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목표는 성공이 아니라 변화다
솔로몬은 왕의 아들로 태어나서 성공과 행복이 보장되었으며, 명예, 부, 권력, 지식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는 모든 것을 가졌지만 전도서를 쓰게 되었다. 전도서 1장 2절에서『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고 했다. 그리고 1장 7절에서『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강물은 어느 곳으로 흐르든지 그리로 연하여 흐르느니라』이 말은 자기의 고백이다. 그는 명예, 부, 권력, 지식 모든 것을 자기를 채우는데 사용했다. 그런데 그의 가슴 속에 들어온 것은 채워지지 않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주신 좋은 것 때문에 하나님을 잊어버린다. 이것이 인간의 죄성이다.
우상은 나쁜 것은 우상이 되는 것이 아니라 좋은 것이 우상이 된다. 대부분 부모에게는 자녀가 우상이 된다. 어떤 사람에게는 성공이 우상이 된다. 성공을 위해 가정을 돌보지 않고 모든 것을 희생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주님보다 높아진 모든 것은 우상이 된다. 우상숭배가 헛되다는 것을 알지만, 많은 사람들이 성공을 추구하고 행복을 추구하면서 그게 주님보다 높아져 우상이 되면서, 그것이 사람들을 허망하게 한다는 사실을 모른다. 베드로전서에서 베드로가 이사야서 40장을 인용하는데, 세례요한이 광야에서 외친 내용이다.『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는데, 사람의 성공과 행복이 그것과 같다』는 말이다. 그것이 사람들을 허무하게 만든다는 말이다.
소수의 사람들은 피라미드의 꼭지점처럼 성공이건 행복이건 피라미드 위에 올라가서 행복할 수 있다. 그 밑에서 올라가지 못한 많은 사람들은 그것이 슬픔과 좌절이 된다. 서로 다 함께 행복이 아닌 것이다. 대개 다른 사람의 슬픔과 좌절이 나의 행복이 되는 경우를 많이 보지만 그런 행복과 성공은 오래가지 못한다. 그러나 천국에는 남을 기쁘게 하는 것이 나의 기쁨이 되고, 내가 기쁜 것이 남들에게도 기쁨이 되는 것이 천국의 것이다. 천국의 것은 영원하다. 그런데 그런게 이 세상에는 없다. 남들과 경쟁해서 이겨야만 기쁨이 오는 것이다.
성경에는 미리 알려주신다. 성공한 사람을 부러워하고, 갖지 못하는 사람은 아파하는데, 죽음이 다가오면 그런 것들은 허무한 생각이 든다. 물론 반대의 사람들, 물질이 풍족하고 행복한 모습으로 있지만 그들도 역시 죽음이 다가오면 허무해진다. 그래도 사람들은『일단 성공을 해 보고 말겠다. 그런 다음에 허무라는 것을 느껴보겠다』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솔로몬이 자기는 다 경험해 보았기 때문에 허무하다고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그것을 잡아 보았더니,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죽음이 다가왔고 그래서 허무하다는 것이다. 1장 14절에서『내가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보았노라 보라 모두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고 했다. 『바람』이라는 표현은 히브리어로 로아크라고 하는데, 그것의 뜻은 wind와 spirit이라는 두가지 뜻이 있다. 우리말 성경은 바람으로 번역되어『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그런데 사실은『영을 괴롭게 하는 것』이라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신 영이 우리 안에 있는데, 이 영은 하나님의 것으로 채워져야 하는데, 다른 것으로 채우려고 하는 순간 영을 괴롭게 한다는 말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 땅의 것을 먼저 채우려고 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기 위해서 이 땅에서의 성공, 행복을 위해서 먼저 채워지기를 기도하는 것이다. 솔로몬이 그런 사람이었던 것이다. 이 땅의 성공, 행복을 너무 많이 가졌던 자였다. 솔로몬은 그 행복, 행복을 지키려고 하다가 그것을 주신 주님을 잊어버렸다. 하나님의 형상인 영에 하나님이 주시는 것보다 이 세상의 것이 채워져 괴롭게 된 것이다.
꽃은 아무리 아름답게 보여도 태양을 잃는 순간, 생기를 잃어버린다. 이사야서 40장 7절에서『풀은 마르고 꽃이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여기에서 기운이라고 표현한 것도 히브리어 로아크다. 여호와의 기운이라고 표현하기 보다 『하나님의 영이 그 위에 붊이라』라고 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많은 교회에서는 하나님의 영이 우리에게 은사를 주고 기쁨을 주는 역할 만을 가르친다. 그러나 요한복음에서는 보혜사 성령이 우리에게 오면,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우리를 책망한다고 했다. 왜냐하면 죄와 의와 심판이 어떤 것인지 모르기 때문에 책망하고 가르쳐 주신다는 말이다.
