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즉 깨어 있으라
마태복음 25장 13절에서『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 성경에『깨어있으라』는 말이 여러 군데 나온다. 열처녀의 비유에서 『깨어있으라』고 하였으며,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러 가셨을 때도 제자들에게『너희가 잠시라도 깨어있어서 나와 함께 할 수 없었느냐』 라고 책망하셨다. 문자적으로 이해하면『잠을 자지 말고 깨어있으라』는 말이다. 그러나 『깨어있으라』는 말은 이면적인 의미가 중요한 것이다.
시편 78편 2절에서『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며 예로 부터 감추어졌던 것을 드러내려 하니』라고 했다. 마태복음 13장에서도 씨뿌리는 비유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씨뿌리는 비유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는 이유는『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제자들에게는 허락되었다』는 말이다.『창세로 부터 감추인 비밀이 씨뿌리는 비유에 감추어져 있다』
슬기로운 다섯처녀나 미련한 다섯처녀 모두 자고 있었지만, 슬기로운 처녀는 기름을 준비하고 있었다. 미련한 다섯처녀는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 깨닫지 못한 것을 말하고 있다.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사람은 성령님이 깨닫게 해 주시는 것이다. 성령이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이다. 미련한 다섯처녀는 성령이 없으므로 깨닫지 못한다. 즉 율법에 대해서 잘 알지못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이 언제 오시는지 알고있다 해도, 그것이 나에게 무슨 상관이 있는가?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나를 잘 아는 상황으로 되어 있어야 한다. 예수님이 인정하는 상태로 되어 있는 것이 깨어있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내가 아무리 성경 지식을 많이 알고있더라도, 예수님이 나를 모른다면 깨어있지 못한 상황인 것이다. 예수님이 나를 잘 알고 있는 상황이 되기 위해서는 내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 있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예수님과 함께 죽고, 예수님과 함께 사는 믿음이 필요하다. 로마서 7장 4절에서『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라』로마서 6장 3-6절과 갈라디아서 2장 19절에서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율법에 대해서 죽은 것을 말하고 있다.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는 공중 재림과 지상 재림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마태복음에서는 예수님이 밤에 오시는 것으로 설명이 되어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2절에서도『주의 날이 밤에 도둑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알기 때문이라』라고 했다. 마태복음 24장 40-43절에서도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둑이 어느 시각에 올 줄을 알았더라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요한계시록 3장 3절에서도『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켜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둑 같이 이르리니 어느 때에 네게 이를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라고 했다. 밤에 도적같이 오시는 예수님은 사람들이 모르고 있는 것이다. 데려감을 당하는 사람은 도적같이 오시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빛의 자녀들은 도적같이 오시지 않는 것이다. 남은 사람들은 예수님이 도적같이 오신 것을 나중에 깨닫는 것이다.
마태복음 24장 29-31절에서는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그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의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예수님이 오시는 것을 다 알게오신다. 도적같이 오시는 예수님과 온 족속이 다 알게오시는 예수님은 어떻게 차이가 있는가? 도적같이 오시는 예수님은 휴거를 당하는 자를 말하고, 모든 족속이 보는 상황에서 오시는 것은 7년 대환란 후에 오시는 지상재림인 것이다.『깨어있으라』는 말은『하나님 말씀에 깨어있으라』는 말이며, 『참 뜻을 깨달아라』는 말이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말씀하실 때 그 의미가 무엇인가를 깨달아만 한다. 율법은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약속이 담겨져 있는 말씀이다.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그 약속이 이루어진 것을 아는 것이 깨어있는 것이다. 그 약속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고린도후서 3장 14-16절에서 『그러나 그들의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벗겨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그 마음을 덮었도다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겨지리라』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면서도 그 말씀의 뜻을 모르는 이유는 수건이 덮혀져 있기 때문이라고 사도바울이 말하고 있다. 덮개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말씀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모르는 것이다. 출애굽기 34장 29-35절에서 수건이 가려져 있는 모세의 모습을 보여준다. 『모세가 그 증거의 두 판을 모세의 손에 들고 시내 산에서 내려오니 그 산에서 내려올 때에 모세는 자기가 여호와와 말하였음으로 말미암아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나나 깨닫지 못하였더라 아론과 온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를 볼 때에 모세의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남을 보고 그에게 가까이 하기를 두려워하더니 모세가 그들을 부르매 아론과 회중의 모든 어른이 모세에게로 오고 모세가 그들과 말하니 그 후에야 온 이스라엘 자손이 가까이 오는지라 모세가 여호와께서 시내 산에서 자기에게 이르신 말씀을 다 그들에게 명령하고 모세가 그들에게 말하기를 마치고 수건으로 자기 얼굴을 가렸더라 그러나 모세가 여호와 앞에 들어가서 함께 말할 때에는 나오기까지 수건을 벗고 있다가 나와서는 그 명령하신 일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하며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의 얼굴의 광채를 보므로 모세가 여호와께 말하러 들어가기까지 다시 수건으로 자기 얼굴을 가렸더라』
이 귀절을 고린도후서 3장 14-16절에서 인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가 오시면 그 수건이 벗겨지는 것이다. 그런데 구약을 읽을 때 깨닫지 못한 상태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구약을 읽을 때 말씀의 뜻이 깨달아지는 것을『깨어있는 것』이다. 구약의 율법에 대해서 깨닫는다면 오늘날 율법을 지키는 행위가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깨닫지 못하면 미련한 다섯 처녀가 되는 것이다.
갈라디아서 4장 10~11절의 말씀으로『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 사도바울이 한탄하는 말이다. 오늘날 대부분 교회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스스로 구원받았다고 생각하지만 성령은 없고, 자신의 생각대로 믿는 사람들의 행태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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