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갈라디아서 3장 29절『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예수님의 죽으심과 연합되어 세례를 받은 자는 예수님의 부활 생명으로 하나님이 다시 살려주신다. 이것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남이다.
인간은 모두 하나님이 보시기에 진노의 자녀다. 사단에게 속아서 모르고 살았다. 에덴동산을 창설하셨을 때는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지만 그 이후는 하나님 보시기에『사람들이 생각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하다』고 했다. 그래서 하나님이 진노하시는 것이다. 마지막 때는 『노아의 때와 롯의 때와 같다』고 했다.
인간들은 율법을 무시하므로 얼마나 큰 죄인인가를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인간들이 스스로 자각하는 죄가 있고, 하나님이 보여주시기 전에는 모르는 죄가 훨씬 더 많다. 그래서 하늘의 거룩한 빛이 비춰지면 사울과 같이 넘어지고 만다.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것이 은혜다. 다윗은 시편 19편 12절에서『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리요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라고 고백했다.
사람들에게 칭찬받고 선하게 보일지라도, 하나님없이 산다면 하나님께 악한 것이다. 에베소서 2장 1-3절에서 모든 자들은 하나님께 대하여『허물과 죄로 죽은 자들』이라고 했다. 하나님께서 이런 사실을 깨닫게 해 주시는 것이다. 노아 당시 120년 동안 사람들에게 알려주셨다. 그러나 가족 7명 외에는 깨닫지 못했다. 노아와 함께 살던 수많은 사람들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당대의 의인은 노아 밖에 없었다. 노아만 하나님과 동행했다. 하나님은 노아를 통하여 회개의 기회를 주신 것이다. 당시 아름다운 세상을 보고 세상을 멸하시려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한 것이다.
『본질상 진노의 자녀』라는 말은 심판받을 수 밖에 없는 그런 존재라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사실을 깨달을 수 있는가? 노아의 가족과 친척과 주변에서 노아를 잘 알고 있던 거의 대부분 사람들이 120년간 외친 노아의 말을 믿지 않았다. 오늘날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많은 교회에서 회개를 외치는 교회가 얼마나 되겠는가? 노아 당시 노아의 말을 받아드린 7명은 오늘날 그리스도로 옷 입은 자들이다. 왜냐하면 방주의 밖은 심판 당할 수 밖에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오늘날도 그리스도로 옷 입지 않은 자는 모두 심판 당하는 자들이 될 것이다. 그리스도로 옷 입는 자들은『자기』라는 옷을 벗어야만 가능하다.『하나님 저는 허물과 죄로 죽은 자가 맞습니다. 본질상 진노의 자녀가 맞습니다. 노아 당시 방주 밖에서 물 속에 잠겨야 할 자입니다』라고 깨닫는 자만『자기』라는 옷을 벗게 될 것이다.
『자기』라는 옷은『그리스도의 옷』을 입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그리스도의 것』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것이 되어야 그리스도에 속한 자가 된다. 그리스도에 속한 자는 헬라어로 크리스토스(Χριστός)다. 이런 자들이 약속을 유업으로 이을 자들이다. 로마서에서 말하는 믿음의 주인공은 아브라함이다. 갈라디아서에서는 주인공이 이삭이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후 25년만에 새생명을 얻게 된다. 그 때『내가 너와 더불어 영원한 언약을 세우겠다』고 하는 할례의 언약을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언약은 두번 있었다. 첫째는 아브람으로 하여금 동물을 쪼개어 두도록 하여, 불이 내려와 그 제물을 태워버렸다. 이 사건은 아브라함과의 맺어진 언약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방적인 약속을 하신 것이다. 이 놀라운 광경을 보고도 아브람은 사래의 말을 듣고도 이스마엘을 낳는다. 오늘날 교회에 초대되어 와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믿고 놀라운 체험을 해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일방적인 언약에 그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언약이 교회에 초대되어 온 자에게 언약으로 이루어지지 못하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
두번째 언약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씨를 주신다고 약속을 했다. 후손이라고 번역했는데, 헬라어로 씨(seed)다. 이게 이삭이다. 이삭 만이 유업을 이을 자다. 교회에 와서 약속의 씨를 유업으로 잇기 위해서는『그리스도의 것』이 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아브라함의 몸이 죽은 것 같이 되었을 때 약속의 씨를 받은 것 처럼,『자기』라는 육적 혼이 죽을 때 약속의 씨가 새생명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유업(inheritance)이라는 말은 기업이라고도 하는데, 이 기업은 하나님나라다. 성경을 통해서 이 세상에서의 하나님 나라는 영적 에덴동산과 가나안과 교회를 말한다. 첫사람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으로 부터 쫒겨났다. 천사가 불칼을 들고 지킨다. 에덴동산으로 다시 들어가기 위해서는『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욕망』이 불칼에 맞아 죽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나 노아의 가족 7명을 제외한 모든 인간이 다 진노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의 물 심판을 받았다.
