은 사람들의 눈으로 보았던 사건 역사가들이나 인간의 눈으로 보여진 그 사건 만이 기록으로 남게 될 것이다. 만일 그렇게 되면 예수님의 십자가 위의 사건은 헛된 죽음이 되는 것이다. 이 헛된 죽음이 되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다 적용하고 모든 사람이 다 그 일을 통해서 구원받게 되기를 원한다고 하면 복음을 전해야만 하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장 21절에는 전도의 미련한 방법을 사용할 것을 말씀하고 있다. 전도의 미련한 방법으로 왜 십자가의 그리스도와 연합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사실을 전하라는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십자가 위에서 죽고 삼일 만에 부활한 후 하나님께로 가야 한다』라고 말을 하시니까 제자들이 걱정을 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가서 또 다른 보혜사 성령을 보내줄 테니 염려하지 말라 라고 하...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누가복음 16장 8-9절에서『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 불의한 청지기는 주인의 재산을 임의로 탕감해 주므로서 주인의 재산을 탕진했다. 그런데 주인이 이 불의한 청지기를 보고『잘했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 비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물들에 대한 특성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된다. 주인은 하나님을 의미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빚을 탕감해주기를 원하신다. 마태복음 18장 23-35절에서 1만 달란트 빚진 자의 내용이 나온다. 어떤 관원이 왕에게 1만 달란트의 빚을 졌는데, 왕이 빚을 갚으라고 독촉을 하는데, 갚을 능력이 없다고 하니까, 왕이 불쌍히 여겨서 빚을 탕감해 주었다. 이 관원이 왕으로 부터 물러나서 집으로 가다가 자기에게 100데나리온(아주 적은 돈) 빚을 진 사람을 발견하고는 빚을 갚으라고 요구했으며, 그 사람이 갚을 능력이 없다고 하니까 그를 끌고 가서 옥에 가두어 버렸다. 그런데 다른 관원이 왕께 이 사실을 고하니 왕이 분노하여 1만 달란트 빚진 관원을 옥에 가두고 빚을 다 갚기 까지는 옥에서 나오지 못하게 했다는 내용이다. 예수님이 이 비유를 가지고『형제의 죄를 용서해 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두번째의 인물은 불의한 청지기인데, 불의한 청지기는 부자의 재산을 관리하고 있었다. 이 세상에서 불의한 청지기는 바로『나』라는 사실이다. 나의 육체와 내가 이 세상에서 가지고 있는 모든 재물은 다 내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누가복음 12장 16-21절에서 비슷한 비유가 나온다. 농부가 소출이 많아져서 창고를 더 많이 지어, 양식을 가득 채우고 말하기를『이제 내가 양식이 충분하므로 내가 먹고 살아도 문제가 없겠다』라고 하니까 예수님이 그 비유를 통해서『어리섞은 자여, 오늘 밤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것이 다 무슨 의...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히브리서 4장 1-2절에서『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는 혹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 안식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은 쉬는 것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창세기 1장 1절에『하나님이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에서 천지를 창조하시기 전에 하나님 나라는 안식 그 자체다. 성경(요한계시록)에서는 마지막 때,『새하늘과 새땅에 들어가는 자가 안식에 들어간다』고 말한다. 하나님 스스로가 안식이요, 예수 그리스도가 안식이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안식을『쉰다』라고 생각하면 그 다음에는 또 일해야 하는 날이 오지만, 하나님 나라 안식에 들어가면 일하고 쉬는 개념이 아닌 것이다.  천지창조를 하기 전에는 안식이었는데, 천지창조를 하게 되므로 안식이 깨져버린 것이다. 그리고 천지창조를 다 끝내고 하나님이 이 땅에서 손을 떼시고 안식을 하신 것이다. 창세기 2장 1-3절에서『하나님이 일곱째 날에 복을 주시고 안식하시니라』라는 말은 하나님 나라 즉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안식과 같은 것이다. 천지창조에서 말하는 안식은 이 세상에서 창조의 일이 끝나는 멈춤이라는 말이다. 하나님께서『일곱째 날에 복을 주셨다』라는 말은 세상에 복을 주신 것이 아니라, 날에 복을 주신다는 것이다. 날은 물질세계의 시간과 공간 속에 있는 날이다. 하나님이 물질세계 속에서 이 날에 복을 주신 것은 물질적 복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복을 주신다는 말이 담겨져 있다. 즉 이 세상이 끝나는 날에 하나님이 영원한 안식을 주시겠다는 약속이 들어가 있는 것이다.  성경에서 안식을 어떻게 설명하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히브리서 4장 8-10절에서『만일 여호수아가 저희에게 안식을 주었더면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였으리라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있도다 그런즉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하나님만 구하는 기도

