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죽으심과 연합되어 세례를 받은 자

(갈라디아서 3장 28-29절)『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예수님의 죽으심과 연합되어 세례를 받은 자는 예수님의 부활 생명으로 하나님이 다시 살려주신다. 이것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남이다.  인간은 모두 하나님이 보시기에 진노의 자녀다. 사단에게 속아서 모르고 살았다. 에덴동산을 창설하셨을 때는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지만 그 이후는 하나님 보시기에『사람들이 생각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하다』고 했다. 그래서 하나님이 진노하시는 것이다. 마지막 때는 『노아의 때와 롯의 때와 같다』고 했다.  인간들은 율법을 무시하므로 얼마나 큰 죄인인가를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인간들이 스스로 자각하는 죄가 있고, 하나님이 보여주시기 전에는 모르는 죄가 훨씬 더 많다. 그래서 하늘의 거룩한 빛이 비춰지면 사울과 같이 넘어지고 만다.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것이 은혜다. 다윗은 시편 19편 12절에서『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리요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라고 고백했다.  사람들에게 칭찬받고 선하게 보일지라도, 하나님없이 산다면 하나님께 악한 것이다.  에베소서 2장 1-3절에서 모든 자들은 하나님께 대하여『허물과 죄로 죽은 자들』이라고 했다. 하나님께서 이런 사실을 깨닫게 해 주시는 것이다. 노아 당시 120년 동안 사람들에게 알려주셨다. 그러나 가족 7명 외에는 깨닫지 못했다. 노아와 함께 살던 수많은 사람들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당대의 의인은 노아 밖에 없었다. 노아만 하나님과 동행했다. 하나님은 노아를 통하여 회개의 기회를 주신 것이다. 당시 아름다운 세상을 보고 세상을 멸하시려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한 것이다.  『본질상 진노의 자녀』라는 말은 심판받을 수 밖에 없는 그런 존재라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사실을 깨달을 수 있는가? 노아의 가족과...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갈라디아서 3장 26-27절)『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교회에서 26절의 말씀을 가르치기를 즐겨 사용하지만, 처음 교회 나온 사람에게『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라고 한다면, 처음 교회 나온 사람에게는 믿음의 의미를 모른채『내가 믿으면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이구나』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잘못된 것을 가르쳐 주는 결과가 된다. 그래서『믿음을 잃어버리면 천국 갈 수 없다』고 생각하고 더 열심히 믿으려고 애쓰다가 잘못된 길로 가게 되는 것이다.  3장 27절에서『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그리스도의 옷은 그리스도와 합한 자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다. 그리스도와 연합된 삶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십자가에서『자기』라는 주체를 부인해야만 그리스도와 연합된 삶을 살게된다. 결국 자기를 부인하지 않으면 믿음이 오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자기』부인도 없으면서 내가 믿는다고 한다면, 그것은 율법 아래 매인바 되는 것이다.  3장 25절에서 말하는 바『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초등교사 아래에 있지 아니하도다』이 믿음은 온 것이다. 사람이 스스로 믿겠다고 결심한 그런 믿음과 다른 믿음이다.  믿음이 오는 것에 대해서 3장 23절에서도 말하고 있다.『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사도바울이 세례 앞에 이 믿음을 두 번이나 설명하고 있다.  율법 아래 매여있으면『오는 믿음』이 없다. 오는 믿음은 하나님으로 부터 오는 믿음을 말한다. 많은 사람들은 스스로 믿기로 결단하고 성실하게 열심히 믿으려고 하면서 성경 공부도 하고, 새벽기도도 나가고 예배도 빠지지 않고 봉사도 열심히 하고 최선을 다해서 신앙생활을 하면 하나님의 아들이 된 줄로 생각한다. 그러나 믿음은 하나님...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갈라디아서3장25절)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초등교사 아래에 있지 아니하도다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갈라디아서는 갈라디아라는 도시에 있는 교회에 보내는 편지이다. 그 당시 교회에는 세례받은 교인들이 대부분이다. 당시의 교인들에게 물 세례가 의미하는 것을 사도바울은 설명하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는 물세례를 받았으므로 성령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의가 있는 곳에 사랑이 있다. 사랑이 있다면 의가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물세례 역시 성령세례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분리되어 있지 않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의와 사랑이 분리될 수 없듯이 물세례와 성령세례는 분리될 수 없다. 산소와 수소가 분리되면 물이 될 수 없다. 사랑은 의 만큼 담겨있다. 십자가에는 사랑만 있다고 말한다면 거짓말이다. 예수님이 인간을 대신해서 죽으셨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이다. 예수님은 우리 대신 죽은 것이 아니라 우리를 초대하는 것이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나니』라고 고백하는 자만이 구원을 받는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에게 진노하신다. 죄가 없는 자기 아들에게 보인 진노만큼 진노하신다. 이게 의다. 성경은『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고 말하고 있다. 죄인이 필요한 것은 의다. 사랑받는 것이 아니라 회개해서 의를 얻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베드로가 말하기를 노아가 120년 동안 전한 것은 의의 도다. 세례요한도 전한 것은 의의 도다. 성경이 말하는 것은 회개하고 세상으로 부터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오늘날 시대는『예수 믿으세요, 그러면 구원을 얻게 될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거짓 복음이다.  회개하지 아니한 자는 주님이 받아주지도 않는다. 우리가 회개 할 수 있는 곳은 십자가 뿐이다. 회개는 옛사람(자아)이 죽는 것을 말한다. 십자가에서 옛사람(자아)이 예수와 죽어야만 구원을 받을 수 ...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갈라디아서 3장 22-24절)『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에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라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갈라디아서 3장 23-25절『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초등교사 아래에 있지 아니하도다』  초등교사 라는 말은 우리 말 성경에서 몽학선생이라고 번역된 바 있었다. 몽학선생은 헬라시대, 귀족의 종(하인)이었는데, 귀족들은 자기의 자녀들을 하인들 중에서 학식이 높은 자들에게 어릴 때부터 교육을 맡겨, 그 아이가 16세가 되면, 아버지로부터 시험을 받아야 하는데, 시험을 통과하는 자에게 아버지의 모든 기업을 물려받을 수 있었고, 통과하지 못하면 육으로는 아들이지만, 법률적, 시회적으로 아들이 되지 못하는 그런 시대의 선생이었으므로, 자녀에게는 중요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갈라디아서 4장 1-2절에서 『내가 또 말하노니 유업을 이을 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나 어렸을 동안에는 종과 다름이 없어서 그 아버지가 정한 때까지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에 있나니』  고린도전서 4장 15절에서『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여기서 스승이 바로 초등교사(몽학선생)와 같은 의미다. 성경에서는 율법이 바로 초등교사라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이 말은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하면서도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많지 않다고 했다. 즉 자식을 낳은 자가 많지 않다는 것...

