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되나니


로마서 8장 5-9절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인간의 생각은 육신의 생각과 영의 생각 두 종류다. 교회로 인도받은 사람들은 믿음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하는 가운데 온 경우가 많다. 복음을 듣고 와야하는데, 그렇지 못하므로 교회에서 복음을 말해준다.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신앙관이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회개가 무엇인가를 정확하게 배웠다면 영의 생각에 대해서 잘 이해할 것이다. 그리고 분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면 아무리 오래 교회를 다녔더라도 성경 지식은 많이 있지만 육의 생각에 머물게 된다. 육의 생각에 머무는 자는 환란이 오면 불에 타버린다.
그리스도 위에 세우는데, 풀이나 나무나 지푸라기로 살면 불에 타버리고 만다. 금이나 은이나 보석으로 세운 것은 불에 더 빛날 것이다. 아무리 인간의 노력으로 세운다고 해도 그것은 풀이나 나무와 같은 것이다.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 되기 위해서는 자기를 부인하고 주님으로서만 세워질 때 되는 것이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고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라고 했다. 주님은 가나안 땅을 약속했다. 광야는 약속의 땅이 아니다. 모든 약속은 가나안 땅에서만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말씀이 심겨지고 적용되며, 열매맺는다. 광야에는 물도 없고 파종할 곳이 없다.
어린양을 의지한다는 사람들도 두 종류다. 평생을 광야에서 살다가 죽느냐, 아니면 옛사람은 죽고 새사람으로 태어나느냐이다. 회개에 이르러서, 가정과 일터에서『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할 수 있느니라』라고 믿고 순종하는 사람 만이 구원에 이른다. 사람들이『구원을 얻는 이가 적으니이까』라고 예수께 물었다. 예수께서『부르심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하심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라고 하셨다. 회개하지 않는 자는 구원의 문을 찾지 않는다. 예수님이『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써라』고 하셨다.『육신의 생각은 넓은 문이라』는 말이다. 마태복음에는『넓은 문으로 가는 자는 많다』고 했다. 육신의 생각대로 사는 자가 많고, 영의 생각대로 사는 자는 적다는 말이다. 누가복음에는『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써라 그 날에 들어가기를 힘써도 들어가지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라고 했다. 좁은 문도 들어가기가 쉽지 않다는 말이다.
그 날에 들어가기를 구하는 자는 구원의 문을 발견한 자다. 구원의 문을 찾았다고 들어가는 것도 아니라는 말이다. 회개도 하지 않은채 믿기만 하기 때문이다. 회개하지 않으면 영의 생각이 아니라 육의 생각에 사로잡힌다. 왜냐하면 회개가 바로 육의 생각을 거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많은 교회 사람들은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에 육의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믿음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 노력하고, 체험하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믿음의 많고 적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육의 생각을 받아드리는가 아니면 거부하는가에 달려있는 것이다.
애굽으로 부터 나온 믿음이 가나안에 들어가는 믿음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주님은 가나안을 약속하셨다. 그러나 열정탐꾼은 육의 생각을 받아드렸다. 그래서 애굽을 나온 모든 백성은 열정탐꾼의 말을 믿었다.『가나안에 들어가면 죽는다』는 육의 생각을 받아드린 것이다. 많은 교회 사람들은 육의 생각으로 사는지 영의 생각대로 사는지 반드시 살펴 보아야만 한다. 영의 생각대로 산다면 구별된 거룩한 삶이 될 것이다. 육의 생각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으므로 구원받을 수 없다. 육의 생각은 세상에서는 생명과 평안을 얻는다. 요한1서 2장 16절에서『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교회생활 잘하고 믿음이 반석 위에 있으면 주님이『이 세상의 것도 풍성히 주시리라』고 말하고, 또 그것을 받아드리는 사람이 있다면 다시 생각해야만 한다. 영의 생각은 아무리 세상 일이 잘된다고 하더라도 불안해진다. 영의 생각은 세상의 것으로 생명과 평안을 취하지 않기 때문이다. 영의 생각은 약속을 믿으므로 말미암아, 하늘의 것으로 생명과 평안을 누린다. 그래서 생명과 평안이 있다고 영의 생각이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교회에서도 세속화의 물결이 넘치는 곳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많은 교회에서도 세상적으로 잘되지 않으면 못견디기 때문이다. 주님이 사랑하는 자에게 욥처럼 고난을 주신다. 요셉처럼 어려움을 주신다.
『아브라함은 백세가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과 사라의 태가 죽은 것을 알고도』아브라함의 99세까지가 육신의 생각이다. 여호수아와 갈렙이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에 육의 생각으로는 도무지 믿을 수 없는 가나안 땅이었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영의 생각을 받아드린 것이다. 육의 생각으로는 여호수아와 갈렙이나 열정탐꾼 모두 같은 생각이었을 것이다. 차이는 자신을 신뢰하지 않고 주님의 약속을 신뢰하는가 아닌가의 차이다. 이게 영의 생각과 육의 생각과의 차이다.
회개는 육의 생각으로 비롯되는 자신을 신뢰하지 않는 것이다. 이 여호수아와 갈렙의 믿음이 아브라함의 백세 때의 믿음과 같은 것이다. 평생 주님의 말씀을 지식으로 쌓고, 경험하지만 영의 생각을 받아드리는데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교만해질 수 있다. 육의 생각과 영의 생각은 물과 기름이 하나가 될 수 없는 것처럼 하나가 될 수 없다. 육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 그런데 한 육체 속에서 두 생각이 공존하는 것이다. 육의 생각을 혼이라고 한다. 결국 영혼이라는 것은 영과 혼이 결합되어 하나가 된 것 처럼 보이나, 둘은 결합될 수 없는 것이다. 사실상 영이 죽었을 때는 혼이 주인노릇 했지만 하나님의 형상인 영이 살아났을 때는 혼을 죽여야만 하는 것이다. 영과 혼, 이 둘은 마치 결합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함께 할 수 없는 불구대천의 원수지간인 것이다. 왜냐하면 육의 생각인 혼을 지배하는 자는 마귀이기 때문이다. 마귀가 주인이다. 요한복음 8장 44절에서『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 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그래서 예수님이 마귀를 멸하러 오신 것이다. 요한1서 3장 8절에서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자기』라는 자아는 혼이다. 그래서『자기를 부인하라』는 말이다. 다시 살아난 영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므로 하나님이 주신 새로운 생명이다. 그래서『자기』라고 하지 않는다. 오직 십자가의 예수 안에 있는 자로서 주인이 예수가 되는 것이다. 영의 생각을 받아드리는 자는『자기를 부인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주인이 바뀌는 것이다. 육의 생각인 자기에서 영의 생각인 예수로 바뀐다. 그래서 영의 생각은 하나님의 약속 외에는 관심이 없는 것이다. 영의 생각을 가지는 자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완전히 순종하는 자이다. 믿고 순종하는 것은 그릇으로 비유된다. 그릇에 담는 것은 하나님 만이 하시는 것이다. 순종하지 못하는 자는 깨진 그릇과도 같다. 담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게 된다. 영의 생각을 하는 자는 주를 위해 살기 때문에 주로 인해서 항상 기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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