고린도후서 5장 1-4절에서『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참으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라 이렇게 입음은 우리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참으로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진 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히려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 삼킨 바 되게 하려 함이라』 장막은 하나님과 만나는 언약의 장소를 말한다. 율법 시대 이전에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만난 곳이 장막이었다. 하나님이 손으로 지은 집은 바로 육체를 말한다. 하나님이 흙으로 빚어셔서 인간을 만드셨다. 그리고 아담을 에덴동산에 넣어주셔서 생명나무의 과실을 먹게 했다. 아담의 육체 속에 있는 영이 살아나서 하나님과 교통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인간의 죄악으로 인해서 육체는 오염되고, 영이 살 수 없는 곳이 되어버렸다. 모든 인간들의 장막이 무너진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하늘로부터 오는 처소가 있다. 이 처소가 바로 영의 몸이다. 영의 몸을 입지 않으면 벗은 자들이 되는 것이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고, 그들이 벗었음을 발견한 것이다. 영의 몸을 입지 못하면, 벗은 자들이 된다.  『죽을 것이 생명에 삼킨 바 되게 하려 함이라』덧입는 것을 말한다. 『덧입는다』는 말은 옷을 하나 더 입는다는 말이다. 육의 몸에 영의 몸을 입는다는 의미다. 거듭나는 사람은 두가지 옷을 입고 있는 셈이다. 육의 몸과 영의 몸이다. 육의 몸이 죽어야 생명으로 이어진다. 생명은 영의 몸이다. 로마서(6장 4절)에서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죽을 것(육의 몸)이 생명(영의 몸)이 삼켜지는 것이다. 그래서 죽...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한 것이라

베드로전서 1장 3-4절『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베드로가 카타콤(갑바도기아)에서 살고 있던 성도들에게 편지를 한 내용이다. 성도들이 핍박을 피해 산에서 동굴을 파서 피난생활을 하고 있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가 아버지라고 부르는 분이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우리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다. 회개하여 거듭나지 않으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을 수 없다. 베드로도 예수가 죽기 전에 예수님을 세번 부인했었다. 회개하지 않은 자의 모습이다.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회개하지 않으면서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다.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 그리스도는 왕의 모습이 아니라 죄인의 모습이었다. 왜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를 받아 죽으셨는가? 하나님은 죄악을 용서하시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이다. 죄가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 죄인으로 죽은 것은 놀라운 일이다. 하나님은 회개하는 자를 위하여 기꺼이 자기 아들을 죽게 하신 것이다. 회개하는 인간들이 무슨 잘못이 있었기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저주를 받아 죽음을 당해야만 했는가? 이것을 정확하게 알지 못하면, 회개의 의미를 모르는 것이다.  로마서 5장 12-14절에서『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었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 특히 15장 14절에서『Nevertheles...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다

에베소서 2장 4-5절『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영이 죽어있다. 왜냐하면 원죄로 죽어있으며, 육이 오염되었다.   원죄는 육적인 원죄와 영적인 원죄가 있다.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알고 있는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원죄는 육적 원죄다. 육적 원죄는 악(죄성)이라고 말하며, 세상에 살면서, 이 악이 하나님 말씀과 세상의 법을 어기게하며, 죄를 짓게 만드는다. 그러나 영적인 원죄는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죄다. 그래서 인간들은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대적하며 우상을 섬기며 살게된다. 그래서 이 두가지를 합하여 원죄라고 말한다. 대부분 교회 사람들은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지은 죄를 원죄라고 말하지만, 영적인 원죄는 하나님 나라에서 사탄이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서 하나님을 대적한 것이 영적 원죄의 시작이다. 그래서 사탄을 따르는 모든 존재들은 영적 원죄를 물려받고 있는 것이다. 요한복음 8장 44절에서『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육적인 원죄는 이 땅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영적인 원죄는 영적인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죄인이 되어있는 것은 이 두가지의 원죄를 다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다. 죄성과 하나님을 대적하는 우상이다. 죄성은 육의 몸을 오염시키지만, 우상은 영을 죽인다. 그래서 육의 몸(죄성)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성령의 능력으로 영의 몸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영이 살아날 수 없게된다. 그래서 구원의 조건은 육의 몸이 죽고, 영의 몸으로 다시 살아나는 것이다. 에베소서 2장 1절에서『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And you hath he ...

내 마음의 우상이 탐심이다

로마서 3장 24-26절『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오늘날 많은 교회는『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를 생략한채, 뒤의 부분을 말한다.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고 말한다. 속량이 없이는 죄사함을 받을 수 없는데도, 예수를 믿으므로 그의 피로서 죄사함을 받았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회개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예수의 피값으로 사신바되었으니, 이것이 값없는 은혜다. 죄의 값은 사망이다. 죄인은 죽지 않으면, 죄로부터 빠져나올 수 없는 존재다. 반드시 대가를 지불한다. 그런데, 하나님이 회개하는 자를 위하여 자기 아들로 하여금 죽음의 대가를 치르게 하셨다.  회개가 무엇인가? 하나님께 대하여 죽을 자임을 깨닫고,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것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죄의 대가를 너무 쉽게 생각한다. 그리고 모든 죄의 대가를 예수님께 전가시키려고 한다. 그래서 자신은 죽지 않는 것이다. 예수님을 주라고 말하면서, 세상도 좋은 것이다. 하나님 나라도 좋고, 이 세상도 좋은 것이다. 하나님이 예수를 믿는 자를 위하여 피의 대가를 치른게 아니라, 예수와 함께 죽은 자를 위하여 피의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다. 예수와 함께 죽은 자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가 된다. 피의 대가는 어디에서 이루어지는가? 바로 지성소에서 화목제물로 이루어진다. 화목제물로 인해서 하나님께서『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기 전에 하나님으로부터 10가지 재앙이 내려졌다. 백성들이 장자의 죽음으로부터 벗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