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앉으니라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앉으니라 사도행전 13장 13-14절『바울과 및 동행하는 사람들이 바보에서 배 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 이르니 요한은 그들에게서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그들은 버가에서 더 나아가 비시디아 안디옥에 이르러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앉으니라』 배경은 구르보 섬에 위치한 바보(파포)에서 배를 타고 소아시아를 통과해서 갈라디아 지방으로 가는 약 2240km의 여정으로, 약 2년동안 펼쳐진 전도여행이었다. 버가에 이르러 요한 (여기서 요한은 마가라는 요한을 뜻함) 이 바울과 동행하는 사람들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바울 일행은 버가에 도착하자마다 해안 도시의 독특한 기후로 인해 바울의 몸에 이상이 생겼다. 이로 인해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가기로 결정했으나, 이를 위해서는 험난한 산맥을 넘어야 했던 것이다. 어린 마가요한이 보기에, 바보에서 버가까지 어렵게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와서 병에 걸린 바울을 보게 된 것이다. 그리고 바울과 그 일행들은 거친 산맥을 넘어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가기로 결정을 했다. 마가요한에게 그 산맥은 단순히 험난한 산행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전도자의 삶에 닥쳐온 고난이라는 산맥이었던 것이다. 결국, 마가요한은 더 이상 바울과 함께 하기를 거부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버렸다. 이 사건으로 인해 바울에게서 마가요한은 더 이상 함께 동역할 수 없는 이로 낙인찍히게 된다. 그 결과 2차 전도여행에서 바울은 마가요한과 동행하고자 했던 바나바와 심히 다투고 갈라서게 된다. 바울과 일행들은 병에 걸린 몸을 이끌고 산맥을 넘게 되었다. 그들이 넘어야 하는 산맥은 마가요한을 도망가게 한 엄청난 두려움과 고난을 뜻한다. 산맥을 넘으면서 병을 이겨내야 했으므로, 목숨을 건 산행일 수밖에 없었다. 그 두려움과 고난의 산맥을 바울과 그 일행들은 함께 넘었다. 바울은 비시디아 안디옥에 이르러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말씀을 전하게 된다. 회당장이 글을 읽은 후 갑자기 바울 일행에게 말하는데, 레곤테스(말하라)는 아오리스트 시제다....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사도행전 13장 1절『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선지자란 하나님 말씀을 예언하는 사람으로서, 말씀에 대해서 해석하고 풀이하는 능력있는 자들이 된다. 안디옥 교회는 복음과 율법에 대해서 혼란을 많이 겪었다. 그래서 안디옥 교회는 사울과 바나바를 예루살렘 교회에 파송하여 할례에 대해서 어떻게 받아드려야 하는지를 확증하게 했다. 따라서 바나바와 사울은 선지자들이라고 말을 할 수 있으며, 그 선지자들의 말을 받아서, 교회의 초신자들을 대상으로 가르치는 교사가 세 사람이 있었다는 말이다. 바나바는 구브로출신 정통 유대인이었다. 그리고 니게르라고 하는 시므온이 있었는데, 시므온은 흑인 개종자였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그리고 루기오라는 사람이 안디옥교회 지도자 그룹에 속해 있었는데, 그는 구레네 사람 즉 지금의 아프리카 리비아지역 출신이었다. 마나엔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이라는 수식이 붙어 있다. 헤롯과 어릴 때부터 함께 양육 받고 자랐으며, 비록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는 부유한 귀족적인 환경에서 자랐을지 몰라도, 불의한 지배계층 출신이다. 사울 역시 초대교회를 심하게 핍박하던 자였다. 안디옥교회 지도자들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과연 하나됨으로 한 교회공동체를 이룰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들 수밖에 없을 정도로 인종적 배경, 출신, 신분, 계급이 달랐다. 그런데 이런 차이를 넘어 그들과 그들이 속한 교회는 한 비전 아래 하나됨을 이루어 선교사역을 잘 감당하였다. 이것을 가능케 한 힘은 바로 복음이었다. 각기 다른 배경 속에서 다른 삶을 살고 있었던 자들이었지만, 그들은 동일한 한 가지, 즉 그리스도가 그들의 참된 진리며, 보물임을 똑같이 발견했던 것이다. 그 복음이 그들을 완전히 다른 삶으로 바꾸어 놓았고, 그리스도의 보물을 발견한 그들은 성령을 철저히 의지하며 살았다. 복음의 은혜와 복음을 철저하게 붙...

