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너희가 믿느냐
요한복음 16장 31-32절『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제는 너희가 믿느냐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예수님은 자신을 삼년간 따르던 제자들에게 질문하는 것이다. 이 앞에서 그들이 고백했는데, 16장 30절에서『우리가 지금에야 주께서 모든 것을 아시고 또 사람의 물음을 기다리시지 않는 줄 아나이다 이로써 하나님께로부터 나오심을 우리가 믿사옵나이다』라고 하니까 예수님이『이제는 너희가 믿는다고?』라고 믿음을 부정하는 내용이다. 32절에서는『나를 두고 다 떠난다』고 말하는 장면이다.
여기에서 제자들과 예수님의 입장 차이는 제자들은 믿는다고 하는데, 예수님은 믿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왜 이런 차이를 나타내는가? 바로 거듭남에 있다. 거듭나지 않은 자의 믿음은 예수님이 보실 때 참된 믿음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제자들은 객관적인 입장에서 믿는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거듭난 자의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믿음이 된다. 이의 대표적인 예가 요한복음 13장 37-38절의 말씀이다.『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내가 지금은 어찌하여 따라갈 수 없나이까 주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나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가 나를 위하여 네 목숨을 버리겠느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베드로의 믿음은 거듭나지 않은 믿음이라는 것이다. 거듭나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를 부인할 자라는 것을 알려주신다. 오늘날 교회에서 예수를 믿는다고 말하지만, 인간적으로 볼 때 베드로보다 더 강렬한 믿음을 가진 자가 어디 있겠는가? 많은 교회 사람들이 자신은 구원받을 것이라고 확신하지만, 예수를 부인하지 않는다고 어떻게 장담하겠는가? 믿기만 하면 다 구원받는 믿음인가? 히브리서 4장 1절에서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는 혹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마태복음 26장 34-35절에서『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베드로가 이르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그와 같이 말하니라』모든 제자에 대한 내용은 요한복음에는 빠져있다. 믿음은 내 속에서 생긴 믿음과 하나님이 주신 믿음은 서로 다르다. 인간이 쌓은 믿음은 모래 위에 집을 쌓은 것과 같은 믿음이다. 삼년간 제자들이 엄청난 기적과 경험을 했음에도 십자가 앞에서 다 도망가는 믿음인 것이다. 베드로는 배를 나와 물위를 걷는 목숨을 거는 믿음을 가졌는데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환경이 바뀌어 목숨을 걸 수 있는 믿음 속에 기적을 경험할 수 있다. 그런데 주님은 구원에 이르는 믿음은 그런 믿음이 아니라고 말씀하신다.
거듭난다는 것에 대해서,『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거듭나지 않은 자는 베드로처럼 자기 자신을 믿는 것에 불과하다.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는다면 인간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육적 존재인 옛사람이기 때문이다. 거듭나는 믿음은 십자가에서 못박혀 죽는 예수와 연합되는 믿음이다. 못박혀 죽는 예수와 연합되는 믿음은 내적인 옛사람도 함께 죽는 것을 말한다. 그 옛사람은 바로 사탄의 유혹으로부터 왔기 때문에, 반드시 죽어야만 한다. 그 죽는 것은 창세기 3장 15절 외에는 방법이 없는 것이다.『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여기서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사탄의 머리가 깨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십자가에서 옛사람도 함께 죽어야만 한다. 내속에 있는 탐욕이라는 우상의 머리가 깨어지는 것이다.
오늘날 수많은 교회 사람들은 옛사람이 죽는 의미를 깨닫지 못한다면 거듭난다는 의미조차도 모르는 것이다. 자기(옛사람)를 신뢰하는 것은 결국 사탄을 신뢰하는 것이며, 예수를 죽이고자 하는 자가 될 것이다. 하나님이 빛을 비춰주시지 않으면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남들이 보기에는 예수를 잘 믿는다고 말하지만 옛사람이 죽지 않는 한, 사탄을 따르는 자이고, 예수를 죽이려고 하는 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남들이 보기에는 예수가 주가 되어서 예수를 위해 산다고 말을 들을지 모르지만, 거듭나지 않으면 결국 자기 자신을 위해 사는 자가 될 것이다. 이게 하나님을 적대시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일이다.
로마서 1장 17절에서『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내가 믿는 믿음에서, 거듭나서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으로 이르게 해야만 구원받는다. 거듭나야만 하나님의 의를 얻을 수 있다. 거듭나는 것은 육의 깊은 곳에 있는 옛사람이 죽어야만 한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회개하라고 계속 말씀하고 있다. 회개의 의미를 모른채 오늘도 내일도 죄를 고백하는 정도로 생각한다면 거듭난 것이 아니다. 회개는 자기를 부인하는 삶 자체다. 회개하면 회개하는 자에게 천국이 임하는 것이다.
회개는『자신은 주님을 따를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데서 출발한다. 그래서 죽어야 할 존재라는 것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지 못한다면, 신앙생활이 종교행위에 불과한 것이 될 것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지 못한다면 회개의 시작도 못한 것이다.
누가복음 22장 31-32절에서『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사탄이 베드로를 합법적으로 청구한다는 것이다. 주님이 베드로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했지만 떨어지고 말았다. 그래서 돌이키지 않으면 모두가 믿음에서 떨어진다고 말한다. 베드로는 삼년간 예수님을 따랐는데,『돌이키라』고 말한다. 무엇을 돌이키라는 것인가?
주님이 오늘날 수많은 교회사람들에게『돌이키라』고 말씀한다면 『무엇을 돌이키라는 건가?』라고 말할지도 모른다.『돌이킨다』는 말은 에피스트로퍼(be converted: 우리말로 회심이라고 번역됨)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돌이키지 않으면 십자가에서 다 도망간다고 말하는 것이다. 베드로는『절대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는다』고 힘주어 말했다. 예수님은『돌이키라』고 하는데, 베드로는 자신 만만한 것이다. 결과는 십자가 앞에서 도망이었다. 모든 교회 사람들이 살아있는 주님에 대해서는 목숨을 바쳐서 일할 수 있겠지만,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를 위해서는 목숨을 바칠 수 있겠는가? 사람들에게 버림당하고 아무리 불러도 대답없는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는 자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를 붙드는 종류의 사람은 예수님의 죽으심이 바로 내속에 있는 악 때문에 죽었다는 것을 깨닫는 자다. 그래서 악한 나도 죽은 자라고 고백하는 것이다.『나는 허물과 죄로 죽어있는 자』라는 것을 십자가에서 죽은 그리스도 앞에서 고백하는 자다.
나는 예수를 죽인 자이고, 허물(세상죄)과 죄(원죄:악)로 하나님 앞에서 죽어 있는 자라는 것을 깨닫고 회개하는 자가 바로 거듭나는 자가 된다. 그래서『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가 된다. 내가 악한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자는 십자가에서 다 도망가는 자가 된다.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된 자만 성령으로 거듭난다. 로마서 6장 4절에서『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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