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을 얻게 하리라
사도행전 26장 18절『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사도바울이 아그립바 왕에게 간증을 하고 있다. 다메섹에서 예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말했다.『누구십니까?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그리고 하신 말씀이 20장 18절의 말씀이다.
에베소서에서 주님이『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라고 말씀하신다. 『어두움이란 더러움이라』는 말이다. 인간이 얼마나 더러운지는 인간의 양심의 정도로서 알아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래서 본질상 진노의 자녀다. 주님이 빛을 비춰주셔서 소경이 눈을 뜰 때 비로소 깨닫게 된다. 그래서 그 때 진정한 회개가 일어나는 것이다. 회개할 때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간다. 스스로 사단의 권세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자들이 있다. 사탄숭배자, 주술사, 무당과 같은 자들이다. 그러나 거의 대부분 사람들은 복음이 전파되기 전에는 자기가 사단의 권세에 매여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속아있기 때문이다. 사단은 광명의 천사로 속인다.
귀신(demon)들린 자는 그 안에 아버지가 마귀(diablos)다. 구원은 『너희는 귀신들린 정도가 아니라 너희 아비는 마귀라』는 것을 깨닫는데서 출발한다. 주님은 예수 안에 있는 자를 마귀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신다. 그런 후에 죄를 사하신다. 오늘날은『예수믿고 죄사함을 받으세요』라고 말한다. 두 가지를 건너뛴다. 회개와 예수 안으로 들어가는 믿음을 건너뛴다. 『예수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예수와 십자가에서 장사되는 것이다. 이 두 가지를 한 후에 예수의 피로 죄가 씻어진다. 모세오경에서도 같은 말이 있다. 노예를 사서 더러움을 씻어주는 것이다. 씻고 난 후에 주인의 집에서 주인과 함께 살게된다. 노예를 사는 것이 바로 마귀에서 예수로 주인이 바뀌는 것이다. 이게 구속이다. 노예시장의 노예와 어느 주인의 집에 있는 노예는 분명히 다르다.
이렇게 된 후에『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가 적용된다. 그런데 이 말씀은 별로 유명하지 않다. 사도행전 2장 38절에서 베드로가 오순절에 모인 유대인들에게 말하는 것이다.『너희가 회개하여 각 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라』36절에서는『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은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라고 말했다.
두 가지다.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 그리스도가 되게 하신 것은 십자가의 공로다. 그리스도는 믿으면 되지만, 주는 회개하여 돌아오는 자에게 주(Lord)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교회 사람들은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믿지만 주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 모양이다. 예수님이 왕이 된 자에게는 제사장 사역이 이루어진다. 제사장의 사역만 믿고 제사장이 왕이라는 것을 받아드리지 못한다면 그것은 구원이 아니라는 말이다. 주가 되기 위해서는, 왕이 나의 주가 되기 위해서는 회개하고 자기를 부인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대부분 찬송가에서 말로만『우리 왕이여』라고 외치지만, 예수와 함께 죽으려고 하지 않으므로 실질적으로 왕이 아닌 것이다.
회개는 회개하는 자에게 예수가 주(Lord), 나의 왕이 되시는 것이다. 성경에서의 예화는 예수님이 왕 되는 것을 원치 않는 것이다. 포도원 주인이 먼 나라에 갔다가 돌아올 때에 포도원의 소산을 받으려고 종들을 보냈는데, 그 종들을 때리고 죽였다. 이 말은 포도원에 임차하여 사는 자들이 주인이 되어버렸다는 말이다. 왕이 마지막에 아들을 보내면 그러지 않겠지 라고 생각하고 포도원에 아들을 보냈는데, 그들이 아들을 죽이면 이 포도원을 가질 수 있겠다고 생각하고 그 아들 마저 죽여버린 것이다. 포도원 주인의 왕 됨을 원치 않고, 포도원을 불법으로 가지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을 깨닫는 것이 회개의 시작이다.
회개는 내 뜻대로 살아온 모든 것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고 사단에게 속해있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부인을 통해 십자가 속으로 들어가야만 한다.『자기부인』은 사단을 부인하는 것과 같다.『자기』라는 속성이 바로 사단의 자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단의 자식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돌아가는 것이 회개인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사단의 자식인 악(자기)은 반드시 죽어야만 한다. 십자가에서 예수와 함께 장사되어야만 한다. 로마서6장3-4절에서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회개없는 세례는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 것이 되어버린다. 회개하는 자는 하나님을 두려워한다. 출애굽기의 숨은 주인공은 산파다. 바로왕은 사내 아이를 낳으면 죽이라고 명했지만, 하나님을 두려워했으므로 바로왕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늘날 많은 교회는『성령을 받으라』는 말씀은 있지만 회개를 외치지는 않는다. 회개하여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 기업이 있다는 말은 잘 하지 않는다. 성령을 받는 자는 회개하여 거룩하게 된 무리가운데 기업이 있는 자다. 성령은『저것은 내 것이다』라고 주님의 소유를 인치시는 것이다. 회개하여 성령으로 거듭난 자가 주님의 것이 된다. 주님의 것이 되므로 씻어주시고, 인을 치시는 것이다. 오늘날 회개의 복음을 전하지 않으므로 이 같은 것을 깨닫지 못한다.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믿는 믿음은 삼년간 베드로가 예수님을 따랐던 믿음과 같은 것이다. 온갖 기적을 다 경험하고, 바다 위를 걸었던 베드로였지만 십자가 앞에서 예수를 버린 믿음이다. 오늘날 많은 교회가 이런 상태일지도 모른다. 자신은 누구의 자식인지도 모르면서 구원받았다고 생각한다. 마귀의 자식들인가 하나님의 아들들인가?
예수님은 베세다와 고라신에 가서 가장 많이 은혜를 베푸셨지만 회개한 자는 하나도 없었다고 말씀하셨다. 소돔과 고모라보다 더 강렬하게 그 도시 자체를 없애버리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기적을 경험했지만 회개하지 않았다. 기적을 경험한 것과 회개는 별개다. 기적을 경험한 것은 구원에 다가갈 수 있는 기회일 뿐이다. 회개하여야 구원받을 수 있다. 회개는 십자가에서 예수와 연합되는 것이다. 열명의 문둥병자를 고쳐주었지만 예수님께로 돌아온 자는 한 명 밖에 없었다고 한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고난을 받고 죽었다가 삼일 만에 살아나리라』라고 말했지만 베드로는『그리마옵소서 그 일이 결단코 당신에게 미쳐서는 안됩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예수님이『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너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는 자는 회개한 자가 아니라는 말씀이다. 회개는 하나님께로 생각이 바뀌는 것(메타노이아) 이다. 생각이 바뀌어야 거듭나게 된다. 예수님은『오늘밤 다 나를 버리리라』라고 말씀하셨다. 불과 몇시간 전에 제자들이『누가 크냐』를 두고 다투었지만 같은 날 십자가 앞에서 다 도망가버린 것이다.
전혀 변화되지 않은 육신의 모습이다. 예수님과 함께 동거동락해도 구원받는 믿음이 되지 못했다. 살아계신 주님과 연합이 아니라, 십자가의 주님과 연합되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한다. 그래서 세례는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와 연합되어 장사되는 것이다. 현재의 육신이 살아있지만 예수와 함께 2000년 전에 십자가에서 연합하여 죽을 수 있는가? 이것은 하나님의 놀라우신 초자연적 능력이시다. 이것 만이 구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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