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순종치 아니하던 자에게가 아니냐
히브리서 3장 16-19절『듣고 격노하시게 하던 자가 누구냐 모세를 따라 애굽에서 나온 모든 사람이 아니냐 또 하나님이 사십 년 동안 누구에게 노하셨느냐 그들의 시체가 광야에 엎드러진 범죄한 자들에게가 아니냐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냐 곧 순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에게가 아니냐 이로 보건대 그들이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
성경에서 구원받는 믿음은 신약의 그림자인 구약의 출애굽에서 주로설명된다. 광야에서 주님을 믿고 가나안을 들어간 자가 구원받는 믿음이다. 이 믿음이 택한 자의 믿음이다. 히브리 백성의 영적인 상태는 우리의 영적 그림자다. 애굽에서 사는 것이 그들에게는 너무 힘들었다. 그들은 왜 그렇게 사는지를 몰랐다. 그래서 그 속에서 인생의 목적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들이 부르짖으므로 주님이 모세를 보내서 그들을 애굽으로 부터 나오게 하시고『내 백성으로 예배하게 하라』고 명령하셨다. 예배는 애굽에서 걸어서 사흘 길 이상 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십자가와 삼일 뒤 부활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들에게 어린양의 피를 칠하게 하셨다.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는데, 진노를 피하게 된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어린양의 고기를 먹고 아침에 홍해바다가 갈라져서 건너 광야로 들어가게 된다. 그 날로부터 육십만명이 매일 만나를 먹었다. 육일째는 이틀분을 거두는데, 지나고 나면 말라버리는 것이다. 매일 매일 먹어야만 했다. 신약에서는 매일 매일 그리스도를 의지하라는 뜻이다. 어제의 그리스도가 아니라 오늘의 그리스도를 의지해야만 한다. 어제의 기적이 있었어도 어제는 지나간 것이다. 어제 오병이어의 기적이 있었어도 오늘 풍랑치면 제자들처럼 다 무서워 떨게 된다.
우리도 어제까지의 좋은 믿음을 붙잡는 것이 아니라, 오늘 이 순간부터 붙잡는 믿음이 중요하다. 그렇게 히브리 백성들이 광야에서 1년을 지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인도하셨다. 매일 매일이 기적의 연속이었다. 그런데 성경은 이런 것을 믿음이라 하지 않는다. 모세가 40일간 약속한 땅에서 지켜야 할 율법을 받았는데, 율법을 가르치시고 성막에서 지킬 것을 가르치셨다. 성막은 하늘의 모형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내가 너희에게 약속한 땅을 정탐하라는 것이다. 열두지파의 대표가 40일간 보고 왔는데, 정탐꾼이 다녀와서 열명은『들어가면 죽는다』라는 것이다. 그들은 지파의 대표로서 정탐하기 전까지는 믿음이 가장 좋았던 사람들이다.
오늘날 대부분 교회에서는 이런 사람들의 믿음을 구원받은 믿음이라고 말할 것이다. 기적을 경험하거나 영적 체험을 했다면 구원받은 믿음이라고 말할 것이다. 어린양의 피를 칠해서 세상으로부터 나왔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구원받았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은 가나안 뿐이다. 오늘날 많은 교회는 미혹되어 있는 것이다. 어린양의 피를 칠하면 다 구원받았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광야에서 『회개하라』고 외치는 자의 소리가 모세로부터 세례요한까지 있었다. 그게 율법이었다. 율법 앞에서 하나님의 기준을 알게되므로 죽을 죄인임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율법이 그 땅에서 지켜야 할 것들이었다.
민수기 14장 1절에서『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백성이 밤새도록 통곡하였더라』14장 3절에서는『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가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그들은 하나님 약속의 말씀을 믿지 않았다. 구원받는 믿음은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믿음이다. 그 때 여호수아와 갈렙이 14장 7-9절에서 말했다.『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이게 구원받는 믿음이다.