죄는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에 짓는 것이 죄가 아니라,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서 하나님을 떠난 것이 죄고, 예수님과 연합되지 않는 것이 죄라는 말이다. 십자가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야 한다고 하나님께서 성경에 말씀하셨는데, 그것을 믿지 않는 것이 죄라는 말이다. 그리고 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의 제물로 죽으셨다가 제사장으로서 하나님께로 가는 것이 의라는 말이다. 구약시대 제사장은 짐승의 피를 바른 채, 백성의 모든 죄를 대속받기 위하여 지성소로 들어간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께로 가신 것은 바로 그와 연합된 자의 의를 위하신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신다. 심판에 대하여는 이 세상에서 사단(마귀)을 심판하심이라. 예수와 연합되어 있는 자에게 사단(마귀)이 이미 심판 받았음을 알려주신다.
성령은 교회에 슬픔과 고통 때문에 나온 자를 위로하기 위해 계시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인간적인 생각에 불과하다. 하나님의 영은 자기의 죄를 회개하고 죽을 수 밖에 없는 자기의 죄 때문에 슬퍼하고 애통하는 사람을 위로하신다. 자기의 죄를 애통하지 않는 자는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책망하실 것이다. 그리고『하나님의 영이 그 위에 붊이라』하나님의 영이 이 모든 것을 계시해 주시는 것이다.
대부분 오늘날의 교회는『하나님은 사랑이시라』를 강조한다. 이 말은 듣는 자에게 결국 기쁘게 하지 못한다. 만일 최초의 인간에게『하나님은 사랑이시라』라고 말한다면,『내가 더 잘 알아 에덴동산이 나에게 하나님의 사랑이었어, 그런데 나는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는 동안에 난 하나님의 약속을 어기고 불순종했어』라고 말할 것이다. 이게 성경에서 말하는 인간의 모습이다. 인간은 하나님이 사랑해 주어도 스스로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서 하나님을 버린다는 말이다. 탕자의 비유에서도 아버지가 사랑이다. 아버지가 아들이 해 달라는 대로 다 해 준다. 그 탕자는 아버지가 싫은 것이다. 아버지가 주는 소유가 좋은 것이다. 그러면 행복해지는 것인가?
인간은 주님과 주님이 주시는 것을 동시에 붙잡을 수 없다. 예를 들어 할머니가 아이에게 장난감을 사 주었다면, 장난감을 사준 할머니는 쳐다보지도 않고, 그 아이는 장난감 만을 좋아하고 가지고 놀 것이다. 장난감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서 다른 것으로 바뀌어 간다. 어떤 사람은 결혼의 우상으로, 어떤 사람은 행복의 우상으로, 어떤 사람은 물질과 성공의 우상으로 죽을 때까지 바뀌어 나가는 것이다.
성경은『먼저 주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사느니라』라고 하신다. 주님이 주신 것이 먼저가 아니라 주님이 먼저라는 말이다. 육신이 배가 고플 때, 우리의 영도 하나님의 말씀이 고파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마태복음 5장 3절에서『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이 말씀을 예수님이 말씀하실 때가 이스라엘은 로마제국의 식민지였다. 갈릴리는 로마제국의 최전방이었다. 갈릴리의 사람들은 세금을 바쳐서 로마 군인들을 먹여 살려야 했는데, 세금을 내고 나면 먹을 것이 부족했다. 그 때 메시야,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왔는데, 천사가 말하기를『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그 뜻은 자기 백성을 각자의 죄로부터 구원하려 하심이었다. 로마시대의 이스라엘처럼 오늘날을 사는 우리에게도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절망과 후회와 말 못할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그런 가운데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는 그 문제를 해결하러 우리에게 오신 것이 아니라 그 문제 속에서 우리를 죄로 부터 건져주신다는 말이다. 어떤 어려움과 좌절과 실패 속에서도 우리가 하나님을 모르게 만든 우리의 죄로 부터 우리가 건짐을 받는다면 우리가 겪는 모든 고통, 실패, 죄절, 아픔, 후회 이런 것들이 다 하나님 나라의 복으로 바뀔 것이다. 이런 것을 있는 그대로 믿으면 신령한 체험을 하게 될 것이다. 체험을 해서 믿는 것이 아니라 믿으면 체험을 하게된다.
솔로몬이 말한 것을 우리가 경험한 후에 알려고 하면 이미 늦게된다. 성경은『경험해서 믿으라』가 아니라『솔로몬이 말한 성경의 말씀을 받아 들여라』고 말한다. 이 세상에서 성공하지 못한 인생도 승리할 수 있다. 죽음 앞에 왔을 때,『내가 한 모든 일이 영원한 천국에서 통한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절대 후회가 없는 것이다. 시편에서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것들을 많이 가진 자들도 결국에는 허무하다고 말하고 있다. 주님이 내게 주시는 말씀을 절대 순종하는 것만이 살 길이다. 그러면 우리는 썩지 않는 것을 받게 될 것이다. 천국에는 보석으로만 되어있다고 한다. 그 말은 이 땅을 살면서 내적으로 변화받은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성경에서 변화받은 사람들은 보석처럼 빛난다. 인생의 목표는 성공이 아니라 변화라는 말이다.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