쇠문에 이르니 문이 저절로 열리는지라

   쇠문에 이르니 문이 저절로 열리는지라 사도행전 12장 10-12절『이에 첫째와 둘째 파수를 지나(디엘돈테스) 시내로 통한 쇠문에 이르니 문이 저절로 열리는지라 나와서 한 거리를 지나매 천사가 곧 떠나더라 이에 베드로가 정신이 들어 이르되 내가 이제야 참으로 주께서 그의 천사를 보내어 나를 헤롯의 손과 유대 백성의 모든 기대에서 벗어나게 하신 줄 알겠노라 하여 깨닫고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가니 여러 사람이 거기에 모여 기도하고 있더라』 첫째는 군인들이고, 둘째는 간수들이다. 천사가 인도하므로 베드로는 첫째와 둘째를 지나갔다. 그런데, 그들은 아무런 대응이 없는 것이다. 디엘돈테스는 통과하다, 지나가다 라는 의미다. 요한복음 4장 4절  “사마리아를 통과하여야 하겠는지라”예수님이 유대를 떠나 갈릴리로 가는데, 사마리아를 통과한다는 말씀이다. 사도행전 12장 18-19절에서는『날이 새매 군인들은 베드로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하여 적지 않게 소동하니 헤롯이 그를 찾아도 보지 못하매 파수꾼들을 심문하고 죽이라 명하니라 헤롯이 유대를 떠나 가이사랴로 내려가서 머무니라』군인들은 밤에 있었던 사건에 대해서 전혀 기억이 없었다. 천사의 몸과 베드로의 몸에 대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천사의 몸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과 같이 공간을 넘나드는 몸이며, 베드로의 몸은 공간에 한정된 몸이다. 천사에 의해 베드로에게 채워진 쇠사슬이 저절로 풀어지고, 쇠문이 저절로 열리게 된 것이다. 천사는 하나님의 권능을 상징한다. 베드로에게 하나님의 권능이 임한 것이다. 이 권능은 물리적으로는 감옥으로부터 나오게 하는 능력이요, 영적으로는 모든 신앙인들이 어떻게 죄의 굴레로부터, 율법의 굴레로부터 자유함을 입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데, 파수꾼들은 반응이 없었다. 밤이였으므로, 잠에 취한 것인가 아니면 천사에 의해 순간 죽은 자같이 되었는가? 마태복음 28장 1-4절에서『 안식일이 다 지나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베드로도 잡으려 할새 때는 무교절 기간이라

   베드로도 잡으려 할새 때는 무교절 기간이라 사도행전 12장 1-3절『그 때에 헤롯 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에서 몇 사람을 해하려 하여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 유대인들이 이 일을 기뻐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도 잡으려 할새 때는 무교절 기간이라』 헤롯 왕은 아기 예수께서 탄생하실 당시에 유대를 통치했던 헤롯 대왕의 손자의 헤롯 아그립바1세다. 헤롯 왕은 친유대교적인 정책을 펴면서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위해 노력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기독교인을 탄압하고 핍박한 사건이 나오는데,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죽임으로 사도 중 첫 순교자가 되게 하였다. 야고보를 죽인 일로 인해 유대인들이 기뻐했다고 증거한다. 기분좋게 만족할 정도로 유대인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본 헤롯 왕은 베드로까지 옥에 가두며 기독교인들을 향한 탄압을 지속하였다. 헤롯은 초대교회 우두머리 격인 베드로도 잡아들이면 유대 지도자들이 자신을 더욱 지지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베드로를 옥에 가둔 시기는 유대교의 3대 절기 중 하나인 유월절 기간이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노예 생활로부터 해방한 것을 기념하는 절기다. 유월절 시작 다음날부터 일주일 동안 누룩없는 빵을 먹는 무교절이다. 헤롯 왕은 이스라엘의 가장 중요한 절기인 유월절이 지난 후에 베드로를 공개 처형함으로 자신의 정치적인 기반을 확고히 하기를 원했다. 베드로가 옥에 갇히자 마가의 다락방에 있던 성도들은 베드로를 위해 간절히 기도했다. 기도는 프로슈케와 유케가 있는데, 프로슈케는 심령 속의 성전에 임재하시는 호 로고스에게 들어가 기도하는 것을 의미하고, 유케는 일반적으로 신도가 신에게 자기의 소원과 복을 비는 그런 기도를 의미한다. 