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능하신 하나님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요한계시록 1장 8절)
전능하신 하나님은 변함이 없지만, 인간들은 자신의 생각과 상식에 맞지 않으면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다. 대표적인 예가 출애굽하여 가나안 땅 앞에서 들어가면 죽는다 라고 말하는 열 정탐꾼과 모든 백성들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놀라우신 기적을 목격했지만, 가나안 땅에 살고 있었던 아낙 자손을 보았기 때문에 비록 전능하신 하나님이 약속하셨지만,『들어가면 죽는다』라고 생각한 것이다.
인간들이 스스로 자기 생각에 맞추는 하나님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내산 밑에서 금송아지를 만들어서 하나님이라고 경배했던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 말씀을 믿지 않는 이유는 자기라는 자아가 가로 막고 있기 때문이다. 자아는 세상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육체로부터 형성된 혼(옛사람)이다. 예수님은 자기를 부인하라고 말씀하셨는데, 바로 하나님 말씀 앞에서 자기를 부인하라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장 25절에서『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그런데, 인간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모스 선지자(아모스 5장 25절)를 통해서『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희생과 소제물을 내게 드렸느냐』라고 책망하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표면적으로는 제사를 드렸지만 이면적으로는 우상을 섬기는 마음이었다는 것이다. 우상을 섬기는 마음은 탐욕이다. 인간의 마음에 있는 탐욕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못하도록 한다. 우상을 섬기는 자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완전하게 믿는 것이다. 하나님은 빛이시다. 요한1서 1장 5절에서『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그런데 창세기 1장 3-4절에서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그래서 이 세상의 빛은 하나님 나라의 참 빛이 아닌 것이다.
『이 세상에는 하나님이 계신가 안계신가』에 대한 질문을 하면 당황할 것이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창조하셨으므로 당연히 하나님이 계시고 지배하시고 운행하신다고 말한다. 그런데, 성경은 이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고 하셨다. 요한1서 2장 15절에서『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그리고 예수님이 본디오 빌라도와 대화할 때 요한복음 18장 36절에서『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라고 말씀하시고, 광야에서 마귀의 시험을 받을 때, 누가복음 4장 6절에서『이르되 이 모든 권위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내가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셨는데, 이 세상은 사탄이 임금이 되었다. 말이 되는가? 많은 교회 사람들은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범죄하므로, 이 세상을 사탄에게 빼앗겼다고 말을 하기도 한다.『빼앗겼다』고 생각하는 그 말 속에는 하나님을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면, 사탄이 임금이 될 수 없는 것이다. 마치 하나님이 욥에게 사탄의 시험을 허락하신 것과 같은 것이다. 하나님이 사탄에게 이 세상을 허락하신 목적이 끝나면 다시 이 세상을 회복하실 것이다.
요한복음 12장 31절에서『이제 이 세상에 대한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의 임금이 쫓겨나리라』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의 죽음이 사탄에 대한 심판의 시작이며, 예수님의 재림이 심판의 종결이 되는 것이다. 그동안 사탄에 대한 심리가 진행될 것이다. 그래서 사탄에게 미혹당한 자들은 신원(불의한 재판관과 과부의 비유)을 하라는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면서『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시고 돌아가셨다. 예수님이 이루었다는 것은 하나님이 이 세상 모든 인간들에게 약속하신 것을 이루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 뿐만 아니라 교회 사람들도 대부분 예수님이 이루신 것을 믿지 않는다. 예수님은 죽은 영을 살리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다. 요한복음 6장 63절에서『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이 세상에 갇힌 자, 눈먼 자들을 풀어주고, 눈을 뜨게 하기 위해 오셨다고 이사야는 말한다. 사탄의 종이 되어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죽은 자들을 구하기 위해 예수님이 오셨는데도,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영이 살아나기 위해서는 영의 몸을 입어야 한다고 말하신다. 영의 몸으로 다시 태어나라는 것이다. 로마서 6장 4-6절에서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옛사람이 육의 몸이며, 부활과 같은 모양이 영의 몸이다.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 44절에서『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육의 몸(옛사람)이 죽어야만 영의 몸(부활과 같은 모양)이 하늘로 부터 태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죽었던 영이 영의 몸을 입고 살아난다. 이 영의 몸을 그리스도의 옷으로도 표현된다. 이 영의 몸을 입기 위해서는 반드시 육의 몸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어야만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말을 믿지 않는다. 사람들의 생각과 경험을 바탕으로 이해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왜 사람의 몸 속에 죽었던 영을 살리려고 그리스도를 예정하시고,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서 죽게까지 하셔서 창세 전에 계획하셨는가? 사람들은 에덴동산의 사건을 떠 올린다. 그러나 예수님은 씨뿌리는 비유를 통해서 깨닫도록 하셨다. 에덴동산은 이 세상에서 일어난 사건이지만, 또한 하나님 나라를 상징한다. 하나님께서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한 사탄과 사탄을 따라간 자들을 가두었다.
유다서 1장 6절과 베드로전서 2장 4절의 말씀과 이 내용들이 서로 다른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지만, 하나님께서 가둔 곳이 바로 하나님 나라가 아니라 물질 세계라는 것이다. 이 세상이다. 인간의 영이 바로 그렇다는 것이다. 그래서 갇힌 영이 사탄의 종이 되어, 고통받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통해서 깨닫게 해주신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애굽에 넣어셔서 바로의 종이 되게 하시고 하나님께 부르짖게 하셨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으로 인도하시는 것이 바로 이 세상에 갇혀 사탄의 종이 된 육체 속의 영들이 부르짖으라는 것이다. 부르짖는 것은 사탄의 종이 된 것을 깨닫고 그리스도를 찾으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회개하여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기를 원하는 자를 구원하신다. 그래서 다시 본향인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야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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