하나님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에게 주신 것

(갈라디아서 3장 15-18절) 형제들아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사람의 언약이라도 정한 후에는 아무도 폐하거나 더하거나 하지 못하느니라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한 사람을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신 언약을 사백삼십 년 후에 생긴 율법이 폐기하지 못하고 그 약속을 헛되게 하지 못하리라 만일 그 유업이 율법에서 난 것이면 약속에서 난 것이 아니리라 그러나 하나님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에게 주신 것이라  사도바울은 언약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은 약속의 자녀와 땅을 주신다는 것이다. 약속의 자녀는 세상적으로 말하자면 이삭과 가나안이 되지만, 영적으로는 그리스도이시요, 약속의 땅은 하나님 나라다. 그런데, 이 언약은 율법으로 된 것이 아니라 오직 약속으로 말미암은 것이다.『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하므로 더하여진 것이라』이 세상에도 수많은 법들이 존재한다. 법이 존재하는 이유는 낙원과 같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범죄자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제재를 가하므로서 세상이 더 이상 악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율법은 범법하기 때문이다.  범법은 인간의 죄성으로 인하여 율법을 어기는 것, 죄를 짓는 것을 말한다. 인간의 죄성은 원죄를 말한다. 원죄는 하늘의 원죄와 땅의 원죄가 있다. 원죄는 하나님을 떠난 것이다. 하나님 나라에서 영들이 사탄의 미혹을 받아서 하나님을 떠나고자 한 것이 하늘의 원죄다. 그래서 이 세상에 갇혔다. 마찬가지로 이 세상에 태어난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로 에덴동산에 들어갔지만, 사탄의 미혹을 받아서 죄에 빠지게 된 것이다. 디모데전서 2장 14절에서『아담이 속은 것이 아니고 여자가 속아 죄에 빠졌음이라』죄에 빠졌다는 것이 범법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율법을 주신 목적은 모든 인간들이 이렇게 하나님을 떠난 존재들이라는 것을 깨...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갈라디아서 3장 10-14절)『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니 율법을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 하였느니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므로 율법을 완성시켰으며,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도 또한 마찬가지로 율법에서 벗어났는데,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말을 하면서도, 믿는 자가 스스로 율법을 지켜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율법을 세우면, 그것이 기준이 되어 하나님이 그 율법대로 판단하신다는 것이다. 자기가 쳐놓은 덧에 자기가 걸려드는 것이다.  갈라디아서 2장 18절에서 『만일 내가 헐었던 것을 다시 세우면 내가 나를 범법한 자로 만드는 것이라』모든 죄인들은 율법에서 완전한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교회 사람들 대부분, 율법이 아닌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믿지만,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 율법을 바라보고 지켜나간다고 생각한다. 즉 율법을 지켜나가는 것은 구원이 아니라, 다만 죄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그러나 율법을 지키려고 하는 자는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을 온전히 믿지 못하는데서 기인한다.  이렇게 된 이유는 예수를 믿는 믿음에 대해서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수를 믿는 것은 단지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죽으셨다는 것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와 연합되는 믿음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로마서 6장 3-4절에서 『...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갈라디아서 3장 7-9절)『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그리스도가 내 안에, 내 안에 그리스도가 계시다』는 것을 믿는 자는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말이 성립되지 않는다. 갈라디아서 4장 4-6절에서『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자는 내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있는 자만 그렇게 부를 수 있다. 그래서 율법으로 부터 속량이 된다.  율법을 지켜행해야 한다는 말은 그리스도가 내 안에 없다는 말이다. 율법을 지켜행해야 한다는 말은, 다시 율법으로 그리스도를 하늘에서 이 땅으로 끌어내리는 모양이다. 그 일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도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말을 하면서 율법을 지키려고 하는 사람들이 이 같은 일을 행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율법을 지켜행해야 하는 것은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오신 것을 믿지 않는 것과 같은 것이다. 왜냐하면, 율법을 지켜행하는 것은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일이기 때문이다. 율법을 지켜행하려고 하는 자들은 그 속에 성령이 계신 것이 아니라 사탄의 영이 그 안에 있는 것이다.  히브리서 10장 10-12절에서『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나 죄를 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