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삭을 낳을 때가 백세라


창세기 21장 1-2절, 5-6절『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셨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 사라가 임신하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시기가 되어 노년의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니 ……….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삭이 그에게 태어날 때에 백 세라 사라가 이르되 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아브라함이 100세때 새생명인 이삭을 낳았다. 사라가 임신하게 된 것은 하나님이 사라를 돌보셨고, 약속의 말씀대로 행하셨기 때문이다. 새생명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행하셔야만 한다. 인간에게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달려있다. 창세기 17장 17-18절에서는 『아브라함이 엎드려 웃으며 마음속으로 이르되 백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출산하리요 하고 아브라함이 이에 하나님께 아뢰되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라고 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전쟁을 이기고, 멜기세덱이라는 그리스도를 만나게 된다. 그런데도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는 것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존재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고향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고 명령했다. 친척을 떠나지 못하고 롯을 데리고 나온다. 회개하기 전에는 순종하지 않는다. 인간은 자기 자신이 좋아할만한 것만 골라서 선택적으로 순종하는 존재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는 것은 구원의 기회가 주어지는 순간이다. 그래서 회개해야만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말씀하시는데도 아브라함과 사라가 웃었다. 인간은 에덴동산의 사건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과 사라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이 말씀 앞에서 우리의 어떤 모습을 발견하지 않으면 구원의 기회를 잡을 수 없다. 그리고 다행히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고도 회개하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다. 구원은 이 세상에서의 상황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이 진리를 붙잡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상에서의 상황에 반응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웃었다. 17장 1-2절에서는『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두어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 하시니』라고 말씀하셨다. 전능하신 분이라고 스스로 말씀하셨는데도 믿지 않는 것이다. 17장 7-8절에서는『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및 네 대대 후손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네가 거류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온 땅을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이렇게 말씀하셨는데도 웃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 말씀을 하실 때 아브라함에게는 이스마엘이라는 아들이 있었다. 당시 나이는 열두살이었다. 하나님은 이스마엘을 자손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우리의 내적 생명이 이삭인지 이스마엘인지 분별하지 않으면 구원의 기회도 없는 것이다. 이것은 빛과 어둠처럼 분명하다. 이스마엘의 생명은 가나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것처럼, 구원받지 못하는 생명이다.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이삭과 같은 하늘로부터 태어난 새생명만 들어가는 것이며, 그리스도의 예표다.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복음서에서 나오는 믿음은 풍랑 위를 걷고, 병을 고치고, 문제 해결을 통해서 설명하려고 한 믿음이다. 그 중에서 가장 많은 체험을 한 자가 베드로였다. 베드로는 인간들 중에 가장 많은 기적을 체험한 자였다. 그런데 그 믿음이 구원받는 믿음이 아니라는 것을 복음서는 말한다.

 구원받는 믿음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었을 때, 십자가와 연합되는 믿음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인간은 십자가 앞에서 못박히신 그리스도를 버린다는 것이다. 모든 인간이 그렇다는 뜻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성경에서『회개하고 돌아오라』는 말씀을 전하신다.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이 율법을 백성들에게 주어도『백성들은 지키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마찬가지로『오늘밤 다 나를 버리리라』라고 말씀하셨다. 주님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계시하는 순간이 우리에게 올 수 있다. 백성들에게 죽임당한 예수, 사람들에게 버림당한 예수를 보게될 것이다. 그 때가 회개할 기회가 된다. 그러나 회개할 기회가 나타날 때, 우리도 예수를 버리는 존재임을 알게된다. 아브라함과 베드로처럼 우리도 엄청난 기적을 체험해도 십자가 앞에서는 예수를 버리는 자가 되는 것이다. 결단과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리스도 십자가 앞에서 인간 속에는 선한 것이 전적으로 없는 존재임이 드러난다. 

예수님은 마지막 제자들과 만찬에서『이 떡은 나의 살이요, 이 잔은 나의 피』라고 말씀하셨지만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인간은 전적타락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인정하지 않으면, 아무리 교회를 오래 다녀도 헛믿음에 불과한 것이다. 인간이 전적타락한 존재라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악한 존재라는 뜻이다. 그래서『내속에 있는 것이 바로 마귀였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스도 십자가 앞에서『내가 바로 마귀 자식이였구나』라고 고백해야만 한다.『나의 아비가 하나님이 아니라 마귀였구나』라고 고백해야만 한다. 그래서 십자가에서 그리스도가 마귀의 머리를 깨어부셨듯이, 회개하는 자도 십자가에서 마귀의 머리를 깨어부수고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야만 구원받을 수 있는 것이다. 마귀의 머리를 깨어부수는 것이 자기부인이고 자기 십자가의 길이다.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다시 예수와 함께 태어나야만 한다. 그러나 내가 주인인 사람은 십자가에서 죽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마귀자식인 것이다. 십자가에서 죽지 않는 자는 여전히 옛뱀의 독이 퍼져있는 자다. 뱀의 독이 퍼져있는 자는 내 뜻대로 하고 마는 것이다. 주님이 어느 순간 나타나셔서『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다』라고 말해주어도, 뱀독이 퍼져있는 자는 하나님 말씀을 믿지 못하게 된다. 아브라함처럼 웃게 될 것이다.『내가 백세가 되었거늘 어찌 자녀를 낳으리요』라고 말하면서 웃을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기 전에 하신 말씀은『너희들은 다 나를 버리리라 각각 제곳으로 흩어지리니 이때라』라고 말씀하셨다. 모든 인간은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은 예수,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를 버리게 된다. 죄인들은 그들의 죄를 용서받으려고 어린양을 죽이고, 어린양으로부터 떠나버리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바다가 갈라져서 바로왕의 군대가 다 죽은 것을 목격하고, 광야에서 맛나를 먹었던 자들이었다. 그들은 1년 전에 어린양의 피를 칠하고 하나님의 진노를 벗어난 놀라운 경험을 했다. 하나님이 젓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지만, 백성들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지 못하고 열정탐꾼의 말을 믿으므로, 여호수아와 갈렙 그리고 광야에서 태어난 새생명을 제외하고 다 광야에서 죽었다. 열정탐꾼의 말은『그곳에 가보니 아낙자손이 산다』고 말하면서『들어가면 다 죽는다』는 것이다. 주님은『내가 앞서 가리라』라고 말했지만 믿지 않았다. 이게 회개하지 않은 자들의 모습이다. 자기를 신뢰한다면 이렇게 될 것이다. 자기를 부인하지 않으면 열정탐꾼의 말을 믿는 자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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