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누가복음 9장 22-24절『이르시되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하리라 하시고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이 말씀이 회개요, 의롭다하심을 얻는 길이다. 이 말씀대로 사는 것이 성화되는 길이다.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자기를 부인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한다. 날마다 자기의 십자가를 지지 않으면 안된다는 말씀이다. 마태복음 16장 21절에서『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예수님이 죽으러 왔다는 것을 가르치기 시작한 것이『이 때로 부터』라고 하셨다.
이 전에 예수님과 베드로와 대화를 하셨다.『너는 나를 누구라 생각하느냐』라고 질문한다. 베드로가『당신은 그리스도이시요 살아있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고 말했다. 심지어 16장 17절에서『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라고 하셨다. 그런데 22절에서『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십자가의 사건이 오기 전에는 모두가 육신 아래 있는 것이다.
예수님이 16장 23절에서『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예수님은 메시야를 기다리던 기름부음을 받은 제사장(메시야인 제사장)들에 의해 죽고 제 삼일 후에 살아나야 한다는데, 베드로가 이 말씀을 받을 수가 없었다. 오늘날도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믿지만,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으면 예수를 대적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보여야만 된다. 그렇지 않으면 구원을 얻을 수 없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사탄아 물러가라』고 하셨다.
오늘날도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으면 사탄의 지배 아래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생각에 있다.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게 회개하지 않은 자, 거듭나지 않은 자의 모습이다. 그런데 주님이 사탄의 지배를 벗어나는 방법을 가르쳐주신다. 16장 24-25절에서『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여기에서 목숨은 혼(soul)을 말한다. 혼은 육으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몇천명이 산상수훈에서 놀라운 말씀을 듣고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고 예수님을 따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태복음 10장에서는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택하신다. 앞에 부분은 재물에 대한 자세를 말씀하셨는데, 마지막 부분은 자아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인간의 신은 두가지다. 외적으로는 돈(성공)이다. 이게 구약에서 나오는 바알이다. 내적으로는 행복, 쾌락이다. 이게 아스다롯이다. 이게 하나님보다 높아진 것이 바로 우상이 된다. 회개는 하나님이 주인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주인이라고 말하지만, 돈과 행복을 더 섬기면서, 말로는 하나님 뜻에 합당하지 않게 살았다고 회개라는 말 한마디 던지면서 다 해결되었다고 생각하고, 다시 돈과 행복을 더 섬기는 일을 반복하는 오늘날의 많은 교회 사람들의 모습이다. 회개는 하나님이 주인되는 것이다.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죄가 없었던 사람이었다. 성경은 선악과를 먹는 죄에 대해서는 짧게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사탄(옛뱀)이 나타났다. 사탄이 하와에게『하나님이 동산에 있는 모든 실과를 먹지 말라고 하더냐』라고 질문을 던졌다.『다른 것은 다 먹어도 선악과는 만지지도 먹지도 말라 하셨다』고 대답한다. 사탄의 질문에 답하려고 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할 수 없게 된다. 사탄은 대화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광야에서 사탄의 시험을 받을 때 사탄의 질문에 답하지 않으셨다. 사탄은 하와에게『아니야 그것 먹으면 하나님처럼 되기 때문에 먹지 말라고 한 거야』라고 속였다. 사탄의 속이는 말을 하나님께 확인해야만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혼은 하나님께 반응하지 않는다. 그래서 죄가 없었던 하와도 넘어지고 말았다. 그런데 죄인인 인간이 어떻게 사탄을 이길 수 있겠는가?
우리의 반응이 혼에서 비롯된 것인지 영에서 비롯된 것인지 알 수 있다. 영은 무조건 주님께 반응하기 때문이다. 이게 영적인 사람이다. 혼은 상황에 반응한다. 그래서 인간은 타락한 존재라고 말하는 이유다. 남들보다 하나님을 잘 믿을 수 있다. 그러나 회개하여 거듭나지 않으면 자신이 타락한 존재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하와는 하나님께 질문하지 않고 상황에 반응한다.『이것 먹으면 정말 지혜로워지는 것인가?』라고 생각했다. 혼은 선악과를 먹어보지 않고도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혼은 세상에 대한 놀라운 판단을 하게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는 기억하지 못한다. 혼은 이 땅의 것에 반응하지만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는 전혀 반응하지 못한다. 구원은 혼(자기 목숨)을 부인하라는 말씀이다. 그래서 우리의 영이 소생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자 말자, 마태복음 10장 38-39절에서『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목숨은 혼(soul)을 말한다. 그런데 성경의 많은 부분에서 영과 혼을 구분하지 못하게 번역한 부분이 많다. 10장 28절에서는『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여기에서 말하는 영혼도 soul이다. 그래서 영혼이 아니라 혼이라고 해야만 한다. 영과 혼을 구분할 수 없게 만들어 놓았다.
혼은 내가 주체가 된다. 마귀가 노리는 것이 바로 혼이다. 마태복음10장 34-37절에서『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이 말씀은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다. 혼을 부인하라는 것이다. 혼은 육으로 비롯된 것이므로 혼적인 자기 식구라도 하나님이 우선되어야 한다. 자아가 드러나는 것은 우리의 삶의 전체가 드러나는 것이다. 자아는 내가 맞고, 상대는 틀렸다고 생각한다. 자아는 속이고 또 속인다. 자아는 죄를 짓기 전에 악이다. 죄는 용서받을 수 있지만 악은 반드시 죽어야만 한다. 악이 곧 옛사람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자아가 죽지 않도록 온갖 노력을 다해 감춘다. 세례는 죄를 씻는 것이 아니라, 죄를 짓는 옛사람(악)을 처리하는 과정이다. 로마서 6장 6절에서『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옛사람이 장사되지 않으면 예수의 피가 적용되지 않는다. 옛사람을 처리하지 않고,『예수믿으면 천국간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복음이다. 회개는 죄를 짓게 하는 자아가 죽는 것을 말한다. 회개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이런 것 없이 죄만 고백하는 자는 거짓 회개하는 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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