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로우신 하나님께 대한 온전한 회개
갈라디아서 3장 26-27절『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세례는 예수님과 연합되는 것이다. 옛사람의 옷을 벗고, 그리스도로 옷 입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교회 사람들은 옛사람의 옷을 벗지 않고, 그리스도로 옷을 입으려고 한다. 왜 옛사람의 옷을 벗지 않으려고 하는가? 육으로 난 것도 좋고, 심판도 피하고 싶고, 그렇게 신앙생활 하는 것이다. 그리고 적당히 포장해서 자기의 의를 쌓아가고, 그것이 마치 진리인양 생각하는 것이다.
회개하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은 매일 회개하고 있다고 말한다. 세상죄를 반성하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부모로부터 이어져 오는 원죄를 어떻게 하는가? 원죄는 반성의 대상이 아니다. 내가 저지런 것도 아닌데 어떻게 반성하는가? 원죄는 제거의 대상이 된다.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어야만 되는 것이다. 이것이 회개다. 그래서 회개하고 돌아오라는 것이다. 회개는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것이다.
욥이『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라고 고백하는 것처럼 되는 것이다. 주님께 부숴진 자, 복종하는 자가 되면, 나머지는 주님이 해결해 주신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죽은 자같이 되는 순종이다. 왜냐하면 주님에게 모든 주권이 있기 때문이다. 그 시작이 세례다.『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라는 말은 세례받은 자를 말한다. 즉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못박은 자를 말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로 다시 태어난다는 말이다. 오직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가 이에 해당된다. 그러나 많은 교회에서는『영접 기도하면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고 말한다. 영접기도하면 일단 구원받는 것이고, 사탄과의 싸움에서 넘어지지 않기 위해 거듭난 마음으로 그 구원을 붙잡아야 된다고 말하는 것이다.
거듭나는 것은 마음이 아니라 부모로부터 받은 옛사람의 몸이 예수와 함께 못박히고, 다시 하나님으로 부터 태어나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영접기도는 교회로 인도되어 옛사람을 벗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다. 예복을 입지 않으면 왕의 혼인잔치에 초대되어도 어두운 곳으로 쫒겨난다.
갈라디아서 3장 23절에서『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초등교사 아래에 있지 아니하도다』믿음이 오지 않으면 다 쫒겨난다. 영접기도 한다고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와야만 한다. 믿음이 와야만 구원받는다. 믿음이 오기 위해서는 옛사람의 옷을 벗고, 그리스도로 옷입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베드로는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너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라고 물었을 때, 베드로는『주는 그리스도이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라고 대답했다.
예수님은『그것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계시하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의심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인자가 온 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대속물로 주러 왔다』는 말에 반응하지 못했다. 모든 제자들이 다 그러했다. 대속물이란 죄 아래서 팔렸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사탄에게 묶여있다는 말이다. 삼년이 지나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오늘밤 너희들은 다 나를 버리리라』라고 말씀하셨다. 베드로가『이 사람들은 당신을 버려도, 나는 절대 버리지 않습니다』라고 말했지만, 예수님은 베드로에게만『오늘밤 나를 세번 부인하리라』라고 말씀했다.
마태복음 10장 32-33절에서『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이 말과 예수님과 베드로의 대화에서 나누는 장면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을 때는 제자들이 다 도망했다. 『옛사람의 옷을 벗고 그리스도로 옷 입으라』고 말하지만 옛사람의 옷을 벗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서『그리스도로 옷 입었다』고 우기는 것이다. 자신이 주장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판단하실 것이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이런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서,『자기는 천국간다』고 말한다.『부르심을 받은 자는 많지만 택하심을 입은 자는 적다』고 성경은 말한다.
열처녀는 동시에 등불을 켜고, 신랑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나누어진다. 다른 기름을 준비한 사람과 준비하지 못한 사람으로 나누어진다. 다른 기름을 준비하지 못한 자들은 기름을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오므로 혼인잔치의 문이 닫혀버렸다. 그래서 그들은 『주여 주여 문을 열어주소서』라고 말하면서 문을 두드렸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미련한 다섯처녀는『예수를 주』라고 부르는 자들이다. 그러나 예수님은『나는 너를 모른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주라고 말하지만, 예수님이『나는 너를 모른다』 라고 말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예수님은 옛사람의 옷을 벗고 그리스도로 옷 입은 자만 아시는 것이다.
마태복음 7장 22-23절의 산상수훈에서『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여기서『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I never knew you (kjv) 라고 말한다.『결코, 절대 모른다』라는 말이다. 예수님은 『인자가 올 때는 노아의 때와 롯의 때와 같다』고 말씀하셨다. 방주 문이 닫히면 열리지 않는다.『사랑의 하나님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기회를 주셔야지』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기회는 단 한번이다. 롯의 처도 소돔에서 모든 죄를 다 벗어난 자다.『뒤돌아보지 말고, 머물지 말고, 앞만 보고 가라』는 말씀에 반응하지 못했다. 회개하지 않은 자가 그렇게 된다는 말씀이다. 옛사람의 옷을 벗지 못하는 자는 이 말씀에 반응하지 못한다. 전적으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는 것이다. 옛사람이 죽고, 새생명이 광야에서 태어나서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믿음 만이 구원받는 믿음이 된다. 주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자의 믿음 만이 구원받는 믿음이 된다. 그런데 이 믿음은 와야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초등교사 아래에 있지 아니하도다』믿음이 오기 위해서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옛사람의 옷을 벗어야만 된다. 지금 등불을 켜도, 내가 쌓은 믿음은 그 날에 미련한 다섯처녀의 등불처럼 꺼진다. 믿음은 내가 쌓은 믿음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오는 믿음을 받아야만 된다. 예복으로 갈아입어야만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옛것을 벗고 새옷으로 갈아입어야 한다. 복음의 말씀은 모두가 죄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옛것을 버리고 새것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말씀이다. 개선의 여지가 있는 것이 아니라, 새피조물로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한다. 그런데, 많은 교회 사람들은 개선하려고만 한다. 자기가 주인이기 때문이다.
갈라디아서 3장 27절에서『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그래서 3장 29절에서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가 된다.
그리스도의 것이 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로 옷 입어야만 한다. 회개하는 자만 그리스도로 옷 입게된다. 자기를 속이는 자가 되어서는 안된다. 자기의 의에 빠져 있는 자는 자기를 속이는 자가 된다. 골로새서 3장 9-10절에서『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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