히브리어 여호수아는 헬라어로 예수다. 구약성경은 히브리어로 되어있지만 신약성경은 헬라어로 기록되었다. 하나님 약속과 연합된 자는 여호수아와 갈렙 뿐이다. 14장 10절에서『온 회중이 그들을 돌로 치려 하는데 그 때에 여호와의 영광이 회막에서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나타나시니라』가나안에 들어가는가 아닌가 둘 중의 하나다. 중간은 없는 것이다. 출애굽 할 때는 다 애굽으로부터 나왔다. 출애굽할 때의 믿음이 구원받는 믿음은 아닌 것이다.
예수님이 수많은 기적을 보여주시고, 열두제자를 택하셨다. 열두제자는 당연히 예수님을 믿었다. 그들은 제자가 되어 병고치는 능력과 귀신쫒는 권세를 받았다. 주님은『귀신이 쫒겨 나가는 것을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는 것을 기뻐하라』고 하셨다. 삼년 동안 베드로처럼 기적을 많이 경험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누가복음 22장에서 예수님이 베드로에게『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하라』고 말씀하셨다. 요한복음 13장에서는『지금은 내가 가는 곳에 너희가 올 수 없다』베드로가『주여 지금은 어찌하여 당신을 따라갈 수 없습니까』라고 물었다.『나는 주를 위해 내 목숨을 버리겠나이다』 라고 까지 말했다. 그런데 이렇게 말한 것이 믿음은 아닌 것이다. 주님은『오늘밤 너는 나를 세번 부인하리라』라고 말씀하셨다. 오늘날 많은 교회사람들이『내가 믿으면 구원받는 믿음이라』고 선언한다. 자기부인의 회개없는 영접기도, 결단카드는 거짓복음이다.
영국의 스펄전 목사는 설교할 때 예수님이 하신 밭의 비유를 자주했다.『말씀을 들을 때 기뻐하고 눈물을 흘리지만 어려움이 오면 돌짝밭처럼, 가시떨기 밭처럼 될지 어떻게 알겠는가? 지금 설교의 말씀으로 눈물을 흘릴지 모르지만, 회개하지 않으면 집으로 돌아가서 드라마를 보고 더 슬프게 울지도 모른다』라고 말했다. 회개는 눈물을 흘리면서 죄의 잘못을 반성하는 그런 것이 아니라,『자기를 부인하는 것이 회개』라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는『그들이 눈물을 흘리면서 죄인임을 고백하고, 예수믿기로 결단하면 구원받는다』고 선언하고 있다. 이게 거짓 복음이다.
로이드존슨 목사는 빌리그레함의 유럽 전체 전도집회 대표제의를 거절했다. 인간은 자기를 부인하지 않으면 변하지 않는다.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변하지 않는다. 옛것을 붙잡고 있으면 변하지 않는다. 날마다 죽어야만 한다. 회개하고 자기를 부인하는 자를 하나님이 거듭나게 해 주신다. 이 믿음이 가나안에 들어가는 믿음이다. 그러나 삼년간 예수님을 따랐던 베드로는 십자가 앞에서 예수를 세번 부인했다. 그리고 도망가버렸다. 이 믿음이 구원받는 믿음은 아닌 것이다. 회개하고 돌이켜야만 한다. 가나안을 들어가기 위해서는 나 자신을 신뢰해서는 안된다. 자기를 부인해야만 한다. 그래서 자기 정체성의 인식이 중요하다. 주님의 약속을 믿지 않는 자는 광야에서 죽는 옛사람이다. 자기의 정체성이 옛사람이면 구원받지 못한다. 옛사람은 육에 반응하기 때문에 혼적인 존재다.
혼적인 존재도『내가 주를 위해 목숨을 버리겠나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많은 교회에서『당신은 구원받았다』라고 선언할지라도 베드로처럼 자기 자신을 더 믿는 자는 옛사람에 불과한 것이다. 예수님이 이런 상태를 베드로에게 보여주신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을 때 베드로가 회개할 기회를 얻는 것이다. 가나안 입구에서 회개해야만 한다. 십자가 앞에서 자기를 부인해야만 한다. 민수기 14장 11절에서『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내가 그들 중에 많은 이적을 행하였으나 어느 때까지 나를 믿지 않겠느냐』아무리 기다려도 믿지 않는 것을 하나님이 말씀해 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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