가나안에 들어가는 자는 애굽에서 태어난 옛사람(이스마엘을 상징)은 다 죽고, 광야에서 태어난 새생명(이삭을 상징)만 들어가게 된다. 그래서 여호수아(예수를 상징)와 함께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교회에 들어온 성도는『자기』라는 옷을 벗어버리고, 그리스도로 옷 입는 자만이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다.『자기』라는 정체가 바로 약속으로 태어나지 않고, 육으로 비롯된 이스마엘이요 옛사람이다.
구원은 수평으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이 먼저다. 그 다음에 수직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에 이르는 자다. 수평적 믿음과 수직적 믿음이 만나야만 한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교회 사람들은 수평적 믿음도 없으면서『예수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서 구원받았다』고 스스로 생각한다. 수평적 믿음은 예수님이『자기를 부인하라』는 말씀에 순종하는 자다. 마치 비행기의 엔진이 앞으로 이동할 때 날개가 비행기를 위로 올리는 것이다. 믿는 자는『순종』으로 앞으로 나아가야만 한다. 오직 사람이 할 수 있는 길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 만이 살 길이다. 그 다음에 하나님이 위로 올려주실 것이다.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믿음을 보시고 하나님이 주시는 성령의 능력을 따라서 약속의 땅을 기업으로 주시는 것이다.
히브리인들이 애굽을 나오기 전날 어린양의 피를 칠하고 장자의 죽음으로부터 애굽을 벗어났다. 그러나 홍해바다를 건너야 하는 관문이 있었지만 홍해바다가 갈라지는 놀라운 경험으로 애굽의 군사들이 죽고, 홍해바다를 건너 광야에 이르게 된다. 하나님은 광야에서『유월절을 지키라』고 하셨다.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나게 하기 위해서였다. 히브리인들은 유월절을 지켰다. 그러나 히브리인들에게는 이것이 구원이 아니라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이 구원이다.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는 자들은 오직『가나안 땅을 주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에 순종하는 새생명들이었다. 정탐꾼 12명 중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10명의 정탐꾼과 애굽에서 살았던 모든 옛사람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았다.『가나안에 들어가면 죽는다』라고 외치고 통곡하며 울었다』본질상 진노의 자식에게는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도 믿을 수 있는 힘이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자기』가 주인이기 때문이다. 육의 마음을 가진『자기』는『가나안이 들어가면 죽는 곳』으로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영의 마음을 가진 자는 가나안이 하나님이 말씀하신 약속의 땅으로 보이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린양의 피만을 의지하여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어린양의 피는 애굽으로 나올 때 적용되는 말이다. 어린양의 피로 세상으로부터 빠져나오는 것이지만, 빠져나온다고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대하여, 율법에 대하여, 죄에 대하여 못 박히는 자들만 가나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세상에 대해서 죄에 대하여 못 박히지 않으면, 어린양의 피를 칠하지도, 홍해바다를 건너지도 않은 자라는 말이다. 말로는 믿는다고 하지만 세상에 대하여, 죄에 대하여, 율법에 대하여 살아서, 세상을 사랑하고, 사람을 정죄하고, 죄를 짓고 사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싶다. 그러면서 어린양의 피가 모든 것을 해결해 주는 것 처럼 알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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