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새생명 가운데 행하게 하려 함이라


로마서 6장 4절『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 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생명 가운데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로마서 6장은 세례다. 사도바울이 보낸 일곱개의 서신 중『성령 충만을 받으라』라고 말한 것은 에베소서 5장 뿐이다. 골로새서 5장에는『그리스도의 말씀이 풍성히 거하라』라고 하셨고, 모든 교회의 공통점은 세례가 무엇인지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우리가 죽을 때까지 필요한 것은 세례 안에 다 있다. 우리 각자의 문제는 가정과 일터에서 다 다르다. 그러나 답은 세례 안에 있다. 세례의 의미가 지식이 아니라 생명이 되어야만 한다.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에서 부활의 증인들과 부활의 원리를 설명했다. 그리고 스스로 부활의 주님을 만났다고 했다. 그렇게 때문에『나는 날마다 죽노라』라고 말했다. 세례는 어떤 죽음인가?『날마다 죽노라』와 세례의 죽음,『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었나니』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그는 세례에 대해서 말하면서『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라고 말한다. 이것이 세례다. 세례를 받지 않은 상태는 에베소서 2장 1절에서『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라고 했다. 그런데 구한말 성경에는『너희는 허물과 죄로 죽었었느니라』그래서 모든 사람들은 죄 안에서 죽어 있는 것이다. 『죽었다』는 상태가 2절에서『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쫒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자녀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허물과 죄로 죽은 것』은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르고 있는 말씀이다. 사탄은 분명히 존재한다. 사탄은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하고, 에덴동산에서 최초 인간을 범죄케 하였으며, 주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계속 인간을 범죄하게 만든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모르고 있다. 사탄은 거짓의 아비다. 속이는 자다. 그래서 예수님을 찾아온 유대인들이『하나님은 나의 아버지라』고 믿고 있었는데, 예수님은『너희 아비는 마귀니라』라고 말할 수 있는 상태가 존재하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 스스로 알 수 있는 것은 3절에서『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생각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 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진노의 자녀들이다. 이것을 세상 사람들이 모르고 있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 육체와 생각이 원하는 대로 행한다고 했다. 세상의 교육은『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을 말한다. 육체와 생각이 건강이라는 이름 하에 원하는 것을 하고 살아가고 있다. 하나님이 없이 사는 삶이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인 것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 만을 강조하고 있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하나님의 아들이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고, 인간들의 죄 때문에 죽으셨다. 그것이 사랑이다. 공의의 하나님은 진노하시는데, 예수님의 죽으심 때문에 진노를 넘어가 주시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죽음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회개와 세례가 필수적이다. 에베소서 2장 5절에서『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여기서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다. 그냥 예수를 믿는 사람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자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시는 것이다. 구원은 예수님이 내 대신 죽은 것을 믿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야만 된다.
로마서에서 말하는 세례는 그리스도와 함께 합하여 장사되는 것이다. 이것은 회개없이는 일어나지 않는다. 회개하는 자에게 2천년 전에 죽으신 그리스도가 계시되는 것이다.『내가 허물과 죄로 죽은 자구나』를 깨닫는 자에게 그렇게 계시된다.『허물과 죄로』라는 말은『허물과 죄 안에』라는 말이다. 로마서 6장 1절에서『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게 하겠느냐』에서『죄에 거한다』는 말이『죄 안에 거한다』는 말이다. 『허물과 죄 안에』 있는 자는 구원받지 못한다. 그러나 죽으신『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구원받는다. 그리스도 안에 있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어야만 한다. 이렇게 되면 죄에 대하여 죽는다.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죄에 대하여 죽는다』는 말은 무슨 말인가? 죄에 대하여 죽은 자는 영이 죽어있다는 말이고, 죄에 대하여 죽는다는 말은 혼이 죽는다는 말이다. 회개하는 자에게 죄에 대하여 예수와 함께 죽을 수 있는 기회가 오는 것이다. 이게 세례고 거듭남이다.
우리의 모든 문제는 내가 살아있는 것이다. 하와가 죄가 없을 때인데 선악과를 먹는 죄를 지었다. 요한계시록에서 나오는 사탄(옛뱀)은 하와를 넘어뜨리기 위해 총력을 다했다. 그 총력을 다한 것이 바로『자기』라는 것을 인식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자기』라는 것이 바로 사탄이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 처럼 되고 싶었던 타락한 욕망이다. 사탄은 이 욕망을 하나님 나라에서 다른 천사들에게도 유혹한 것 같이(유다서 1장 6절, 베드로후서 2장 4절) 하와에게도 동일하게 유혹했다. 하와는 선악과를 『먹으면 죽는다』는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났지만,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욕망이 말씀보다 앞서게 된다.『자기』라는 욕망이 들어온 하와는 사탄에게 생각을 빼앗긴 것이다. 오늘날에도 어떤 상황 속에서 하나님 말씀 보다 자기 생각에 빠져들면 이렇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지 못하고, 『자기』가 상황에 반응한다. 주인이 바로 자기다. 이런 상황에서『자기를 부인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귀에 들어오겠는가? 그래서 허물과 죄로 죽어있는 것이다.
사탄은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에게도 직접 나타났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 있다면 예수님이 시험을 이긴 것처럼,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 말씀을 붙잡을 수 있다. 말씀에 순종할 수 있다.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진 것을 아시고『물을 떠서 항아리에 부으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에 하인들이 순종한 것 같이, 우리도 주님 말씀에 순종하면 기적이 일어나는 것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매일 매일 생각과 습관을 떨쳐버리지 못한다. 이것이 내가 주인임을 반증한다. 주님이 주인이 되는 새생명의 인생을 살아야만 한다.
로마서 12장 2절에서『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도록 하라』마음을 새롭게 함이란 바로 자기부인의 회개를 말한다. 하나님이 회개하는 자를 새롭게 해 주신다. 예수와 함께 장사되지 않은 자는 새생명이 없는 자다. 예수님이 내 죄를 대신해서 죽었음을 믿고, 그의 피로 모든 죄를 용서받아 구원을 얻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기부인의 회개가 있었는지 생각해 보아야만 한다. 회개하지 않은 사람들은 죄에 대해서 죽는다는 것 조차도 알지 못하면서 구원의 확신 만을 강조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예수님이 잡히시기 전 날 밤에 마가복음 14장 22-24절에서 『그들이 먹을 때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감사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니 다 이를 마시매 이르시되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라고 하셨다.』그래서 성찬식 때 예수의 몸과 피를 마시는 자는 언약 속으로 들어간다고 믿는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문제는 예수님의 몸(떡)을 먹는 것이다. 먹는다는 것은 먹고 하나가 되는 것을 말하는데, 그냥 먹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죽음에 참여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스도의 죽음에 참여하는 것은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교회 사람들은 떡을 어떻게 먹는가? 아무런 생각 없이 먹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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