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회개하는 자가 세상을 이기는 자
로마서 4장 25 - 5장4절『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으면 은혜에 들어가며, 그 은혜로 인하여 즐거워하게 된다. 그 믿음은 거듭난 자의 믿음이다. 욥에 대해서 사탄은 하나님께 송사를 한다. 욥이 하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이 많은 것을 베풀어 주셨으므로 믿는 것이지, 다 거두어 가버리면 그는 하나님을 원망하실 것이라고 송사했다. 그래서 하나님이 사탄에게 목숨을 제외하고, 욥을 치도록 허락하셨다. 사탄은 욥의 성공과 가정의 행복과 건강을 거두어 가버렸다. 친구들과도 관계가 끊어져 버렸다. 그래서 욥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다. 그런데 친구들의 말을 듣고 하나님을 원망하기 시작한 것이다. 자기의 의가 드러나는 순간, 하나님을 원망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하나님을 불의하신 분으로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을 원망하면 그렇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욥에게 나타나셔서 자기의 의를 드러내는 욥에게 말씀하시는 것이다.
믿음으로 의를 얻는 것은 회개의 결과다. 그래서 화목의 역사를 일으킨다. 우리도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이 구원이 된다. 욥은 하나님으로부터 의를 얻은 것이 아니라 자기 의에 빠져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깨닫게 해 주시고 그는 회개를 통해서 하나님으로부터 의를 얻게된다. 자기의 의는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는 것이다. 자기의 의는 자기가 중심이 되므로, 하나님조차 불의한 분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욥이 그러했고, 탕자의 비유에서 큰 아들이 그러했으며,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그렇게 생각했다. 율법 아래 갇혀있는 자들이 다 그런 모습이다.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은 자신이 율법을 지킨 만큼 의로워진 것으로 생각한다.『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믿음을 얻지 못하면 다 율법 아래 갇힌 자들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은 생명이 있는 믿음이다. 그러나 자신의 의로 믿는 믿음은 갇힌 자의 믿음이 된다.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을 소유한 자가 하나님의 의를 받는 자가 된다. 그래서 그리스도로 옷입는 자가 된다. 구약시대는 할례를 통해서 약속의 씨에 대한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게되는 것이지만, 신약에서는 약속의 씨가 생명의 부활로 이어지는 자가 의롭다 하심을 얻게된다. 믿음은 하나님으로 부터 와야한다. 자신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듣고 약속의 씨(말씀)가 들어와도 그 씨가 발아하여 부활 생명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한알의 씨가 생명으로 부활되려면, 굳어진 땅을 갈아엎어야 하듯이, 부모로 부터 받은 육적인 것을 부인하는 회개가 있어야, 그 씨에 있는 생명이 발아하여 나무를 이르고 많은 열매를 맺게하는 것이다.
부모로부터 받은 육적 몸이 하나님 말씀을 통해서 예수와 함께 장사된 자가 부활에 참여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으로부터 신령한 몸을 입게 된다는 믿음은 자기가 믿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믿음이 와야 되는 것이다. 이 믿음은 오직 회개하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회개는 자기를 부인하는 길이다.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은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된다. 갈라디아서 3장 10절에서『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그리고 3장 23절에서『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자기의 의에 빠져있는 자들은 믿음의 계시를 받지 못한 자다. 오직 회개하는 자가 믿음의 계시를 받은 자가 된다. 자신이 이런 상태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면, 진정한 회개가 아닌 것이다. 노아가 전한 것이나, 세례요한이 전한 것은 같은 말씀이다. 다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는 자들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을 진노에서 제외시켜 주신다. 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가 진노를 다 받으신 분이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부모로부터 받은 육적 몸을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지낸 바 되어야만 한다. 이게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다. 갈라디아서 3장 22절에서『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에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라』이게 의의 도이며, 의의 말씀이다.그리스도 안에 들어가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한다.
오늘날 많은 교회는 회개의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한채,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 것으로 잘못 생각하고 있다. 장사지내는 것과 부활은 현재형이다. 로마서 6장 4-7절에서『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회개는 죽는 것이다.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난다. 무엇이 죽는 것인가? 우리의 옛사람이 죽는 것이다. 옛사람이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원죄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부모로부터 받은 육적 몸 속에 탐욕이라는 속성으로 옛뱀이 숨겨놓고 있다. 그래서 예수와 함께 장사지내는 것이 죽는 것이다. 이게 회개다. 죄를 고백하지만 예수와 함께 장사지낸바 되지 않는다면 헛수고가 될 것이다. 그래서 회개하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는 것이다.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와 함께 장사지낸바 되어야만 한다. 이게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길이요, 부활생명이 되는 길이다. 우리가 구해야만 하는 길은 능력의 예수가 아니라, 처참하게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와 연합되는 길 외에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경우, 죽으신 예수와 연합이 아니라 기적을 일으키는 능력의 예수와 연합하려고 한다. 은사를 체험하기 위해 성령의 능력을 구하고, 오병이어의 기적처럼 재산이 늘어나기를 간구한다. 로마서 4-5장의 말씀이 바로 그런 내용들이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와 연합되는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4-5장의 내용을 보고 구원을 쉽게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예수와 연합되는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남들이 있건 없건, 하나님 만을 바라보는 마음이 된다. 남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하는 행동들이 아니라 하나님 만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회개는 십자가에서 사람들에게 멸시받은 예수와 연합되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는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것을 추구한다. 죄를 회개한다고 하면서 죄를 매일짓고,『예수님 사랑해요』라고 말한다. 자기의 의를 위해서 필요한 예수가 되는 것이다. 말로는『예수님 사랑해요』 라고 하면서, 매일 어린양을 죽이려고 하는 자들이 되는 것이다. 이런 곳에는 회개가 일어나지 않는다. 회개의 의미도 모른다. 결국 회개하지 않는 곳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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