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베드로가 사도행전 2장 36절에서『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라고 설교하니까 유대인들이 마음에 찔림이 있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주와 그리스도이시다. 예수가 주가 될 때 그 분은 우리에게 그리스도가 된다는 말이다. 예수님이 주가 되는 것은 예수님이 우리의 주인이라는 말이고 우리가 참 회개가 있을 때 이렇게 된다는 말이다. 그럴 때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연합되어서 믿음으로 인하여 죄사함을 얻게되는 것이다. 오늘날에는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고 가르친다. 예수님이 주가 되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다. 예수가 주가 된다는 것은 우리가 스스로 주인됨을 포기한다는 말이다. 이것이 구원이다. 내 마음대로 사는 것이 바로 내가 주인이라는 말이다. 예수 믿는다고 외쳐도 구원이 아니라는 말이다.

삼년 동안 집과 직업을 버리고 베드로가 예수를 따랐다. 베드로는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라는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 삼년 동안 의심한 적이 없다. 모든 것을 다 걸 수 있었다. 기적을 보고 말씀을 듣고 삼년을 함께 지냈는데, 예수님이 말씀하신 단 한 가지가 이해가지 않는 것이다.『나는 이 땅에 죽으러 왔다』는 말씀이다.『나는 죽었다가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리라』이것을 이해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예수님께 직접 들었던 사람도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은 다 믿는다고 하지만 가짜일 가능성이 높다. 가짜 신앙인은 교회생활은 열심히 할지 몰라도 내 안에 예수가 없다면 가짜 신앙인이라는 말이다. 입으로 성경 귀절을 외울 수는 있지만 내 안에 예수가 없다면 구원은 없다. 부활하신 예수가 우리 안에 있다면 어떤 경우라도 절망은 없다. 정말로 예수가 우리 안에 있는지 확인해 보아야 한다. 우리에게 절망이 올 때 알 수 있게 된다. 예수가 없으면 구원은 없는 것이다.

성경은『가서 예수를 전하라』는 것이다.『모든 사람을 가르쳐서 지키게 하라』는 말씀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조건은 회개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하는 구원의 조건은 제자가 되라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에서 칭의와 성화교리를 가르치지만 성화가 안되는 것은 원천적으로 칭의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칭의가 따로 있고 성화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우리에게 생명력이 없다면 구원에 대해서 남에게 전달할 수 없다. 구원의 조건은 변하지 않았다. 회개하여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각각 세례를 받고 그러면 죄사함에 이르게 된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내가 죄인임을 인정하고 예수님이 피흘려서 죽었는데, 그 피로만 죄가 용서를 받는다는 것이다. 이것을 믿으면 세례를 받는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회개하여 세례를 받아야 죄사함을 받는다.

마귀가 세례를 바꿔놓았다.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지 않으면 아무도 구원받지 못한다. 세례가 물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의식이 세례가 아닌 것이다. 세례는 내가 예수와 함께 죽는 것이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의 우편 강도는 십자가 위에서 회개와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자신이 죽는 일이 동시에 다 일어난 인물이다. 세례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것이다. 이것을 바울이 로마서 6장 3-4절에서『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세례는 내가 받겠다고 해서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와 함께 죽는 것이다. 내가 죽기로 결정했다가 아니라 예수님의 죽으심과 연합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죄인들의 손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셨다. 십자가는 타살이다. 세례는 우리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회개한 자에게 주님이 허락하시는 것이다. 회개없는 세례는 불법이고 거짓말이다. 회개없는 세례는 존재하지 않는다. 마귀가 오늘날 필요한 유일한 말, 회개를 막아버렸다. 또한 회개의 본질을 변질시켜 버렸다.

할례의 경우도 구약성경에 태어난지 8일 만에 할례를 행하라고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는데, 이 할례가 신약성경 골로새서에서 『손으로 하지 않는 할례를 받았으니 곧 죄의 몸을 벗는 것이요 이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그리고 세례를 설명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회개하지 않은채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고 생각한다. 그 믿음은 가짜다. 사도행전 3장 19절에서『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회개하고 돌이키면 죄없이 함을 받는다고 했다. 그러면 성령받는 날이 이른다고 한다.

누가복음 22장 32-33절에서『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그가 말하되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 데에도 가기를 각오하였나이다』여기에서 『돌이킨 후에』라는 말이 있다. 예수님을 세번 부인하기 전에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처음 하신 말씀이다.『돌이킨 후에』라는 말과『회개하고 돌이켜』사도행전과 누가복음은 누가가 기록한 성경인데 여기에서『돌이켜』라는 말의 영어 말은 be converted 라는 뜻이다. 이것은 수동태의『거듭난다』는 말이다. 회개하야 거듭난다는 말이다. 회개하지 않고 믿음으로만 거듭난다는 말은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거듭나는 것은 주님이 주시는 선물이다. 우리 스스로 적극적인 사고방식으로 거듭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거듭나는 것이 바로 세례를 가리킨다.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다시 사는 것이다. 우리가 예수와 연합하여 죽는 것은 계시가 필요하다. 『나는 2000년 전에 예수와 죽었다』라고 매일 암송하고 외운다고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이 믿음이 와야 한다. 베드로가 삼년 동안 예수님을 따랐는데,『네가 돌이킨 후 네 형제를 굳게하라 』라고 했다. 돌이킨 곳은 바로 십자가라는 말이다. 십자가의 죽음으로 돌이켜야 하는데,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연합됨이 없이 믿는 모든 것은 여전히 구약시대에 살고 있는 셈이다. 왜냐하면 제물이 드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로마서 12장 1절에서『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베드로가 주님을 부인하지 않겠다고 말한 것은 각오일 뿐 믿음은 아닌 것이다. 믿음은 믿음의 대상이신 주님으로 부터 와야 되는 것이다.대부분의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사실상 자신의 각오를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예수가 주인이 아닌 자기가 주인행세를 하고 있는 자들이 하는 각오를 말하는 것이다. 이런 자들은 육적인 그리스도인들이다. 즉 이스마엘과 같은 자다. 이런 자들과 구별되어야 한다. 이들과 구별되는 삶을 살아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 회개하지 않은 자는 온갖 체험을 다하고 성경을 많이 알아도 자기에게 해당되는 말만 모르고 있는 자이다. 이것이 바로 소경이라는 말이다.

마가복음 4장 12절에서『이는 그들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돌이켜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시고』라고 말하여도 깨닫지 못하는 이유는 내가 죽을 수 밖에 없는 전적 타락의 존재라는 것을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육적인 것이 죽어야 한다는 말이다. 회개하지 않으면 이 성경 구절이 말하는 의미도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회개하지 않으면 구원의 기회를 주시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은 성경의 지식으로 판단하지 않으시고 우리의 열매로 판단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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