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아뢰라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아뢰라   빌립보서 4 장 1-2 절『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 ( 스테파노스 ) 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여기서도 그리스도 안에서 라는 말이 있다 . 그리스도 안에서 굳게 서라는 것이다 . 스테케테는 굳게 서라는 의미다 . 면류관은 왕이 쓰는 왕관과 승리하는 자가 쓰는 월계관이 있다 . 스테파노스 (στ έ φαν ός ) 는 월계관이다 . 유오디아와 순두게가 서로 다툼이 있었다 .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고 말했다 . 그리스도 안에서 호 로고스에게 여쭈어보고 복음의 사역을 하라고 했다 .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성도의 심령 속에 임재하신 호 로고스에게 말씀을 여쭈어보고 듣는 것을 의미한다 . 같은 마음은 복음의 사역을 의미한다 . 빌립보서 4 장 3 절『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여인들을 돕고 ( 쉴람바누 )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쉴람바누 (συλλαμβ ά νου) 는 함께 받아드리는 것을 의미한다 . 바울이 빌립보 교회의 지도자에게 두 여인을 함께 받아드려라 라고 말을 한다 . 빌립보 교회는 바울의 동역자들이 많이 있었다 . 바울은 자기의 동역자를 도우라고 말한다 .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로서 복음의 사역을 하는 자들을 의미한다 . 복음의 사역을 하는 자들은 직접 대면하여 사역하는 자 뿐만 아니라 , 사역을 돕는 자도 포함된다 . 생명책에 대해서는 요한계시록에서 언급된다 . 요한계시록 20 장 13-15 절『 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

문답 249-251

  249 문: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어주실 지의 여부에 대해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 기도의 응답을 의심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가? 답:   그들의 기도는 아무런 약속도 소유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매우 무익한 것이 된다.   그 이유는 우리가 믿고 구하면 받는다고 말씀하기 때문이다. 『이른   아침에   성으로   들어오실   때에   시장하신지라   길   가에서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리로   가사   잎사귀   밖에   아무   것도   찾지   못하시고   나무에게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무화과나무가   곧   마른지라   제자들이   보고   이상히   여겨   이르되   무화과나무가   어찌하여   곧   말랐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   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져지라   하여도   될   것이요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서 3장 13절『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클레세오스)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바울은 부활의 능력에 붙잡혔지만, 아직 붙잡히지 않았다고 겸손히 말하고 있다. 그래서 이전의 것은 잊어버리고 다시 부활을 붙잡으려고 달려간다고 말을 한다. 성도 역시 현재적 부활이 이루어지더라도, 바울과 같이 부활을 향해서 달려가는 마음으로 살아라는 것이다. 푯대가 부활로 나아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이다.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는 자는 먼저 그리스도 안에서 나아가야 한다.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는 자는 자기를 부인하고 그리스도가 주인이 되는 삶이다. 클레세오스 (κλήσεως) 는 영어의 calling이다. 하나님이 calling하는 것은 아들이 되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성도를 아들로 부르고 있는 것이다. 이게 상이라는 것이다. 빌립보서 3장 15-16절『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텔레이오이)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만일 어떤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스토이케인) ( )』 텔레이오이 (τέλειοι )는 3장 14절에서 말하는 것과 같은 일이 이루어진 사람을 의미한다. 즉 부활에 이르러 아들이 되는 자를 의미하는 것이다. 성도가 어느 단계에 이르렀던지, 부활에 이르도록 아들이 되는 자가 되라는 것이다. 성도는 어느 단계에 있던지 푯대를 향하여 날마다 걸어가야만 한다. 스토이케인 (στοιχεῖν) 은 걸어가다라는 의미다. 이것은 신학에서 말하는 성화와는 다른 개념인 것이다. 어떤 사본(스테파누스)에는 뒷 부분에 κανονι το αυτο φρονειν(같은 마음의 지배를 받아)가 있다. 빌립보서 3장 17-18절『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그리고 너희가 우리를 본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