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없이 함을 받아라
사도행전 3장 19절『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사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에 주 앞으로 부터 이를 것이요』베드로가 오순절이 지난지 얼마 안되어서 말하고 있다.『회개하고 돌이켜』라는 말을 주목해야 한다. 회개하라는 능동적인 말이지만『돌이켜』는 수동적인 말이다. 회개하면 우리가 돌이켜진다는 말이다. 이『돌이켜』가 바로 거듭난다는 뜻이다. 이『돌이켜』라는 말이 바로 2장 38절에서 말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 것이다. 죄사함을 받으면 유쾌하게 되는 날, 즉 성령이 역사하시는 것을 말한다. 이 성령은 방언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요한복음에서 말하는 우리의 내적인 역사를 말한다. 즉 거듭나야지만 우리 안에 성령으로 역사하신다. 거듭나지 못한 믿음은 환경은 변화시킬 수 있으나 내적 변화는 일어나지 못한다. 성령이 역사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회개해야만 한다. 회개할 때 우리가 거듭나게 된다. 그래서 거듭나는 것을 세례라고 말한다. 2장 38절에서『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로마서 6장 1-3절에서『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세례는 주님의 것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로마서 10장에서『누구든지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와 마태복음에서『주여 주여 하는 자 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와 서로 상치되는 것 같다. 예수님은 『그 날에 많은 사람들이 내 이름으로 예언하며 귀신을 쫒아내며 많은 능력을 행하고, 주여 주여』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능력을 경험한 자들이다. 그런데도 예수님은『나는 너를 모른다 나를 떠나라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라고 말할 것이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권능을 행하는데도 회개하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한다는 말이다.『누구든지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가족이 된 자를 말한다. 가족이 되지 않으면서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불법이라는 말이다.
로마서 6장 4절에『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세례는 죽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세례는 살아나는 것이 먼저가 아니라 먼저 죽어야 살아나는 것이다. 이것이 거듭남이다. 그렇지 못한 세례는 단지 형식에 불과하다. 세례 형식이 구원하지 못한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연합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함께 장사지낸바 되어야 한다.
요한1서 1장 9절에 있는『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를 말한다. 연합되지 않고 죄를 고백만 한다고 죄가 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연합되어 함께 장사지낸바 되어야 한다. 이 때 주어는 우리다. 그리고 하나님이 예수와 장사된 우리를 일으킨다는 뜻이다. 이 때 주어는 하나님이시다. 그렇게 될 때 부모로 부터 받지 아니한 새 생명이 들어오게 된다. 아브라함에게 자기 힘으로 낳을 수 없는 생명 이삭을 얻은 때가 거듭날 때였다.
처음 교회 나온 사람은 허물과 죄로 죽어있는데, 회개없이 예수를 영접하면 거듭날 수 있는가? 대개 믿으라고 말한다. 이스마엘처럼 기도하면 응답될 수 있는 믿음이다. 풍랑을 가라앉혀 줄 수 있는 믿음은 될지언정 그러나 변화되지 않는 믿음이다. 이런 믿음은 죄에 넘어질 수 밖에 없는 믿음이다. 그래서 새 생명이 없으므로 날마다 교회에서 죄를 반성하고 있는 것을 본다. 예수님이 주인이 아닌 것이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으로 부터 할례를 명 받았을 때 한 그 할례는 육신을 베어버리는 것이다. 그런 거듭남이 없이 죄만 반성한다고 구원받을 수 있는 믿음을 얻겠는가?『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없이 함을 받으라』를 생각하면서, 육적인 것이 죽는 것만이 죄없이 함을 얻는 것이다. 죄를 반성해서 죄를 사하심을 얻는 것이 아니라, 죄를 일으키는 육적인 것을 죽여야만 죄를 사하심을 얻는 것이다. 죄를 반성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러나 죄의 원흉인 육적인 것을 죽이는 것은 엄청난 고통이 따른다. 사람들은 세상의 탐욕을 포기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예수와 연합되는 육적 죽음 앞에서 머뭇거려지는 것이다.
『예수를 주라 시인하면 성령이 우리의 마음 속에 들어왔다』고 믿는 많은 사람들은 예수와 연합되는 죽음이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사람들은 쉬운 믿음을 얻으려고 하고, 사랑의 하나님을 생각한다. 그러나 예수님은『좁은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써라』고 말씀하셨다.『그 날에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적음이라』적다는 것을 인정하셨다. 들어가기를 구하는 자는 구원받고는 싶은 자다.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들어가지 못하는 자는 사랑의 주님 만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히브리서 13장 5절에서 나오는『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에서 『결코 버리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영원한 언약을 하신 때는 할례를 행했을 때다. 그 전에 한 언약은 아브라함이 참여하지 못한 언약이었다. 아브라함이 육적으로 죽지 않고 살아 있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연합되어서 함께 장사지낸바 되어야 한다. 옛생명이 죽어야만 새생명으로 태어날 수 있다. 이것이 회개의 완성이다. 회개의 완성이 거듭남이다. 그러면 죄사함을 받는다.
교회에서 성찬을 할 때 떡부터 찢어 먹는다. 그 다음에 피를 나눈다. 우리가 예수님의 찢겨진 살을 먹으므로 주님과 한 몸이 되는 것이다. 십자가에서 죽은 몸이 되는 것이다. 떡은 죽임 당한 어린양의 살이다. 떡을 먹는 것은 죽으신 예수님과 연합되는 것이며, 나의 주인이 예수님으로 바뀌는 것이다. 회개는 주인이 바뀌는 것이다. 내가 주인이었다가 주인이 바뀌었는데, 내 마음대로 산다면 하나님의 진노를 쌓는 것이다. 주님께 하지않고, 사람들에게 몸을 불사르는데 내어 줄지라도 그것은 하나님께 죄라는 말이다. 먼저가 주님이다.『하나님을 사랑하라』가 먼저이고 그 다음이『이웃을 사랑하라』라고 한다. 회개는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육적인 것이 예수와 함께 죽기를 바라신다. 왜냐하면 육적인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고 사단의 유혹에 넘어져,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욕망이 그 속에 자리잡고 있는 자기 우상이기 때문이다. 내가 바로 우상인 셈이다. 내가 바로 우상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인간들을 율법 아래 가두셨다. 율법을 통해서 우상을 깨닫게 해주기 위해서! 그 우상이 영접기도를 한다고 구원받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오늘날 영접기도는 가짜다. 성경 전체는『육적인 것을 죽이고 회개하라』는 것이다.
잔치에 초청받아도 그것이 구원이 아니라 결혼식에 합당한 예복이 준비되어야 한다. 이 예복은 평상시에 쓰지 않지만 하늘에 합당한 옷이다. 회개한 자만이 입을 수 있는 예복을 준비해야만 한다. 회개의 기준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다. 하나님에 합당한 옷을 입어야만 한다. 주님은『예복이 없는 자를 저 손과 발을 결박하여 어두움에 던져라』고 말씀하셨다. 왜냐하면 어두움의 자녀이기 때문이다. 부름 받은 초청장이 구원의 증거는 아니다. 유다서 1장 5절에서『너희가 본래 모든 사실을 알고 있으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고자 하노라 주께서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시고 후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멸하셨으며』그리고 사도행전 17장 30-31절에서『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라고 말씀하신 심판할 날을 다시 생각해야만 한다. 하나님은 인간들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 만을 사랑하신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에서 연합된 자는 예수 속에 들어있으므로 그도 사랑하신다. 그것이 하나님의 공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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