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갈라디아서 6장 9-12절『우리가 선(칼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아가돈)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내 손으로 너희에게 이렇게 큰 글자로 쓴 것을 보라 무릇 육체의 모양을 내려 하는 자들이 억지로 너희에게 할례를 받게 함은 그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박해(티오콘타이)를 면하려 함뿐이라』 칼론 (καλὸν) 은 가치있는 일을 의미한다. 가치있는 일은 성도가 심령 속에 임재하시는 호 로고스에 나가는 일, 지성소에 들어가 임재기도를 드리는 것(관상기도), 성령 충만을 받는 것 등이 될 것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의롭다 여기심을 받기까지 25년의 세월이 흘렀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고향 친척집을 떠나라는 말씀에, 그는 친척 롯을 데리고 나왔으며, 상속자를 엘리에셀로 여겼으며, 사라가 임신을 하지 못하므로 하갈을 통해서 이스마엘을 낳았다. 그리고 그가 99세가 되어 내년에 사라로부터 아이를 얻게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음성에 의심하지 않고 믿었으며, 그로부터 하나님이 그를 의로 여기신 것이다. 성도도 상황에 반응하지 말고 심령 가운데, 호 로고스의 임재를 바라보아야만 한다. 그러면 반드시 때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게 될 것이다. 아가돈 (ἀγαθὸν) 은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말 번역은 둘다 선한 일이라고 번역되었다. 아가도스는 믿음의 사람이 되게 돕는 것을 의미한다. 믿음의 가정이라도 거듭나지 못하면 믿음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큰 글자의 의미는 대단히 중요하다는 의미로 표현되었다. 육체의 모양을 내는 것은 할례를 의미한다. 그 당시 기독교인들은 예수를 믿지만, 부활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견해가 많았다. 그래서 오히려 할례를 더 추구하게 되었다. 티오콘타이는 박해가 아니라 추구하다 라는 의미다. 할례를 받고, 그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역으로 추...

문답 176

  176 문:   왜 다른 날이 아니고 제 칠일이 이런 상징을 나타내기 위해서 정해졌는가? 답: '7'이란 숫자는 성경에서   " 완성"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그것은   " 영원성"을 표현하는데 매우 적합합니다.   또한 그것은 우리의 영적 안식이 현재 생활에서는 다만 시작한데 지나지 않으며,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는 결코 완전하게는 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가르치기도 합니다. 성경에서   숫자   7 은   완전수이다.   예를   들면   이스라엘의 절기는 일곱으로 되어 있다. 레위기 23장 6-8절에서 무교절에 대한 설명에서 7이 등장한다. 히브리서 4장 4절에서는 『제칠일에 관하여는 어딘가에 이렇게 일렀으되 하나님은 제칠일에 그의 모든 일을 쉬셨다 하였으』칠   년째   되는   해는   땅에   안식을   주지   않으면   안됐다.   " 그러나   일곱째   해는   안식년으로,   땅을   위한   안식의   해,   곧   주님의   안식년이다.   너희는   밭에   씨를   뿌려서도   안   되고   포도원을   가꾸어서도   안   된다"(레위   25,4).   따라서   칠   년마다   농사짓던   밭을   묵히는   규칙이   있었다. 성전의 기물에서도 일곱이라는 숫자가 등장한다. 일곱 등잔대 등이다.   요한계시록 1장 4절에서『이와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   보좌는 성전에 있다. 요한계시록 4장 5절에서 『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우렛소리가 ...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갈라디아서 6장 1-3절『(에안)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파랍토마티)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프뉴마티)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너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너희가 짐(바레)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아나플레로세테) 만일 누가 아무 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라』 에안 (ἐὰν )은 쉽게 일어날 가능성은 없지만, 만일이라는 단어다. 파랍토마티 (παραπτώματι )는 파랍(옆에서)토마티(실족하다)는 하나님 옆에 있다가 순간적으로 실족하는 것을 의미한다. 성도가 실족하는 의미는 하나님께 공손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상황을 의미한다. 마귀의 미혹을 받아서 순간 하나님을 신뢰하는 마음에 문제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프뉴마티를 심령으로 번역했는데, 심령은 마음과 영이 결합된 말이다. 그런데, 프뉴마티는 영을 의미한다. 그래서 그러한 자가 있을 때는 영으로 도와주라는 것이다. 같은 성령 안에서 문제를 서로 나누고 도와주라는 것이다. 그리고 도와주는 자신도 그런 마귀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하라는 것이다. 바레는 무거운 짐을 지는 그런 짐이 아니라, 성도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힘든 상황을 의미한다. 성도간의 교제를 통하여 누군가 이런 어려운 상황에 있을 때, 짐을 서로 지라는 것이다. 하나님께 함께 나아가라는 것이다. 아나플레로세테는 온전히 이르게 된다는 의미로서, 성령 충만한 상태로 되는 것이다. 성령충만의 상태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옛사람이 죽고, 새피조물로 다시 태어나고, 그래서 성령세례를 받는다. 성령세례를 받은 후에도 말씀을 전하기 위하여 계속 하나님으로부터 성령의 능력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거듭나지도 않으면서, 자신이 성령 충만하다고 여기는 교역자, 장로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는 스스로 속이는 자가 된다. 자신을 속이는 자는 자기가 주인이면서, 호 로고스가 주인이라고 자기위선에 빠진 ...