그 간절한 기도는 헤롯이 베드로를 끌어내어 자신의 계획을 실행하기 바로 전날 하나님의 개입하심으로 상황이 달라졌다. 베드로는 파수꾼들에 의해 겹겹이 포위되어 있었다. 옥문 밖에는 두 명의 간수들이 지키고, 옥문 안에는 두 군인들이 베드로를 각각 ...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사도행전 11 장 22-26 절『예루살렘 교회가 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니 그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 엔 토 퀴리오 ) 머물러 있으라 ( 프로스메네인 ) 권하니 바나바는 착한 ( 아가도스 ) 사람 ( 아네르 ) 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이 소문은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는 소문이다 . 주로 제자들은 유대인들을 중심으로 복음을 전했는데 , 이방인에게 복음이 전해지자 , 바나바를 안디옥에 보내어 이방 전도를 하라는 것이다 . 엔 토 퀴리 ( τ ῷ κυρ ίῳ ) 는 주 안에서 라는 말이다 . 프로스메네인 (προσμ έ νειν) 는 심령 속에 임재하시는 호 로고스 안에 오래 머물러 있으라는 것이다 . 아가도스 (ἀ ν ὴ ρ ἀ γαθ ὸ ς) 는 하나님의 가치있는 일을 하는 사람인 것이다 . 하나님의 가치있는 일을 하는 것은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고 ,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호 로고스의 음성을 듣고 그 분과 말씀을 나누는 정도의 상황을 의미한다 . 바나바는 안디옥 교회가 뿌리를 내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 . 그는 복음을 가르쳤고 , 호 로고스 복음 안에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 그리고 다소에서 칩거하던 바울을 친히 찾아가 동역자로 삼았다 . 안디옥에서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는 호칭이 사용되었다 . 그러나 호칭을 붙인 것은 바나바와 사울과 공동체의 일원들이 아니라 , 다른 사람들이 불러준 것이다 . 복음을 받아들인 안디옥 공동체가 바나바와 바...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사도행전 11 장 19-21 절『그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 ( 들맆세오스 ) 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말씀 ( 톤 로곤 ) 을 전하는데 ( 랄룬테스 )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 엘라룬 ) 주 예수를 전파하니 ( 유앙겔리조메노이 )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들맆세오스 (θλ ί ψεως) 는 환난으로 번역되었지만 , 심령 속의 지성소로 밀려 들어가 머무는 어려움을 의미한다 . 스데반의 일로 유대지도자들이 예수믿는 그리스도인들을 잡아드리려 하자 , 그들은 예루살렘에서부터 유대 남쪽과 북쪽의 사마리아로 이동해서 복음을 전하고 , 심지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복음을 전하게 된다 . 이러한 상황에서 제자들은 기도를 통해서 예수님의 뜻을 묻는 것이다 . 이와 같은 심령 속의 지성소 기도는 예수님께서 그런 상황을 통해서 제자들에게 성전으로 들어오라는 압박인 것이다 . 그런데 , 성도들은 지성소의 임재 속에 머무는 것이 오히려 고통스럽게 여겨질 때가 있는 것이다 . 오늘날 성도 역시 하나님 나라의 참 복음을 선포할 때 , 교회 공동체의 핍박이 있게 된다 . 현재적 부활을 말할 때 , 신도들은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보거나 , 말로서 핍박을 한다 . 이때 , 성도들은 예수님께 지성소 기도를 통해서 방법을 구하는데 , 어려움이 생기는 것이다 . 랄룬테스 톤 로곤 (λαλο ῦ ντες τ ὸ ν λ ό γον) 은 호 로고스를 말했다는 것이다 . 엘라룬은 마찬가지로 호 로고스를 말하고 , 유앙겔리조메노이 (ε ὐ αγγελιζ ό μενοι) 는 복음을 전했다는 것이다 . 복음은 호 로고스를 전하는 것을 의미한다 . 유대인 기독교인과 헬라인 기독교들에게는 호 로고스를 전했는데 , 유대교인들에게는 성경에 있는 말만하고 호 로고스를 전하지 않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