문답 174-175

  174 문:   이 일은 일 주일 간에 한 번만 행할 의무가 있는 것인가? 답:   아니다.   이것은 모든 날 끊임없이 행해야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그 일을 시작했기 때문에 전 생애에 걸쳐서 계속 행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율법의 적용에서 벗어나게 해주셨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율법을 지켜야 할 의무는 없어진 것이다. 다만 성령의 법에 따라 성령이 인도하시는 대로 행하면 될 것이다.   175 문:   그러면 왜 그것을 구체적으로 나타내는데 어떤 일정한 날을 설정한 것인가? 답:   상징은 사실과 전적으로 같을 필요는 없다.   양자 사이에는 어떤 유사한 점만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구약시대는 일정한 날을 정해서 날에 축복해 주신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들은 모든 날에 안식이 없기 때문에, 특정한 날을 통해서 구원받아야 할 존재임을 알려주시는 것이다. 창세기   2 장   2 절에서『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께서 지으시던 일이 바로 하나님 나라와 물질세계에 하나님의 군대를 재편성 완료하셨다는 것이다.   창세기   2 장   3 절에서『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창조하시며,   만드시던 일이 바로 하나님 나라에서 천사들을 재편성하시는 것이다.   자기 지위를 지키지 못한 천사들은 그 옷을 벗기고,   흙속에 넣어서 사람이 되게 하셨는데,   이 사람이 땅의 군대가 되는 것이다.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Thus the heavens and the earth were finished, and all the host of them.   라는 말은 하늘...

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열매

  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열매 갈라디아서 5장 13-15절『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로고)에서 이루어졌나니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자유는 율법주의의 멍애로부터 자유다. 율법주의로부터 자유함을 입었으니, 내 마음대로 살아도 된다는 그런 것이 아니라, 율법의 조문에 얽매이지 말고 율법 속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 하라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영을 살리는데 있다. 영을 살리는 아가페를 하라는 것이다. 아가페와 영을 살리는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떠난 자의 죽었던 영을 살리는 것에 있는 것이다. 육체 속의 죽었던 심령이 깨어나면 그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된다. 여기에서 말하는 율법은 율법주의가 아니라, 율법 속에 담긴 사랑(아가페)의 의미를 말하는 것이다. 네 자신과 같이 하라는 것은 율법 속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그로 인해서 죽었던 심령 가운데 영이 살아나 호 로고스를 영접한 것처럼, 너도 다른 이에게 그렇게 전하라는 것이다. 율법에는 613개의 조항이 있지만, 하나의 말씀 즉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에서 율법은 복음으로 완성된다는 것이다. 그것을 모르면 조항에 메달리는 율법주의가 되는 것이다. 갈라디아 교회에서 복음과 율법주의가 섞여 서로 논쟁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서로 논쟁을 하다보면 모두가 율법주의 신앙으로 변질될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갈라디아서 5장 16-18절『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페리파테이테)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에피뒤메이)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 페리파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